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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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재밌었던 책으로 추천합니다.

이 책은 팟 캐스트에 제목을 치면 거의 대부분 독서 관련 팟캐스트가 나온다.
그 정도로 어느정도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책이니 이 추천이 부끄럽지 않다.

이 작가가 한 권으로 끝내려고 했던 책이 인기를 많이 얻자 그 후편인 `일곱번째 파도`란 후편 책도 냈다.
하지만 난 딱!!이 책 한 권으로 족하다.
나는 윤리적 결벽증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 이상 나가는 주인공은 실망이다.
만나지 않는 사람과 나눈 편지를 10년 결혼 생활의 권태에 대한 도피처로 사용하고 해프닝으로 끝낸 딱 이 책 한 권이면 됐다.

소설이란 내가 할 수 없었던 일,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들에 대해 진행시키는 매개체가 아닐까 한다.
다만 시작은 분명히 있을법한 일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예술이다.
나라면 분명히 할 수 있는 실수로 이 책이 시작된다.

참!이 책은 오로지 이메일로 이루어진 서간문 스타일이다.

에미는 잡지 구독을 끝내기 위해 메일을 보냈는데 그 메일 철자가 잘못됐다.
잘못된 메일을 받음으로 시작된 언어심리학 교수 레오와 10년 차 두 아이 엄마 에미가 이메일로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한 이유는 이거다.
에미의 상황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그녀의 현실 권태를 느낄 수 있다.

레오, 가족 소개는 이걸로 끝내죠. 우리 대화에서 아이들 얘기는 빼고 싶어요. 몇 달 전 저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저랑 수다를 떠는 게 당신에게는 일종의 `마를레네 극복 요법`이라고 하셨죠?(물론 거는 이게 아직도 유효한지 모릅니다. 기회가 되면 말해주세요!) 당신에게 메일을 쓰고 당신의 메일을 읽는 시간이 저에게는 일종의 `가족 타임아웃`이에요. 이 시간이 일상 밖에 있는 작은 섬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그 섬에 당신과 단둘이서만 머물고 싶어요. 당신만 괜찮다면요.(149)

내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은 이런 소설을 읽고 에미에게 빠지는 것.
정말 건전하다!

에미가 얼굴도 목소리도 듣지 않은 레오라는 인물과 사랑에 빠진 이유를 설명해 주는 내용도 있다.
사실 에미는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죽은 엄마와 아내 자리를 대신해 10년째 가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자신을 좋아하는 두 아이와 나이 많고 이해심과 배려가 넘치는 남편 안에 그녀는 아마도 행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점점 이것은 사랑이 아니고 안정만이 존재하는 껍데기뿐인 공동체라는 생각에 이른다.

레오. 제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오랫동안 그 누구와도, 당신과 그랬던 것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나눠본 적이 없어요. 이런 식의 감정 교류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저 스스로도 놀랐답니다. 당신에게 보낸 이메일들에서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에미다운 에미가 될 수 있었어요. `현실의 삶`에서는 무난하게 버텨나가려면 끊임없이 자기감정과 타협을 해야 해요. 이럴 땐 과잉 반응을 해선 안 돼! 이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이 상황에서는 그걸 못 본 척해야 해!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주위 사람들에게 맞추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량을 베풀고, 일상에서 오만 가지 자질구레한 역할을 떠맡고, 구조 전체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려면 균형을 잘 잡아 평형을 유지해야 해요. 저 또한 그 구조의 일부니까요.(169)

남자인 작가는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서의 여자들의 방황을 정확하게 잘 포착했다.
그래서 한 가정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에미의 이 도발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었다.
이들은 실제로 만날 듯 만나지 못한다.

에미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라는 미아라는 친구가 있다.
에미는 인연이 아닌 마를레네와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레오에게 미아를 소개해준다.
미아를 통해 옛 여자친구를 아주 깔끔하게 끝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에미의 실수였다.
미아는 물론 좋은 여자였을지 모른다.
투박하게 생긴 이 작가는 어쩜 여자들 세계도 꿰뚫듯 잘 안다.
미아는 안정적인 가정과 멀쩡한 총각 교수의 사랑을 받는 에미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러나 레오가 멀어지고 에미의 가정이 휘청거릴 때 미아는 다시 에미에게 다가와 친구`짓`을 한다.
미아와 레오의 만남은 결국 에미가 레오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결론을 확실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에미가 간절히 레오와의 만남을 원할 때 레오는 이렇게 거절한다.

우린 골라인에서 출발하는 셈이에요. 따라서 나아갈 방향은 하나밖에 없죠. 되돌아가는 것. 우린 미몽에서 깨어나는 지난한 과정을 밟아야 해요. 우리가 쓰는 글이 우리의 질제 모습, 실제 삶일 수는 없어요.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그렸던 많은 이미지들을 우리의 실제 모습이 대신할 수는 없어요. 당신이 내가 아는 에미보다 못하다면 실망스러울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내가 아는 에미보다 못할 겁니다! 내가 당신이 아는 레오보다 못하다면 당신도 우울하겠지요. 그리고 나 역시 당신이 아는 레오보다 못할 겁니다. 우린 만나면 미몽에서 깨어나 헤어질 테고, 일 년 동안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애타게 기다리면서 몇 달씩 지지고 볶았으나 막상 먹어보니 입에 맞지 않는 기름진 식사를 하고 났을 때처럼 속이 거북하겠지요.(278-279)

오랜만에 가슴 설레는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
최대한 빨리 후편도 읽어보고 싶다.
물론 내 도의적 결론은 이 책 한 권으로 족하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앞에 두고 편지로 싸우는 그 유치함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이들 삼시 세끼 차려주고 씻겨 주고 다치지 않게 해 주는 삶에서..
가끔 책을 통한 이 정도의 이탈만으로 즐겁다니 참 난 소박하다.(자화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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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24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밌었는데, 그 후일담은 궁금하지 않아서.... 그냥 딱 여기가지만! 하는 느낌? ㅎㅎ 그래서 후편은 일부러 보지 않았답니다^^

책한엄마 2016-01-24 21:45   좋아요 1 | URL
전 결국 유혹을 참지 못하고 봐 버렸어요. 오로라님의 선택이 탁월하셨습니다.다만 작가 외모는 털보 아저씨던데 어쩜 이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알까요?짝짝짝!!

에이바 2016-01-25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꿀꿀이님. 저는 이 책을 데이빗 테넌트가 출연한 BBC 라디오 드라마로 알게 되었답니다. 좋아하는 배우 목소리로 들으니 더 좋더라고요. 반가워서 댓글을 남깁니다 ㅎㅎ

책한엄마 2016-01-25 18:00   좋아요 0 | URL
아니!!라디오 드라마요?@0@엄청 두근거릴 것 같아요.물론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것 같아 안타깝긴 하네요.저도 반갑습니다.^^

에이바 2016-01-25 18:17   좋아요 1 | URL
책 내용과 거의 동일할 거예요. 팟캐스트 청취는 종료되었지만 테넌트 팬들이 유투브에 올려놨는데 시간나실 때 한번 들어보셔도... 주인공들이 이메일 주고 받다가 만나기로 한게 불발되고 했던 기억이 나요. https://youtu.be/RjoZNppoYFE?t=37s ///// 근데 더 찾아보니까 한글자막 버전도 있어요. http://tvpot.daum.net/v/fN6KzqRhzfo$

책한엄마 2016-01-25 18:20   좋아요 0 | URL
어머!!감사합니다.^^
귀중한 보물을 얻은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