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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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 질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목적을 어떤 효용가치에만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목적은 스스로를 고인 물과 같이 썩게 만들지 않고,

스스로를 자신만의 세계에 감금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책이란 자신의 마음과 상상력을 한 군데에 고착화시키지 않고,

마치 이카루스가 끝없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듯이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를 향해 용감하게 뛰어오를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는 의미이다.

이쯤에서 임어당의 말을 한 번 되씹어 보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기세계에 감금되어 있다.

일정한 틀에 박혀 있는 그가 일상에서 접촉하는 것은 소수의 지기일 뿐이므로

보고 듣는 것이 한정돼 있다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은 비블리오필리(Bibliophily)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여기에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부터 중국, 일본, 서양 여러 나라들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책벌레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수많은 책벌레들에게 있어서

책이란 단지 ‘읽기’만 하는 대상에서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들의 ‘읽기’는 자신의 인격이 묻어나는 ‘글쓰기’와 연관되어질 뿐만 아니라,

이 ‘글쓰기’를 통하여 그들의 삶의 태도와 인생의 철학을 보여주고

현재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앞서 독서의 이유로서 다른 사람의 경험과 철학을 ‘책’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대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한 곳에 고착화시키는 것을 극복하여

자유로운 사상과 철학으로 날아오르는 과정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서와 글쓰기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는 말이 있다. 즉, 글은 그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이다.

진실된 글은 그 진심이 다른 사람을 움직인다.

성실한 마음에서 읽히는 책은 읽는 사람에게 매사에 성실할 수 있는 원동력을 준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목을 들어봤을 다산의 [목민심서].

송기숙 선생님의 [녹두장군]에는 [목민심서]에 얽힌 전설이 등장한다.

갑오년 한 무리의 동학농민군이 고창 선운사의 암각여래상으로 향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부처님 배꼽 부분에 신기한 ‘석불비결’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꺼내는 날에 한양이 망한다는 비기가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이들 농민군이 이날 암각여래상에서 꺼낸 책이 바로 다산의 [목민심서]였다고 한다.

그들에게 봉건주의 조선은 변혁의 대상이었고,

백성의 고달픈 삶을 돌보아야 할 목민관들은 오히려 고혈을 빠는 압제자일 뿐이었다.

이러한 봉건주의 낡은 틀을 깨버리고자 일어난 이들에게 [목민심서]가 가진 의미가 무엇이었겠는가?

그런데 이 [목민심서]는 현대에도 또 하나의 어울리지 않는 전설을 낳았다.

전재산이 29만원에 불구하다던 전두환대통령께서는 해외순방 때마다 [목민심서]를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 보는 데서 열심히 읽으셨다고 한다.

1980년 광주의 피를 부르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그리고 재임시의 그 수많은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던

이 사람에게 [목민심서]는 도대체 무슨 의미였단 말인가?




이번에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을 읽으면서

나의 책읽기가 어떤 자세여야 하며, 나의 글쓰기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고 많은 배움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박은식 선생님은 피눈물나는 우리 역사를 서술하면서 [한국통사]의 ‘통’자를

보통 우리가 쓰는 ‘通史’로 쓰지 않고 가슴 아픈 역사라는 의미의 ‘痛史’라고 썼다고 한다.

그 반면에 정신까지도 외세에 팔아버린 친일파들의 글쓰기,

궤변으로 점철되었던 소피스트들과 ‘아테네의 잠을 깨우기 위한 한 마리 등에가 되겠다’던 소크라테스의 말과 글....

무엇보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다.

진실을 왜곡하여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사람들과 사대사상과 봉건사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글쓰기들...

내가 쓰고, 내가 생각하는 것에도 혹시 이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없는지를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보면서 평상시에도 더듬이를 예민하게 다듬는 개미들의 모습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 역시.... 그렇다면 내가 책을 읽는 것에 한 가지 목적이 더 추가될 듯 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양심을 배신하지 않도록 자신의 더듬이를 갈고 닦는 도구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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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속의 거미 블랙 캣(Black Cat) 4
아사구레 미쓰후미 지음 / 영림카디널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참 특이하고 별난 소설이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 ‘일본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읽는 일본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책장을 펼쳤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물론 이 책에도 사건이 나온다.

그러나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은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이 “듣는” 환경, “듣는” 사물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사물과 특히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묘사가 아주 절묘하다.




다치바나는 이사 첫 날 뺑소니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그 이후 청력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진다.

자신을 친 자동차를 찾던 중 다치바나는 자기가 이사오기 직전에 살던 여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단지 그 여자가 이곳저곳 남겨놓은 소리의 반향을 따라서..

