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지식인마을 6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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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사상하면 노자와 장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혼란스러운 춘주 천국 시대에 사상가였던 두 사람은 동양문화 속에 면면이 이어져 오는 도가 철학자들이다. <노자>는 시라는 간결한 형식을 통해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전달하려 했다면 <장자>는 짧은 이야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우화로 구성되어 있다. 우화에는 '대붕이라는 새 이야기',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 '조삼모사 이야기','포정해우 이야기'등 보통 사람들도 쉽고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서양에 동물의 성격이나 행동을 포착해 인간의 모순을 통쾌하게 보여주는 이솝우화가 있다면 동양엔 짧은 우화를 통해 철학적 통찰을 보여주는 장자가 있다. 그중 <포정해우 이야기>를 옮겨 봤다.

 

"포정이라는 훌륭한 요리사가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았다. 손을 갖다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을 디디고, 무릎을 굽히는데, 그 소리는 설겅설겅, 칼 쓰는대로 썩둑썩둑, 완벽히 음률에 맞았다. 무곡<뽕나무숲>의 맞춰 춤추는 것 같고, 악장<다스리는 우두머리>에 맞춰 율동하는 것 같았다. 문혜군 말하였다.

 

"참 훌륭하다.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포정은 칼을 내려놓고 대답하였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였습니다. 지금은 신神으로만 만날 뿐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은 쉬고, 신神이 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하늘이 낸 결을 따라 큰 틈바구니에 칼을 밀어 넣고, 큰 구멍에 칼을 댑니다. 이렇게 진실로 그러한 바에 따를 분, 아직 인대나 힘줄을 베어본 일이 없습니다. 큰 뼈야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습니까? 훌륭한 요리사는 해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1년 동안이 이 칼로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칼날은 이제 막 숫돌에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는 뼈마디로 들어가니 텅 빈 것처럼 칼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19년이 지났는데도 칼날이 이제 막 숫돌에서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근육과 뼈가 닿는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다루기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 조심합니다.

 

시선은 하는 일에만 멈추고, 움직임은 느려집니다. 칼을 극히 미묘하게 놀리면 뼈와 살이 툭하고 갈라지는데 그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칼을 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흐뭇한 마음으로 칼을 닦아 갈무리를 합니다."

문혜군이 "훌륭하다 나는 오늘 포정의 말을 듣고 '삶을 기르는 것(養生)'이 무엇인지 터득하였노라."(70~71쪽)

포정이 문혜군에게 소 잡는 방법을 들려준 이야기다. 포정이 말한 '눈으로 본다는 것'과 '신으로 만난다는 차이'에 대해 장자는 기술보다는 우월할 수밖에 없는 도道를 이야기한다. '도道'​ 현실을 떠나 무위자연에서 사는 것, 즉 현실을 떠난 道가 아니라 세상을 구하는 道를 추구했다는 도가 철학에 대해 <장자 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학위를 받은 강신주 철학자가 도에 딴죽 걸어 재미있고 쉽게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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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발견 -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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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원래 있던  것 중에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감성적인 시를 쓰는 안도현 시인의 말이다. <안도현의 발견>(한겨레출판. 2014)은 시인이 근래에 발견한 나지막하고 안쓰러운 것들에 대한 기록을 모아놨다.  시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후미진 곳, 남들이 우러르고 따르는 사람보다 혼자서 가만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을 더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씌어진 글들은 시인이 1년 동안 한겨레에 연재했으며  글을 쓰는 동안 3.7매의 원고지가 독방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갇혀 있었으나 제한된 공간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맛보았다고 전한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라서 일단 부담이 없다. 다섯 개의 주제별로 꾸몄다.

 

시인은 눈에 띈 것들을 생활 속에서, 식재료나 음식, 나무들에서 따뜻한 사유를 담아놓고도 혼자 쓴 글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책의 공동저자라고 공을 돌리는 마음이 순수한 동심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다음 글을 보면 생각이 그렇다.

