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서 미안해 - 걱정 많고 겁 많은 유부녀의 3개월간의 유럽 가출기
권남연 글.사진 / 꿈꾸는발자국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유부녀 가출하다.

 책 제목을 본 순간 갖고 싶었다. 나도 언제가 미안하지만 '혼자'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나도 저자처럼 엄마고 아내고 며느리고 딸이다. 하지만 온전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시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하루 몇 시간뿐. 그 시간마저 엄마에게 "책 읽는 시간을 줄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을 때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저자처럼 극도의 스트레스로 월경까지 끊길 정도는 아니다. 그렇기에 소심하게 또 나는 책을 펼치고 마음만 여행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여자 혼자 여행

 언젠가부터 나는 여행기를 읽지 않았다. 어느 아나운서는 지나치게 자신이 맺은 인맥에 대한 자랑 글이 대부분이었다. 지도를 뛰쳐나가라던 혼자 여행하기로 유명했던 여성 작가는 과장 거짓 내용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나와 다른 조건 사람들이 여행하는 여행기는 이질감이 들기 마련이다. 이 책은 마치 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듯 나와 같은 조건과 상황인 저자는 나를 편하게 같이 여행으로 안내했다. 
 작가는 내게 알려준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말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때로 외롭지만 적어도 하이킹을 하는 동안에는 외로울 새가 없다. 오히려 혼자라서 더 좋기도 하다. 온전히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온전히 내 페이스대로만 움직일 수 있어서.(43)
혼자 여행하면 이렇게 모든 감정들이 오롯이 내 몫이 된다. 우울함을 이겨내는 일도, 스트레스를 푸는 일도, 모두 나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러면서 강해진다. 나 자신을 알게 되고,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찾게 된다. 당시에는 서러울지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꽤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간다.(77-78)

이렇게 혼자 여행하는 매력에 빠질 무렵 큰 어려움에도 봉착한다. 다름 아닌 다른 남자들의 과도한 추태. 여행하는 혼자인 여자에게 쉽게 호의를 가장해 희롱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는 일단 조심하고 볼 것.
특히 인사를 가장한 스킨십에 요주의!! 탕탕!!(125)

이 책은 진짜다. 진짜 평범한 유부녀의 여행기. 그렇기에 혼자 여행하면서 느낌과 남자들 때문에 겪었던 곤란들이 제대로 전달됐다

멀리 있기에 보이는 것들

 저자가 가는 여행에 대한 감동과 행복은 덤이다. 여행을 통해 놓고 온 자신이 지켜야 하는 자리에 대해서도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결코 그 안에 있다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 혼자 여행하면서 혼자이기에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남편 부재에 대해 뼈져리게 느낀다. 여행 막바지에 신혼여행으로 간 터키에 다시 온 저자는 혼자 온 터키는 예전같이 좋은 느낌이 아님을 통해 절절히 깨닫는다. 그렇기에 전화로 남편에게 자신이 겪은 남자에 대한 곤란을 얘기했을 때 화가 난 남편을 이해한다.

결국 의심도, 질투도, 오해도, 사랑이 있기에 존재하는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겐 확신이 있었다. 이 사람이 날 사랑한다는 확신. 세상 누구보다도 날 걱정하고, 위해주고,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확신. 비록 때때로 오해하고, 의심하고, 질투하고, 맘에 없는 말로 상처 주기도 하지만 본심은 날 누구보다도 믿고 싶어 한다는 것. 그래서 이 먼 곳까지 나를 보내줄 수 있었다는 것. 나는 그 마음을 알아줘야 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했다.(151)

 시할머니에 대한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는 저자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나 또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타인 탓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았다.

처음엔 그저 시할머니가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자꾸 스트레스를 주니까 아랫사람 된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문제는 나 자신이게도 있었다. 그렇게 무조건 참기만 해서는 알 될 일이었다. 신랑을 위해, 할머니를 위해, 배려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280)

 참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 쉽지만 그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던 사실을 여행을 통해 '혼자'가 된 저자는 답을 얻는다. 타인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 자신도 생각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왜 삶 속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았는지. 내 감정이 먼저 존중받아야 타인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는 사실을 저자 여행을 통해 엿보았다

지극히 사람다운 여행기

 이 책이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지극히 인간적인 여행기. 나도 겪을 수 있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 다는 사실이다. 항상 예약 때문에 힘들어한다. 교통비 또한 무시할만한 가격이 아니라 버스를 타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를 보면서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임에 같이 손에 땀을 쥐며 책에 빠져 들어간다. 북유럽에서 겪은 호텔을 잡은 일은 내가 저자가 되어 같이 화를 냈다. 카드 내용을 고치지 않았다고 환불이 없는 룸 취소가 됐다는 사실로 오간 이메일은 어이가 없었다. 버스가 이유 없이 승차를 거부하고 얻어 탄 한국인 관광객 렌터카를 타다가 오히려 속도위반으로 범칙금을 내는 모습을 보며 괜한 죄책감을 느낀 부분도 재밌었다.
 동유럽에 진입하면서 여자들이 어마어마하게 예뻐 위축된 모습에 공감했다. 같은 주부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선물처럼 펼쳐졌다. 폴란드에서 접시! 작은 짐에 대한 중요성을 피력한 저자 소신을 깨뜨린 주범 그릇들. 이 그릇 때문에 작가 짐은 두 배로 늘어난다. 이를 사수하기 위해 겪는 저자 고난기는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싱가포르에서 냄비랑 프라이팬을 사 오느라 쌀포대 같은 가방을 사서 낑낑 갖고 들어온 기억이 떠올랐다

돌아오지 않는, 그래서 소중한

 생일을 타국에서 혼자 맞는 저자. 그런 마음을 아는지 우연히 만난 할머니는 청춘이 참 좋다는 얘기를 건네준다. 딱히 한식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석 달 만에 먹는 한식은 두 세배 비싼 가격에도 집밥만큼 맛있다. 며칠 후면 볼 수 있는 남편 모습에 가슴 설레한다. 
 읽기에 다소 글자가 작다. 책 안에 지도도 없어 겨우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 저자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유추하며 읽어야 했다. 큰 챕터로 나뉜 형식이 아니고 그저 가는 여정에 따라 글을 읽어야 해서 산만해 보이기도 했다. 글 또한 소박하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뿐 아니라 나에게도 소중하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저자의 용감한 결정. 그리고 누구보다 솔직한 마음을 담은 여행기. 작가의 시각으로 담은 깔끔하고 아름다운 사진들. 이 소중한 자료가 모여 책이 됐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으니 남편이 그런다.
"언젠가 너도 혼자 여행 가봐."
웃으면서 난 답한다.
"마음이라도 고맙네."

마음이라도 머나먼 유럽에 떠나게 해 준 이 책에게 참으로 고맙다.


책을 선물해 주신 꿈꾸는 발자국 출판사에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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