다치바나는 여자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

이름도, 나이도, 생김새도, 목소리도...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치바나가 처음으로 여자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은 그 방에 남겨진 여자의 ‘소리’였다.




다치바나가 웅크린 자세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발밑에서 마룻바닥이 울렸다.

삐꺽하는 조금 깊은 반향.

벽을 주먹으로 두드릴 때는 조금 얕은 소리로 바닥이 울렸었는데,

이번 소리는 바닥의 다른 부분보다 더 깊게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리는 그곳에서만 두텁게 마룻바닥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목재가 일그러지는 것같이 희미한 소리의 연기가 먼지처럼 공간에서 춤을 추었다.

                                         (중략)

다치바나의 발바닥이 바닥을 밟으면, 일정한 버릇을 지닌 부분만 먼지처럼 소리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소리와 함께 천천히 움푹 패는 듯이 일그러져 보이는 것이었다.

                                         (중략)

누군가 밟은 흔적이다.

계속해서 바닥의 똑같은 자리를 밟은 것이 버릇처럼 되어 이런 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이 방안을 걸어다닌 사람이 습관적으로 밟은 장소와 그렇지 않은 장소의 차이가 바닥의 반향에 버릇을 남겨 놓은 것이다.

즉, 이것은 전에 있었던 사람이 걸었던 흔적이다.




인간이 얻는 정보의 대부분은 시각에 의존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시각이 주는 정보의 불완전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되었다.

착시를 이용해 똑같은 길이의 선을 다른 길이로 보이게 한다던가, 곧은 직선을 굽은 곡선처럼 보이게 한다던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일 수 있는 그림(토끼-오리 그림)이 등장한다던가...

숨은그림찾기 역시 주위와 유사하게 사물을 배치함으로써 눈을 속이는 놀이가 아닌가.

 

그러나 [돌속의 거미]는 정보의 원천으로서 가지는 시각을 거의 배제하고,

‘청각’이라는 다른 감각으로 시각을 대체하고, 청각을 통해 얻는 정보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 내는 과정을 풀어낸다.

[돌속의 거미]의 주인공인 다치바나의 청각은 너무나 예민해져서 세상의 모든 소리가 귀에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약이 없이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이다.

뿐만 더 나아가 이제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시각적인 형태로 변화한다.

소리가 기하학적인 모양을 갖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철에서 들리는 차임벨 소리는 원뿔과 삼각뿔, 구체가 이루는 화음으로 보이고,

새가 우는 소리는 ‘가느다란 천을 개울에 흘려보내는 것 같은 새빨갛게 늘어나는 소리가 매끄러운 디가 되어서 바람같이 흐르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 시각은 흐릿한 윤곽만 겨우 보여줄 뿐이며, 오히려 다치바나의 행동에 거추장스러운 감각이 되고,

다치바나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근원은 귀로 듣는 청각으로 변한다.

저자인 아사구레 미쓰후미는 절대적인 시각에 대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 중요성을 간과해 왔던 청각을 중심된 감각에 배치함으로써 세상을 인식하는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이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는 ‘고독’, ‘갇힘’, ‘출구없음’과 같은 이미지들은 현대 사회와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슬픈 형상화이기도 하다.

제목인 [돌속의 거미]는 일본 아이치현의 특산물인 ‘다카시 동자승’이란 돌멩이를 말한다.

이 돌은 암석 내부에 공간이 생겨서, 흔들면 속에 들은 이물질로 인해 소리가 발생한다.

이 소리를 다치바나는 돌속에 갇힌 거미가 발로 돌 내부를 긁어대는 소리로 듣는다.

결국 돌속에 갇힌 거미는 나갈 곳을 찾으나, 나갈 수 없다.

계속 돌 내부를 긁어대며 죽을 때까지 돌아다닐 뿐이다.

어쩌면 이런 거미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내주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책의 앞부분에는 다치바나가 꾸는 꿈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단지속에 꼼짝없이 들어 있는’ 상태로 자주 묘사되는 ‘갇혀 있는 이미지’는 사방으로 막힌 현실과 그 속에서의 탈출을 기원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준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냥 술술 읽어내려가는 책을 원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좀 지루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세밀한 소리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문장력은 정말 대단하다.

어딘지 특이하면서도 기묘한 점에 중점을 두는 분이라면 좋아할 듯 싶다.

 

뱀꼬리....