 

"요건 찔레고 조건 아카시아야. 잘 봐 꽃은 예쁘지만 가시가 있지?" 아빠가 일곱살짜리 딸에게 친절하게 설명한다. "아빠, 근데 찔레랑 아카시아는 이름에도 가시가 있는 거같아."나무 이름에서 된소리(ㅉ)와 거센소리(ㅋ)를 재빨리 발견하고 그걸 가시의 뾰족함과 단번에 연결하는 것이다. (중략) "규연아, 저녁과 밤은 똑같이 깜깜하니까 같은 거지?"하고 아빠가 묻자. "다르지. 저녁밥 먹을 때가 저녁이고 잠 잘 때는 밤이지."(14쪽~15쪽)  

 

일상의 순간을 흘러보내지 않고 소중한 에피소드로 남겨놓는 능력이 남다르고 따듯하다. 거대하고 높고  빛나는 것들보다 작고 나지막하고 안쓰러운 것들을 좋아하는 시인의 얘기는 책장 어디를 펴서 읽어도 편안하다. 후미진 골목 평상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마늘 껍질을 벗기거나 나물을 다듬는 사람들처럼 허물없고 익숙하다.

 

"제비꽃은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시의 한 구절처럼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살뜰하다. 시인의 완주 작업실 돌담 아래 낮게 피어있는 꽃무릇, 만경강 둑길에서 만난 논병아리, 야생버섯에 서린 맛과 추억에 관한 얘기,등 시인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사소한 것들은 관심과 애정 어린 발견의 기록들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사소한 것들에게 관심을, 그리고 그것들을 오래 바라보자라고 한다면 코웃음 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시인은 호들갑 떨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일에 오지랖을 넓힌다. 시인의 발견은 그러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답게'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를 잃어버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나답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알려면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부터 관심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싶다.

 

그가 3.7매의 원고지 독방에 갇혀 지낸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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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36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김원중 옮김 / 아카넷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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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관찰 태도는 몸을 수그리는 것이다”라는 말은 참 적절하다. 지혜는 조사하지 않고 바라본다.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다. 철학의 시작은 느린 법이다."(43쪽)

 

 

인간은 태어나면서 생물학적 지도를 지닌다. 소로는 그 지도 위에 자신이 나고 자란 뉴잉글랜드에 대한 애정을 담는다. 가족과 함께 식물채집을 하고 사냥과 보트를 잘 탔으며 나무에 관한 지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어린 시절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소로 삶의 지표가 된다. 이 책<소로의 자연사 에세이>(2013.아카넷)이 답이다.  소로가 나고 자라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자연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어떻게 교감했는지 8편의 에세이에 가득 담아 놓았다.

 

 

책은 그가 스물 여섯 때 발표한 '메사추세츠 자연사부터 겨울산책, 가을 빛깔, 사후에 발표된 '야생사과'에 이른다. 산책을 하면서 자연을 바라보는 소로의 시선은 관찰 그 이상이다. 그안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세심한 묘사와 자연애호가다운 설명이 철학자의 느린 발자취안에 담겨 있다.

 

 

"물고기의 이름과 서식지만 알게 되어도 물고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법이다. 나는 물고기들의 지느러미 줄이 몇 개인지, 측선의 비늘이 몇 개인지도 알고 있다. 시내에 피라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모든 지식 면에서 그만큼 더 현명해졌고 모든 행운을 누릴 자격도 그만큼 더 갖추게 된 것이다. 그래서 피라미와 더 교감해야 하고 어느 정도 그의 친구가 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29쪽) 

 

 

"이 나무꾼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이 얼마나 많은지 보라! 이 나무토막을 보면 그의 도끼가 얼마나 날카로웠는지를, 그리고 도끼를 내리친 경사면을 보면 그가 어느 쪽에 서 있었는지, 그가 나무 주위를 돌지 않고 나무를 팼는지 혹은 손을 바꾸었는지의 여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쪼개진 나뭇조각들이 휜 모습을 보면 그 토막이 어떻게 떨어져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한 나무토막에는 나무꾼과 세계의 모든 역사가 새겨져 보관되어 있다."(86쪽)

 

 

책에서 소로는 말한다. 자연사 책은 일종의 특효약이어서 그것을 읽고 있으면 온 몸이 정상상태로 돌아온다고. 산책을 즐기는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숲속을 느리게 걷다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느릿느릿 굳어있던 몸의 근육이 한결 부드럽다. 소로가 나무토막을 보고 나무꾼의 역사를 궁금해 하듯 요즘 숲속의 상수리싹을 보고 다람쥐 생각이 빠져 있다.

 

 

책도 다람쥐가 히코리 나무를 정말 심었을까?하는 의문점에서 읽게 된 책이다. 바다와 산이 가까운 계절이다. 자연과 교감하고 싶다면 소로의 관심법을 배워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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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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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등에 업혀 자랐다. 그래서 눈이 소를 닮아 고장난 조리개처럼 느리게 열고 닫는다. 하기 싫은 일은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거부한다.몸에 좋은 음식은 관심이 없고 아이스크림,초콜렛, 커피를 주식처럼 달고 산다. 고양이처럼 마음의 결을 쓰다듬으며 보내는 하루가 아깝지 않고 도무지 아무데도 관심없는 개처럼 멍하니 하루를 보내는데 천재적이다."

