"정부는 오늘 2024년 1월 1일 12시를 기점으로 인터넷 악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인터넷 악플러. 그들은 저마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놓으면, 혹은 스마트 폰을 키패드를
터치하는 순간, 세상 모든 사탄의 밥숟가락 빼앗는 대범함을 보인다는 저자의 문구가 섬뜩하게 다가
온다. 그들은 직접 죽여 살을 마르고, 뼈와 가죽을 분리한 후 박제시켜 사냥감을 쳐다보며 흐뭇해 하는
사냥꾼이 아니라 쉴새 없이 또다른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인터넷 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
러다 발견된 먹이감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달려들어 영혼 마저도 갈아 버릴 기세로 물어 뜯는다. 혹 '
재수 없어' 붙잡히기라도 하면 세상 불쌍한 사람 흉내를 내며 선처를 호소한다. 이미 피해자의 심신은
망가질대로 망가졌는데 말이다.
악플러 수용소.
물론 가상의 공간이지만 내심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곳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인권을 강제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도가 지나친 악플들에 사실 이렇다할 대응을 못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러한 강제
수용 교화 시설이 있다면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건 그놈의
'추천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좋아요, 구독, 추천에 목숨을 걸었는데 수용시설에 가서도 여전히
추천수에 목을 메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은 조금 의아하기도 하다.물론 그 아이러니는 책을 읽는 동안
풀렸다.
수용소 소장의 말 중에서 재미있는 문장을 발견했다. '저승에서는 살인, 강도, 방화만 저지르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고 그려 놨지만, 정작 이승에 존재하는 악마의 90% 이상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거든.
그런데 지옥은 면하다니'. 그렇다 실제 살인을 저지르거나 강도나 방화를 저지르는 사람 보다 악플을
써재끼는 인간들이 훨씬 많은데 그놈의 익명성(그나마 지금은 조금은 나아졌다, 이 책에서는 아예
'악플러의 힘은 전적으로 익명성에서 나온다고 말한다)이라는 이유로 잡아 내기도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아마도 저자의 생각을 소장의 입을 통해 말하고 싶은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어둠'에 대한 생각은
깊은 회의가 깔려 있다. '어둠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가능케 한다. 어둠 속에서 생명이 잉태되고, 어둠
속에서 힘을 비축하고, 어둠 속에서 한 뼘 성장하고, 어둠 속에서 피로를 녹이며, 또 어둠 속에서 진격한다.
그렇게 어둠은 또 다른 힘의 원천이며 샘솟는 용기이며, 동시에 악마의 시간이다.' 예전에 읽은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소설이 생각 났다.
이 책에는 수용된 죄수들의 상담을 해주는 정신분석학자가 말하는 악플러들이 악플을 다는 세가지의
이유가 나온다. 첫번째가 대부분의 악플러들이 속하는 카테고리인 자신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표출하는
케이스다. 이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그 한계는 스스로에게 채찍으로 행해지고 그 채찍이 가학이
되고, 가학은 결국 외부를 향한 공격으로 변해 스트레스를 풀 상대를 찾게 되고 익명성의 그늘 아래서
마음껏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싶고, 남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경우다. 방대한 기사 본문을 읽기 어려운 현대인들, 속이 꼬여서 다른 사람에게 악플을 달거나 다른
사람을 지적하기는 좋아하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이들을 대변해주는 듯한 글을 쓰는
이들이다. 주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쓰는 글이 베스트 댓글이 된다. 세번째는 비하를 통한 자존감
회복이다. 자신 보다 우월한 위치의 사람을 끊임없이 비하하며 거기서 오는 쾌감을 기쁨으로 여기는
부류이다. 결국 이 세 부류의 이유들은 '자신'이라는 출발점에서 만난다.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 절제가 안되고, 자신에게 불만족스럽고, 그 모든것이 모아져 먹잇감에다 쏟아내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진실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거짓의 허울을 벗겨낸다. 감춰져
있다고해서 영원히 숨기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것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한 저자의 경고는 이것이다. '진실은 분명히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