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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딸랑, 하고 풍경이 울렸다"
적막을 깨는 한밤중의 소리가 얼마나 사람에게 공포감을 주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뭔가에 익숙해 있을 때, 특히 고요함에 익숙해져 있을 때 갑자기 들리는 '딸랑' 소리는
우선 청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다음으로 촉각을 자극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공포감을 주는 것이다.
'구온지' 가문의 데릴사위였던 한 남자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임신한지 20개월이 되도록 아기를 낳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삼류소설가인 '나(세키구치)'와 고서점을 운영하는 교고쿠도는 '구온지' 가문의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와 아기를 낳다 죽은 원념을 가리키는 '우부메'의 정체를 쫓는다.
[우부메의 여름]은 뭐라고 말하기 힘든 독특함을 가진 소설이었다. 마치 어두운 밤의 풍경소리처럼 말이다.
먼저 이 소설은 우리가 얻는 정보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는 시각에 대해 의심하도록 하며,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 실재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에 얼마나 허구가 들어 있는지를 말해준다.
이는 우리가 익숙해 있는 '감각'이란 고요함을 깨는 첫번째 풍경소리이다.
그리고 '우부메'라는.... 아기를 낳다가 죽어 그 원념이 아기를 찾아 떠도는 요괴의 전설을 내세우고,
이 전설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공포와 헛된 야욕에서 발생한 것임을 통렬하게 밝힘으로써
우리가 생활중에 체득하고 있는 과학과 합리는 통념을 정면에서 뒤엎어 버린다.
이는 우리가 익숙해 있는 '이성'이란 고요함을 깨는 두번째 풍경소리이다.
교고쿠 나츠히코는 좌우에서 울리는 이 풍경소리들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익숙해져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음양사'라는 존재가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허무맹랑함이 묘한 현실감 가운데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건 무엇보다도 사실과 허구, 이성과 감각, 과학과 민속이 나누어지지 않은 시기...
즉, 지금에 비해 보다 인간의 원형에 가깝던 시기(그래봤자 50년 전이지만)인 1952년을 배경으로 하면서,
황량한 언덕길에서 만나게 되는 끈적끈적한 일본의 여름 날씨... 또 갑작스레 퍼부어대는 빗줄기 등이 정치하게 배치되거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의 현실감은 전반부에 나오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그 유명한 '장광설'에서도 일정 부분 비롯한다고 보여진다.
감각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뇌는 어떻게 활동하는가 등과 같은 과학의 근본적이고 사변적인 질문과 더불어
민속학, 양자역학, 카오스 이론, 나비효과가 버무려져 펼쳐지는 지식의 장광설.
이것은 교고쿠 나츠히코가 배치한 양쪽의 풍경소리가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라는 의식을 독자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심어준다.
사실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은 편이 아니었고, 교고쿠 나츠히코란 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이었으며,
아무래도 과학과 이성에 찌든 머리를 가진 내게는 다소 억지스런 설정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게 하였지만
하여튼 특이하면서도 보통 공력을 가진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평을 쓰면서 교고쿠 나츠히코의 원작을 TV 애니매이션으로 제작한 것이 있다고 하는데...
제목은 [항간에 떠도는 100가지 이야기(巷說百物語)]라고 한다나....
교고쿠 나츠히코를 좋아하는 분들은 구해서 보면서 더운 여름을 잊어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