 

궁금했다. 그래서 찾아봤다. 찾았다. 김소연 시인을 안다. 김소연 시인은 나를 모른다. 하지만 그녀를 안다고 말하고 싶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녀가 살아온 삶과 시에 대해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책 여러권을 읽었다. 이 정도면 알은체 한게 실례가 되지는 않겠지.

마음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다면 그중 한 조각에 해당되겠지 <마음사전>(마음산책.2013)을 읽고 있으면 내 서재에 꽂힌 국어사전에게 미안하다. 근래에 한번도 찾아 준적 없고 이름한 번 불러준적 없기 때문이다. 먼지속에 박혀 기면증 환자가 된 채 있어도 팽개쳐 뒀다.

​누군가는 그랬다. 사전속 낱말들은 이미 죽었다. 사전은 死語들의 공동묘지다. 빽빽한 말의 무덤들이다. 누군가 불러내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시인은 그런 말들을 불러낸다. 불러내서는 온기를 불어넣고 각질을 벗겨낸다. 그리고는 시인만의 색과 결로 전혀 다른 말들의 집을 짓는다.

"거울은 배면이 수은으로 닫혀 있기 대문에 풍경밖으로 걸어가기보다는 풍경 안에 침잠하게 하며 유리는 아무것으로도 배면을 닫아놓지 않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게 한다. 마음으로 확산하는 것이 유리라면, 마음을 수렴하는 것이 거울인 셈이다."(23쪽) 

​거울과 유리에 대한 사유다. 시인은 말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라지만 말과 말 사이에서 차이가 아니라 차원을 만들어낸다. 시인은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다면 유리 같은 것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하지만 사람이라고 누구나 그렇지는 않다.

사물에 숨을 불어 넣어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담금질 하는 능력은 놀랍고 부럽다. 특히 내게는 어렵고 서투른 말들이 그녀의 마음을 거치면 말쑥하고 경쾌하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 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이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이해,182쪽) 내게는 광목천같은 말들이 그녀의 입을 통하면 비단결이 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녀는 말을 종교처럼 섬기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마음공부'를 통해 문학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마지막 책장까지 맛있게 읽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것중 가장 위대한 산물이라면 문자가 아닐까 싶다. 그 문자를 살려 말을 만들고 말을 살려 문장을 만든다. 좋은 문장은 뭔가 도둑맞은 것 같으면서 허탈하다는 말에 공감을 남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느낌의 공동체>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문장을 읽으면 뿌연 안개속이던 무어낙가 돌연 선명해진다. 세상을 보는 창 나하나가 새로 열린 것 같다."​

 

 

​소등에 업혀 자랐다. 그래서 눈이 소를 닮아 고장난 조리개처럼 느리게 열고 닫는다. 하기 싫은 일은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거부한다.몸에 좋은 음식은 관심이 없고 아이스크림,초콜렛, 커피를 주식처럼 달고 산다. 고양이처럼 마음의 결을 쓰다듬으며 보내는 하루가 아깝지 않고 도무지 아무데도 관심없는 개처럼 멍하니 하루를 보내는데 천재적이다."

 

궁금했다. 그래서 찾아봤다. 찾았다. 김소연 시인을 안다. 김소연 시인은 나를 모른다. 하지만 그녀를 안다고 말하고 싶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녀가 살아온 삶과 시에 대해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책 여러권을 읽었다. 이 정도면 알은체 한게 실례가 되지는 않겠지.

마음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다면 그중 한 조각에 해당되겠지 <마음사전>(마음산책.2013)을 읽고 있으면 내 서재에 꽂힌 국어사전에게 미안하다. 근래에 한번도 찾아 준적 없고 이름한 번 불러준적 없기 때문이다. 먼지속에 박혀 기면증 환자가 된 채 있어도 팽개쳐 뒀다.

​누군가는 그랬다. 사전속 낱말들은 이미 죽었다. 사전은 死語들의 공동묘지다. 빽빽한 말의 무덤들이다. 누군가 불러내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시인은 그런 말들을 불러낸다. 불러내서는 온기를 불어넣고 각질을 벗겨낸다. 그리고는 시인만의 색과 결로 전혀 다른 말들의 집을 짓는다.

