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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 질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목적을 어떤 효용가치에만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목적은 스스로를 고인 물과 같이 썩게 만들지 않고,
스스로를 자신만의 세계에 감금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책이란 자신의 마음과 상상력을 한 군데에 고착화시키지 않고,
마치 이카루스가 끝없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듯이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를 향해 용감하게 뛰어오를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는 의미이다.
이쯤에서 임어당의 말을 한 번 되씹어 보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기세계에 감금되어 있다.
일정한 틀에 박혀 있는 그가 일상에서 접촉하는 것은 소수의 지기일 뿐이므로
보고 듣는 것이 한정돼 있다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은 비블리오필리(Bibliophily)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여기에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부터 중국, 일본, 서양 여러 나라들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책벌레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수많은 책벌레들에게 있어서
책이란 단지 ‘읽기’만 하는 대상에서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들의 ‘읽기’는 자신의 인격이 묻어나는 ‘글쓰기’와 연관되어질 뿐만 아니라,
이 ‘글쓰기’를 통하여 그들의 삶의 태도와 인생의 철학을 보여주고
현재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앞서 독서의 이유로서 다른 사람의 경험과 철학을 ‘책’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대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한 곳에 고착화시키는 것을 극복하여
자유로운 사상과 철학으로 날아오르는 과정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서와 글쓰기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는 말이 있다. 즉, 글은 그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이다.
진실된 글은 그 진심이 다른 사람을 움직인다.
성실한 마음에서 읽히는 책은 읽는 사람에게 매사에 성실할 수 있는 원동력을 준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목을 들어봤을 다산의 [목민심서].
송기숙 선생님의 [녹두장군]에는 [목민심서]에 얽힌 전설이 등장한다.
갑오년 한 무리의 동학농민군이 고창 선운사의 암각여래상으로 향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부처님 배꼽 부분에 신기한 ‘석불비결’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꺼내는 날에 한양이 망한다는 비기가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이들 농민군이 이날 암각여래상에서 꺼낸 책이 바로 다산의 [목민심서]였다고 한다.
그들에게 봉건주의 조선은 변혁의 대상이었고,
백성의 고달픈 삶을 돌보아야 할 목민관들은 오히려 고혈을 빠는 압제자일 뿐이었다.
이러한 봉건주의 낡은 틀을 깨버리고자 일어난 이들에게 [목민심서]가 가진 의미가 무엇이었겠는가?
그런데 이 [목민심서]는 현대에도 또 하나의 어울리지 않는 전설을 낳았다.
전재산이 29만원에 불구하다던 전두환대통령께서는 해외순방 때마다 [목민심서]를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 보는 데서 열심히 읽으셨다고 한다.
1980년 광주의 피를 부르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그리고 재임시의 그 수많은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던
이 사람에게 [목민심서]는 도대체 무슨 의미였단 말인가?
이번에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을 읽으면서
나의 책읽기가 어떤 자세여야 하며, 나의 글쓰기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고 많은 배움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박은식 선생님은 피눈물나는 우리 역사를 서술하면서 [한국통사]의 ‘통’자를
보통 우리가 쓰는 ‘通史’로 쓰지 않고 가슴 아픈 역사라는 의미의 ‘痛史’라고 썼다고 한다.
그 반면에 정신까지도 외세에 팔아버린 친일파들의 글쓰기,
궤변으로 점철되었던 소피스트들과 ‘아테네의 잠을 깨우기 위한 한 마리 등에가 되겠다’던 소크라테스의 말과 글....
무엇보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다.
진실을 왜곡하여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사람들과 사대사상과 봉건사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글쓰기들...
내가 쓰고, 내가 생각하는 것에도 혹시 이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없는지를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보면서 평상시에도 더듬이를 예민하게 다듬는 개미들의 모습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 역시.... 그렇다면 내가 책을 읽는 것에 한 가지 목적이 더 추가될 듯 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양심을 배신하지 않도록 자신의 더듬이를 갈고 닦는 도구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