책표지에 나온 '판타지와 하드보일드가 결합된....' 이 말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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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5
마이크 마퀴스 지음, 김백리 옮김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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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있을수도 있는데, 밥 딜런은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이다.
아직 살아있는 인물에 대한 전기가 나온다는 것은 사실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밥 딜런은 사회적 활동을 모두 마치고 은퇴한 상태의 사람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2006년 65세의 나이로 발표한 ‘모던 타임즈(modern time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그의 활동영역은 포크라는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아서,
블루스, 컨트리, 가스펠, 재즈 등 다양한 형식으로의 끊임없는 변신을 가져왔던 사람이며,
뮤지션으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작가와 화가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바 있는 사람이다.

간단히 말해 밥 딜런은 ‘현재 진행형’의 인물로서,
‘평전’이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로 평가가 가능한 시점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평전’이란 말 그대로 ‘개인의 일생 전반에 걸쳐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가 아닌가.
또한 지금까지 밥 딜런의 살아온 인생을 보건데,
그는 앞으로 더 변화하고, 더 새로워지며, 지금과 더욱 다른 삶을 살 것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딜런의 평전이 나왔고, 번역되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형인 사람의 전기는 왜 출판되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1960년대 전후의 시대상황에 대한 보고서라고 생각한다.
즉, 밥 딜런은 한 명의 뮤지션이나 포크 가수가 아니라 1960년대를 관통하던 시대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불의 시대’를 지나온 아이콘이 어떤 변화의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살아온 밥 딜런을 통하여 주의하여 생각해 볼 점은
첫째는 ‘진정성’이며, 둘째는 ‘거대 담론 속의 개인’이라 측면이다.
밥 딜런을 비롯하여 저항을 노래한 수많은 뮤지션들을 추동한 동기는 ‘진정성(authenticity)’이었다.

포크 싱어들에게 있어 ‘진정성’은
역사와 전통, 포크와 민중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실존적인 요구였고, 그 기준은 바로 ‘정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발전의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는 자본주의는
이 시기에 산업적 생산물을 급격히 증가시켜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노동의 소외를 본격화시키기기 시작하였다.
광풍처럼 불어닥친 ‘매카시즘’이란 red complex는 어떤 종류의 비판적인 외침에도
‘반체제적’, ‘비애국적’, ‘빨갱이’란 딱지를 붙여가며 때론 목숨에 대한 탄압도 서슴치 않았다.
특히 미국 사회에 여전히 잔존해 있던 인종차별은 하나의 인습이 되어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들의 인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밥 딜런의 음악에 담긴 진정성이란
기본적으로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민중의식의 분출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자유와 평등을 억누르는 경제적 속박(자본주의)과 정치적 속박(반공주의, 매카시즘), 제도적 속박(온갖 인습과 구세대의 규제)을 끊고자 하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거대 담론 속의 개인’이란 측면에서 밥 딜런을 바라보는 것은
한 개인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구석이 남아 있는 지점이다.
더욱이 이런 밥 딜런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김지하, 박노해, 김광석, 안치환, 정태춘 등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은 감상을 준다.
밥 딜런은 1965년 전자기타를 들고 연주회에 나타나 ‘변절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으며,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그의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의심받아야 했다.
생각해보면, 밥 딜런은 그 시대의 아이콘은 되었으되, 그가 스스로 원하여 된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었다고 여겨진다.
그가 반대하고 거부한 것은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는 여러 가지 ‘거대 담론’들의 억압...
즉, 자본주의, 인종차별, 반공주의 등이었으되,
이러한 것들에 대한 반대가 다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그 담론의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이란 느낌이 들 때에 밥 딜런은 또다시 그 틀을 벗어나 버렸다.
그는 한 세대를 대변하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그 상태를 싫어했던 것이다.

                    내가 대변자가 될 것으로 여겨졌던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은 커녕
                                    심지어 그들을 아는 바도 전혀 없었으며..... 
                반체제 문화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든지 간에, 알 만큼은 알고 있었다. 
                                   내가 쓴 가사들, 내 노래에 담긴 의미들이 
                             논쟁으로 인해 파멸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밥 딜런 평전]을 보면서 역시 우리나라의 ‘불의 시대’였던 19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신에 저항하는 아이콘이었던 김지하 시인.
사회주의 혁명에 기여하고자 분주했던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 시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제도권으로 나와 여전히 활동하는 안치환... 그리고 김광석...
그리고 김남주, 정태춘 등등....
아직 본인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있고,
이제는 다소 간의 방향전환을 통해 새로운 앞길로 진출하는 이도 있고,
또 이제 고인이 되어 더 이상 그 얼굴을 볼 수 없는 이들도 있지만,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의 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불꽃과 같았던 저항의 역사와
이제 다소간 진정(?)되어 나름대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변화..
또 그 저항과 변화가 우리들에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다시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nin' in the Wind)”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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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마녀 2008-09-0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 '딜런 토마스'를 넘 좋아하여 이름을 '답 딜런'이라고 지었다던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로 시작하던 그 노래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네요~~
 