"거울은 배면이 수은으로 닫혀 있기 대문에 풍경밖으로 걸어가기보다는 풍경 안에 침잠하게 하며 유리는 아무것으로도 배면을 닫아놓지 않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게 한다. 마음으로 확산하는 것이 유리라면, 마음을 수렴하는 것이 거울인 셈이다."(23쪽) 

​거울과 유리에 대한 사유다. 시인은 말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라지만 말과 말 사이에서 차이가 아니라 차원을 만들어낸다. 시인은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다면 유리 같은 것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하지만 사람이라고 누구나 그렇지는 않다.

사물에 숨을 불어 넣어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담금질 하는 능력은 놀랍고 부럽다. 특히 내게는 어렵고 서투른 말들이 그녀의 마음을 거치면 말쑥하고 경쾌하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 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이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이해,182쪽) 내게는 광목천같은 말들이 그녀의 입을 통하면 비단결이 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녀는 말을 종교처럼 섬기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마음공부'를 통해 문학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마지막 책장까지 맛있게 읽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것중 가장 위대한 산물이라면 문자가 아닐까 싶다. 그 문자를 살려 말을 만들고 말을 살려 문장을 만든다. 좋은 문장은 뭔가 도둑맞은 것 같으면서 허탈하다는 말에 공감을 남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느낌의 공동체>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문장을 읽으면 뿌연 안개속이던 무언가가 돌연 선명해진다. 세상을 보는 창 하나가 새로 열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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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고유명사로 산다는 것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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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전의 노자의 사상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에 어떤 조언을 들려줄 수 있을까. 노자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면면이 이어오는 동양고전 노자의 사상은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위즈덤하우스. 2015)은 최진석 교수가 EBS<인문학 특강>에서 보여준 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노자 철학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소개하며<도덕경>에 담긴 노자의 사상에서 현대인들의 삶과 접목시켜 통찰력 있으되 쉽게 안내한다. 그동안 인문학 특강에서 노자의 철학과 사상을 지식과 경험으로 명쾌하게 강연한 동양철학 교수답게 2500년 전의 노자의 생각법을 통해 삶을 바꾸는데 필요한 인문학적 모험을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노자는 인간의 능력으로 갈고닦은 길을 道라고 했다.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란 '생각하는 힘'을 말한다. 천명을 따르던 인간이 이제 도를 따라야 한다. 이런 생각의 전환에서 비롯하여 마침내 도의 출현이 중국 문명을 가져온다. 최초의 중국 문명은 결국 인간의 독립선언이다. 도의 출현 이후 중국인들은 세계와 관계를 해석하며 삶의 의미의 중심축을 도道와 덕으로 갖게 되며 그게 도덕이다.

 

 또한 저자는 노자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인식능력을 지知의 방법 말고 明의 방법이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내용은 이렇다.

 

 "해를 해만으로 보거나 달을 달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달을 해와의 관계 속에서, 해를 달과의 관계 속에서 보는 것이지요. 해를 해로 보고, 달을 달로만 보는 것은 해와 달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요. 분리된 것으로서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을‘지’라고 합니다. 반면 해와 달을 상호 연관 속에서 인식하는 것을‘명’이라고 하는데, 달과 해가 존재적으로 따로따로 분리된 두 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이루는 한 벌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죠. 해와 달을 동시에 포착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자의 통찰입니다."(194쪽)

 

  지금까지 노자의 사상을 잘못 이해하는 예도 많다. 흔히 알고 있기를 노자의 도가 철학은 복잡한 세속의 관계를 벗고 무위자연으로 돌아가 입신양명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무위라는 것은 관계 속에서 수동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세계의 변화에 자발적으로 유연하게 접촉하기 위한 시도, 즉 자신 앞에 펼쳐진 세계를 자기로부터 나오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저자는 노자의 꿰뚫는 사상에서 내가 주인으로 나답게 사는 길이란 기존의 이념에서 벗어나 '경계에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그래야 인문학적 통찰이 생긴다고 전한다. 본연의 '나'로 돌아간다는 건 세계와의 관계 방식이 나로부터 나와야 삶이 정상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현대인들의 불안, 사랑, 소통 등 삶의 불안한 문제들에 대한 답도 풀어준다.

 

 도대체 철학은 무엇일까. 고대철학이 현대의 삶을 어떻게 조명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현대의 철학자 최진석 교수가 들려주는 '노자 읽기'를 권한다.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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