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의 도시
데이비드 베니오프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전쟁은 모두를 변화시켰다.” (p.362)

그렇습니다. 정말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전쟁은 한 가정의 좋은 남편, 자상한 아버지로 하여금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유대인들을 학살한 독가스 버튼을 누른 전범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쟁은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총화단결’을 최상의 모토로 삼도록 하였고, ‘정부 비판=적(敵)’라는 단순한 논리를 내재화하여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전시에는 평화로울 때에 쉽게 나타나지 않을 잔인함, 폭력성, 이기성이 미덕이 되며,
화해와 이해는 ‘이적행위(利敵行爲)’로 간주되어 반국가적 가치로 전락합니다.
전쟁은 가치를 전도시킵니다. 인간의 가치는 먼 발치로 밀려나는 대신, 표면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의 가치를, 내부적으로는 지배층의 이해관계라는 가치를 극대화 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을 향해 치닫던 1942년 겨울.
900일간 독일군에 포위된 레닌그라드는 굶주림과 절망의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누구보다 레닌그라드를 사랑하고 조국을 위해 용기있는 행동을 할 자신이 있었던 소년 레프는 친구들과 우연히 낙오한 독일군 병사를 ‘털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고, 감옥에서 탈영병 신세로 들어온 콜야라는 병사를 만나게 됩니다.
죽음을 기다리던 그들에게 내려진 거부할 수 없는 그레치코 대령의 제안.
대령의 딸의 결혼식 케이크에 들어갈 계란 12개를 찾아오면 석방하겠다는 제안을 듣고 목숨을 걸고 최전선으로 향합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다룬 책과 영화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들의 도시]에서 다시 한 번 분노를 금하기 어려운 장면들과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전체’나 ‘국가’, ‘민족’이라는 절대 가치 앞에서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수단화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그 신성한 제단에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병영 문화가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는 장면들입니다.
이는 파시스트들은 물론이고 프롤레타리아를 위해 존재한다는 소련의 붉은 군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그런 가치관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켜 수많은 민중과 병사들을 전선으로 내몰고 아사 직전의 상태까지 몰아간 소위 ‘윗대가리’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들입니다.
순결한 아리안 민족이나 국가사회주의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나 스탈린 등 최상층 ‘윗대가리’들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갈 때 안전한 후방에서 호의호식했겠죠.
겨우(!) 자기 딸의 결혼식에 쓸 계란을 구하기 위해 두 생명을 전선으로 몰아대는 소련군의 그레치코 대령과 러시아 소녀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아 도망치려는 소녀의 두 발목을 톱질해 버리는 독일군의 아벤드로트 등 말단 ‘대가리들’.

그런데 [도둑들의 도시]를 보면서 전쟁으로 인한 이와 같은 ‘가치의 전도’가 2009년 현재 한국에서도 이런 병영문화의 잔재로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병영문화는 권위에 대한 복종과 희생을 의미하며, 지식의 전제(專制)와 독점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리고 개인은 전체를 위하여 희생될 수 있다는 논리로 지탱됩니다.
해병대 체험이니 전방입소교육 체험이니 하는 것들은 ‘고통을 통해 자신을 이길 정신력을 신장한다’는 이상한 논리 하에 개인의 육체에 대한 학대를 미화시킵니다.
사회의 질서와 조화, 안보가 강조되지만 그 속에는 불공평한 관계에 처한 개인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개인은 국가에게, 학생은 교사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아이는 어른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권위’에 따른 복종은 계급에 대한 복종이라는 병영 문화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리들의 머릿속을 지배해 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도둑들의 도시]는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었지만, ‘입에서는 달고 배에서는 쓴’ 소설이었습니다.
레프는 결국 계란 12개를 얻어 생명을 건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미국으로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계란 12개 때문에 당한 콜야의 죽음은 어이없는 개죽음(!!)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를 기다렸을 소냐의 슬픔이 언급되지 않은 것이 더욱 슬프게 합니다.
독일군의 시달림에서 벗어나 탈출한 소녀들은 혹독했던 기억과 그보다 더 혹독할 사회적 편견 및 경제적 어려움에서 어떻게 살아갔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도둑들의 도시]에서 나오는 참상은 2차 세계대전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쓴 맛을 더하게 합니다.
전쟁의 명분은 늘 그렇듯이 뭔가 멋진 말들로 치장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이라크 국민의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명분으로 걸었지만, 진정한 목적은 석유의 안정적 확보와 친미정권 수립에 따른 이란 등 중동국가들 견제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픈 눈빛과 참상들, 워싱턴에 앉아 ‘신이여! 미국을 구원하소서!’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도둑들의 도시]에 나오는 장면들과 시대와 배경만 조금 달라졌을 뿐 변한 것이 없습니다.
나찌의 인종주의는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이들의 현실은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능가합니다.

이 책을 비롯하여 전쟁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국가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화롭게 살기를 갈구하고, 전쟁으로 자신이나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경험은 날로 진보해 나가는데, 왜 가장 야만적인 행태인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파병하게 되었을 때, 그 불가피성을 역설하던 말, '국익 때문에...'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바르지 않은 전쟁에 참가하여 그들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 과연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는지 의문이 갑니다.