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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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하고 풍경이 울렸다"

적막을 깨는 한밤중의 소리가 얼마나 사람에게 공포감을 주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뭔가에 익숙해 있을 때, 특히 고요함에 익숙해져 있을 때 갑자기 들리는 '딸랑' 소리는
우선 청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다음으로 촉각을 자극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공포감을 주는 것이다.

'구온지' 가문의 데릴사위였던 한 남자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임신한지 20개월이 되도록 아기를 낳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삼류소설가인 '나(세키구치)'와 고서점을 운영하는 교고쿠도는 '구온지' 가문의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와 아기를 낳다 죽은 원념을 가리키는 '우부메'의 정체를 쫓는다.

[우부메의 여름]은 뭐라고 말하기 힘든 독특함을 가진 소설이었다. 마치 어두운 밤의 풍경소리처럼 말이다.
먼저 이 소설은 우리가 얻는 정보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는 시각에 대해 의심하도록 하며,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 실재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에 얼마나 허구가 들어 있는지를 말해준다.
이는 우리가 익숙해 있는 '감각'이란 고요함을 깨는 첫번째 풍경소리이다.
그리고 '우부메'라는.... 아기를 낳다가 죽어 그 원념이 아기를 찾아 떠도는 요괴의 전설을 내세우고,
이 전설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공포와 헛된 야욕에서 발생한 것임을 통렬하게 밝힘으로써
우리가 생활중에 체득하고 있는 과학과 합리는 통념을 정면에서 뒤엎어 버린다.
이는 우리가 익숙해 있는 '이성'이란 고요함을 깨는 두번째 풍경소리이다.
교고쿠 나츠히코는 좌우에서 울리는 이 풍경소리들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익숙해져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음양사'라는 존재가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허무맹랑함이 묘한 현실감 가운데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건 무엇보다도 사실과 허구, 이성과 감각, 과학과 민속이 나누어지지 않은 시기...
즉, 지금에 비해 보다 인간의 원형에 가깝던 시기(그래봤자 50년 전이지만)인 1952년을 배경으로 하면서,
황량한 언덕길에서 만나게 되는 끈적끈적한 일본의 여름 날씨... 또 갑작스레 퍼부어대는 빗줄기 등이 정치하게 배치되거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의 현실감은 전반부에 나오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그 유명한 '장광설'에서도 일정 부분 비롯한다고 보여진다.
감각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뇌는 어떻게 활동하는가 등과 같은 과학의 근본적이고 사변적인 질문과 더불어
민속학, 양자역학, 카오스 이론, 나비효과가 버무려져 펼쳐지는 지식의 장광설.
이것은 교고쿠 나츠히코가 배치한 양쪽의 풍경소리가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라는 의식을 독자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심어준다.


사실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은 편이 아니었고, 교고쿠 나츠히코란 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이었으며,
아무래도 과학과 이성에 찌든 머리를 가진 내게는 다소 억지스런 설정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게 하였지만
하여튼 특이하면서도 보통 공력을 가진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평을 쓰면서 교고쿠 나츠히코의 원작을 TV 애니매이션으로 제작한 것이 있다고 하는데...
제목은 [항간에 떠도는 100가지 이야기(巷說百物語)]라고 한다나....
교고쿠 나츠히코를 좋아하는 분들은 구해서 보면서 더운 여름을 잊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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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신혼여행
고스기 겐지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문학의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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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가장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중 한 명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비롯한 11개의 단편집이다.
최근 유행하는 일본 소설의 특징답게 술술 잘 읽혀져 가며, 일본의 여러 추리소설상에서 입상한 작가들의 이력에서 보이듯 미스테리한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로 나타나는 반전도 아주 상큼한 책이다.
뭐랄까.... 생각지도 않은 작은 미술관에서 작고 아기자기한 소품 명작들을 접한 느낌이라고 할까...
휴가지에 가져가서 잠시 머리를 식히면서 읽기에는 제격인 책이었다.


