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읍니다
박정윤 지음 / 책과강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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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절실하게 그리워하며 산다는 것은 그리움이기전에 아픔이고 간절함이다. 절실하게 그리운

사람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절실하게 그리운 것을 가슴에 품고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도려내는 일이며 마음을 헛헛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렇다. 저자는 특별히 음식에 대한 추억과 기억들로 글을 짓는다. 한편의 사연을 소개하고

그 사연이 맞는 레시피가 따라온다.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고 한다. 만들어지는 음식에 그리움도 담고 간절함도 담고 사랑과

한숨도 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내어 놓는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랬고 지금의 우리들이 그렇게 한다.

그래서 음식엔 추억이 있다. 그 추억 한자락 한자락이 우리의 목을 넘어 들어가며 짙은 감정을 전한다.

저자의 표현처럼 저마다의 온도가 다르듯 저마다의 맛이 다르다. 나는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한끼의

식사를 좋아한다. 만들 음식을 정하며, 음식의 재료를 사며, 음식을 만들며, 음식을 내어 놓으며 묘한

감정에 빠져든다. 마주 앉아 마음을 나누며 함께 하는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음식에 담은

내 마음이 전달이라도 될라치면 가슴이 뛰고 설렌다. 음식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이다.

이 책에는 61가지의 음식이 등장한다. 각각에는 나름의 사연들이 있는데 나에게도 깊은 인연이 있는

음식 두가지를 만났다. 찬바람이 손 끝이 느껴지는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미생이국이 그 첫번째다.

찬바람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몸이 속까지 따뜻한 국물이 채워지면 칼바람도 너끈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매생이국. 제철인 굴을 넣어 먹으면 금상첨화인 그 음식이 나에겐 아픔과 고통을 상징한다.

대학 2학년 때 친구집에 놀러 갔다 귀한 손님 왔다고 끓여 주신 매생이국을 생각없이 들이키다

입천장과 입술을 다 데어 일주일을 고생한 기억이 있다. 입술은 퉁퉁 불어 메기처럼 됐고 입천장이

다 헐고 부어 음식물 섭취도 제대로 못하고 일주일을 고통스럽게 보낸 후 한동안 매생이라면 쳐다도

안보다 얼마전 초대 받아 간 자리에서 먹어 본 매생이 수제비는 '이 맛있는 걸 그동안 왜 안먹었지'라는

후회를 하게 할 정도로 별미였다. 저자도 이야기 했지만 겨울 매생이는 아무리 잘 씻어도 비릿한

바다 내음이 난다. 난 그 비릿함이 좋다.

두번째는 '엄마 밥'이다. 고등학교부터 서울로 유학(내 친구들은 유배라고 한다)을 와서 혼자 살았기에

나에게 엄마밥은 간절한 소망이었다. 방학이라도 해서 집에 가게 되면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주우욱 나열을 하며 어머니를 보챘다. 그러면 항상 귀찮으니까 한가지만 말하라고 하시고는 일주일

정도 집에 있는 동안 언제 먹었는지는도 모르게 전부 해주셨다. 그중 제일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빨간 감자'다. 감자를 푹 익혀 포실 포실하게 해서 고춧가루 양념으로 끓여서 해주시던 빨간 감자는

지금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어머니의 밥상은 그런 아련함이 있다. 이제 연세가 드셔서 음식

맛을 제대로 못내시지만 여전히 어머니 표 '빨간 감자'는 나의 최고의 음식이다.

나도 '읍니다'와 '습니다'의 간격이 낯설다. 마치 자장면이라고 하면 맛이 없을 것 같은 것 처럼 어색하다.

맞춤법 하나가 세대를 구분하는 방식이 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비록 세대가 분리 되지만

적어도 우리는 어머니의 밥상 아래서 하나가 된다. 어머니의 밥상은 그래서 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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