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프링벅 ㅣ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이 책의 시작은 연극반인 동준이의 떠들썩한 등장으로 시작한다.
준비하는 연극 주인공이었던 창제의 가출로 엉겁결에 주인공역을 맡은 동준.
그 사이 형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예슬이가 동준이 옆에서 힘이 되어 준다.
동준이 형은 대학 시험 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좋은 대학을 보내야겠다는 욕심이 앞선 엄마는 공부 잘 하는 장근이 형에게 대리 시험을 부탁했다.
자신이 부정행위로 떳떳하지 않게 대학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동준이 형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에 엄마는 병에 걸린다.
동준이는 이 모든 사실을 알지만 아빠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제껏 읽은 청소년 소설은 이 책을 포함해 세 권이다.
손도끼, 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이 스프링 벅.
이 세 권 모두 주인공은 상처를 받고 있고 어른들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어른들의 비밀을 그냥 지켜주기로 결심하는 결말까지 세 권은 무척이나 닮아있다.
이상하게도 어른들이 겪는 시련보다 이 청소년 시기에 겪는 이런 어려움들이 왜 나에겐 더 힘들게 느껴지는지 생각해 봤다.
아마도 내 십 대 시절이 그만큼 힘들고 혹독했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어른에게 의지하던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독립하기 위한 몸부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이 책에서는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들을 좌지우지하려는 어른들에게 창제는 적극적 독립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아이는 한 달 동안 가출을 하고 부모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아이까지 버리고 간 예슬이 엄마.
예슬이는 엄마를 미워했지만 정작 만났을 때 반가움이 교차하면서 자신의 이 모순된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는 능동적 사고를 한다.
동준이 형 사건을 통해 성적 만능주의가 낳은 폐해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
또 비주류 과목 선생님을 비하했던 현우라는 아이와 지학 선생님의 처벌에 대한 이야기도 현재 우리 교육이 무얼 놓치고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준다. 교권을 위해 체벌이 있어야 하는지, 처벌이 시작된 이상 폭력성을 제어할 수 없기에 애초부터 체벌은 안 되는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를 남기는 부분이었다.
동준이는 엄마의 비밀을 아빠에게 얘기하지 않기로 결정을 하며 책이 끝난다.
동준이네 가족이 다시 평화를 찾기 위해서 과연 옳은 판단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이 한 권의 책 안에 여러 청소년들이 가진 힘든 일들이 연극 연습 현장을 배경으로 조화롭게 그려졌다.
사실 동준이 형의 죽음이 정말 안타까웠다.
차라리 그냥 부모에게는 죽음을 암시하지만 결국 창제처럼 긴 시간 가출한 것에 그쳤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감히 원작을 각색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문학의 의미를 순간 망각한 실수였다.
문학은 있을 수 있는 일을 상상하는 여지를 주는 매개체이다.
그 매개체까지 고치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문학을 받아들이는 준비가 덜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프링벅`에 나온 청소년 등장인물들 모두 가족들과 문제 하나씩을 안고 산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도 작고 크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문제를 안고 살아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발걸음이 어른들에 의해 재단된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진정한 어른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벅이라는 양 이야기 아니?˝
작년 학기말 국어시간, 손장하 선생님이 책도 펴지 않고 칠판에 `풀`이라고 크게 쓰더니 뜬금없이 양 이야기를 꺼냈다.
˝이 양들은 평소에는 작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점점 큰 무리를 이루게 되면 아주 이상한 습성이 나온다고 해. 무리가 커지면 맨 마지막에 따라가는 양들은 뜯어 먹을 품이 거의 없게 되지.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 좀 더 앞으로 나아가서, 다른 양들이 풀을 다 뜯기 전에 자기도 풀을 먹으려고 하겠지. 그 와중에 또 제일 뒤에 처진 양들은 역시 먹을 풀이 없게 되니, 앞의 양들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서려 할 테고.
이렇게 뒤의 양들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앞의 양들은 또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 앞으로 나아가게 돼. 그렇게 되면 맨 앞에 섰던 양들을 포함해서 모든 양들이 서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마구 뛰는 거야.
결국 풀을 뜯어 먹으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다른 양들보다 앞서겠다는 생각으로 뛰게 되지. 그러다 보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거야. 계속 뛰어, 계속.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풀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아. 그냥 뛰어야 해.˝
손장하 선생님은 고개를 아래로 박고 교실 앞에서 뛰기 시작했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갑자기 웬 일인극? 선생님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에 몇몇이 웃었다.
˝뛰어, 뛰어. 정신없이 뛰어.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해안 절벽에 다다르면.... 앗, 절벽! 하지만 못 서지. 수천 마리의 양 떼는 굉장한 속도로 달려왔기 때문에 앞에 바다가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멈출 수가 없는 거야. 가속도, 알지? 설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게 되는 거지. 그렇게 해서 한 번에 수천 마리의 양이 익사하는 사태도 발생한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니?˝
애들이 멍했다.
˝와, 그럴 수도 있어요?˝
˝있다니까.˝
˝그래도 뒤의 양들은 그걸 보고 미리 서지 않을까요?˝
내가 물었다.
˝똑똑한 질문이야. 그런데 서면? 그 뒤의 양들이 무서운 속도로 덮쳐와 떠밀려서 바다로 떨어지겠지.˝
손장하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아이들을 죽 훑어보았다. 모두들 얼이 빠진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없는 짓은 우리가 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경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경쟁하는 데 습관이 들어서 피 터지게 달리기만 하고 있어. 결과가 보이지 않니?˝
˝대학에 가려면 할 수 없잖아요.˝
˝너희는 대학생이 되기 위해 사니? 지금 이 순간순간이 너희들의 삶이야.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풀을 뜯어 먹으라고. 풀, 맛있는 풀!˝
선생님이 칠판에 쓴 `풀`부분을 연거푸 두드렸다. 쿵, 쿵, 쿵, 풀, 풀, 풀.
˝향기도 맡고 맛도 음미하면서 천천히 가라고. 삶의 목적은 풀밭 끝 벼랑이 아니고 풀이야, 풀. 지금 너희들 옆에 자가는 싱싱한 풀이라고. 가다가 계획과 다른 길로 가게 되도라도 뭐가 걱정이니? 거기도 풀이 있는데. 못 먹어본 풀이 있어서 더 좋은 수도 있지. 빙둘러 간다고 결코 낭비가 아니야. 생각지 못한 절경을 즐기면서 갈 수도.......˝
선생님은 교탁에 있는 캔을 따서 들이켜고 눈까지 감고 천천히 삼켰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목젖이 쿨럭쿨럭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으음, 맛있군. 그러니까 문제집만 끼고 살지 말고, 아, 공부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진짜 공부를 하라고. 허구한 날 공부하고도 왜 고3이 되면 수학을 포기한다느니, 영어를 포기한다느니, 그딴 소리를 하는지 몰라. 불후의 명작이며 역사, 사회, 종교, 심리학, 미술, 음악.....이 흥미진진한 인류의 유산들을 만나는 데에 왜 시간을 못내냐?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에는 책을 읽어 와서 토론도 하고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다. 너희들 성적 좋아하지? 그러면 그 토론으로 성적도 매기지 뭐, 내 취향은 아니지만.˝(4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