책의 제목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제목을 따서 [기묘한 신혼여행]으로 지었다.
이것은 물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11편의 소설 모두에 다양한 남녀관계 또는 부부관계가 등장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 숨겨진 이면을 짚어낸다는 의미도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아홉 번째 작품인 <예절의 문제>는 이런 설정의 예외이다)

사실 이런 책에서는 어떤 거창한 의미를 짚어 내어 말하기는 무척 어렵다.
구태여 찾아낸다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연인 또는 부부들이 겪게 되는 오해.
그리고 그 오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런 오해는 때론 가볍게 웃음지을 정도로 유쾌하게 표출되기도 하지만,
또 때론 주위 사람들조차 파멸로 이끌 정도로 무섭게 나타난다.
문학의 영원한 테마라 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의 상관관계.
그리고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
그 상관관계와 대화, 소통의 모습을 최근 유행하는 일본소설의 전형성 속에서 맛보는 것도 색다른 독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11편의 간단한 줄거리와 함께 더운 밤을 다소나마 시원하게 보내는 것은 어떨까?

<마지막 꽃다발>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며 나온다.
꽃미남인 ‘나’와 나의 첫사랑인 ‘에리카’의 짧은 행복과 비극적 결말의 이야기.
아름다운 아가씨인 ‘나’의 결혼식을 앞두고 배달되는 정체불명의 선물에 관한 이야가.
이 두 이야기은 과연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붉은 강>
‘인간적인’ 변호사를 표방하는 가자미 변호사.
그는 자기 부인을 살해한 범인에 대한 변호를 맡을 정도로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가자미 변호사가 변호한 강간살인범 ‘무가이’가 출소하게 되고, 변호사의 집에 얹혀 사는데..
무가이는 가자미 변호사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음을 눈치채게 되고,
이는 멀고 먼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연결되어 연쇄살인을 부른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반전!


<겹쳐서 두 개>
어느 호텔 방에서 아름다운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놀라운 것은 여자의 시체는 머리에서 허리까지만 있을 뿐, 시체에 붙은 하반신은 남자의 것이었다.
즉, 두 사람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겹쳐진 시체인데...
그렇다면 여자의 하반신과 남자의 상반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


<결혼식 손님>
아키히코는 5년 전 히로코라는 여성을 유혹하여 즐긴 후 바로 헤어져 버린다.
그러나 아키히코에 반한 히로코는 슬픔으로 자살해 버리는데...
5년 후 아키히코의 결혼식.
아키히코는 피로연장에서 히로코의 어머니로 보이는 노파를 발견하고 불안에 휩싸인다.

<기묘한 신혼여행>
하와이에서의 신혼여행 첫날 밤.
‘나’는 아내인 나오미를 죽이려 목을 조른다.
나오미가 전처의 딸이었던 히로코를 죽였다는 의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에 대한 벌>
금전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던 이토코는 친한 친구인 유카리를 찾아간다.
남편의 불륜에 대한 이혼위자료로 시아버지의 거액의 상속재산을 기대하던 유카리.
유카리는 지나가는 말로 이토코에게 “누가 그 노인 좀 안락사 안 시켜주나....”라고 말한다.


<기묘한 인연>
가벼운 접촉사고 후 ‘스미다’라는 예의바른 사람을 알게 된 변호사 ‘나’
어느 날 스미다의 고향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형 가구회사와 지역 주민들간의 분쟁 소식을 알게 되고,
‘나’는 마을 주민들 편에 서서 유리한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그 뒤에 숨은 의도는?

 

<좋은 사람이지만>
영업사원인 ‘나’는 상사의 소개로 ‘마리에’라는 의사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나는 마리에와 수영장에서 만날 약속을 하지만,
마침 일이 생긴 마리에는 수영장에 오지 않았고, 그 동안 나는 귀걸이를 잃어버린 한 여성을 돕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귀걸이를 찾아준 여성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예절의 문제>
“문단속을 잘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한 신문에 실린 독자 투고.
그런데 그 독자투고에는 끔찍한 사건을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더욱이 투고한 독자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아메리카 아이스>
마약과 강간, 폭력이 횡행하는 미국의 한 고등학교.
일본인 유학생 노보루는 일본 여학생을 강간한 세 명의 미국인을 혼내준다.
앙심을 품은 미국 학생들은 ‘나’와 함께 노보루를 없앨 계획을 세우는데...
노보루를 없애기로 정한 날. 노보루는 멀쩡히 돌아왔으나 미국 학생들은 행방불명이 된다.

 

<식인 상어>
일본 내해에서 식인 상어를 보았다는 제보가 한 언론사에 접수된다.
그리고 2주 후, 정말 상어에 의해 한 잠수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과연 식인상어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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