67년 전 레닌그라드를 사이에 둔 소련군과 독일군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레닌그라드의 민간인들이 경험한 처참함은 더욱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전쟁 후에 그들에게 돌아간 보상이나 위로는 거의 없었습니다. 전후복구라는 더 피폐한 삶을 참아야 할 의무만 주어졌을 뿐입니다.
평소에는 레닌그라드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것처럼 말하던 레프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자 '살고 싶다!'라는 순수한 소원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 가치를 존중하고, 이 소원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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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오 평전 - 유교의 전제에 맞선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옌리에산.주지엔구오 지음, 홍승직 옮김 / 돌베개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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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지(李 贄). 호를 탁오(卓吾)라 했던 그의 평전의 원래 제목은 [중국제일 사상범(中國第一 思想犯: 이지전(李贄傳)]이다.
사상범! 우리 현대사에서 무척이나 익숙한 단어이다.
군사독재시설,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사상범’이라는 굴레를 씌워서 탄압한 것이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단어가 지금부터 400여년 전인 중국 명(明) 말기 이탁오라는 사람에게 붙여진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기에?

"나는 어릴적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정작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공자를 존경하지만, 공자의 어디가 존경할 만한지 알지 못한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가 짖은 까닭을 묻는다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쑥스럽게 웃을 수밖에..."

“나는 따라짖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이탁오의 통렬한 자기반성이자, 현대의 ‘나’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온 말이었다.
공자에게서 시작한 유학은 맹자를 거쳐 정호‧정이 형제를 거쳐 송(宋)의 주희에 의하여 집대성된다. 그리고 이탁오가 살았던 명나라 말기. 주자학은 정통성을 독점하고 주자와 다른 해석들은 모두 이단으로 배척하는 지위에 오른다.
이탁오는 이러한 앎의 독점과 사상의 교조화에 따른 편협한 정통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였고, 이 때문에 혹세무민의 죄목을 얻어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격렬하고 치열하게 살아서였을까.
그가 남긴 책 제목 역시 보통 비장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과격한(?) 주장을 담은 책들로 인해 피비린내가 일 것을 예상했는지, 그는 자신의 책에 ‘불태워 버릴 책’이란 뜻의 ‘분서(焚書)’, ‘숨겨야 할 책’의 ‘장서(藏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책은 명, 청 시대에 가장 유명한 금서였고, 신해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논란 가운데 정당한 평가를 얻는다.

[이탁오 평전]은 중국 사상사의 이단아였던 한 개인의 평전일 뿐만 아니라,
쇠락해 가던 대제국 명나라의 사회상과 당대 지성의 실상을 아는 데에도 유용하게 읽힌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는 말단관료들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했는지, 당시의 지배적 사상이란 것이 얼마나 민중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었는지, 그래서 그 지배사상이란 것이 얼마나 무기력하면서도 잔혹했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송나라 주희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유학과 그 이후의 유학을 나눌 정도로 유학사상사에서 주자의 사상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격물치지를 통해 얻은 사물의 이(理)를 인간의 본성(性)으로 환원시킨 ‘성즉리(性卽理)' 주장은 ’사물의 이치=마음의 본성‘으로 이해되면서 일원적 관념론으로 빠져든다.
이것이 그냥 한 명의 학자, 또는 하나의 학파의 사상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으리라.
문제는 이 일원적 관념론이 절대화되어 다른 사상은 모두 천박하고 저질이며, 오직 주자의 사상만이 고귀하여 유학의 정통성이 주자에게 계승되었으므로 그 정통성을 고수해야 한다는 소위 ‘주자도통주의(朱子道統主義)’로 발전하여 사회를 장악했다는 점이었다.
주자를 비판한다는 것은 곧 그 사회를 부정하는 큰 일탈이었으며,
주자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것은 곧 ‘혹세무민’의 죄를 의미했다.
수많은 학자들이 단지 ‘주자와 다른 주장이다’라는 이유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배척을 당해야 했고,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놓아야 했다.

나는 이 책, [이탁오 평전]을 보면서 그가 당시 사회체계와 지성계의 어떤 점을 그렇게 맹렬하게 비판하였는지, 또 왜 그에게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란 호칭이 붙었는지 어렴풋 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이탁오는 무엇보다 앎의 전제(專制)를 비판했다. 앎의 전제는 하나의 앎, 하나의 해석에 절대성을 부여하고, 그 이외의 앎과 해석은 배척하는 사상의 독점인 것이다.
물건의 독점은 필연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품질을 낮춘다.
마찬가지로 사상의 독점은 앎의 생명력을 죽이고 지식을 교조화시킴으로서 다양한 입장의 존립 자체를 거부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앎의 독점은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와 손쉽게 결합하여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세뇌시킨다는 점이다.
앎의 독점이란 결국 획일화가 아닌가. 지식의 획일화는 사람들을 통치자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삶에 만족하게 하는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이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지배층은 절대 권위의 지식을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외우고 따르기만 할 것을 요구한다. 게다가 이 시대처럼 절대 권위의 지식이 ‘과거(科擧)’란 이름으로 출세의 수단이 되어 버리면 소극적으로는 ‘정답을 달달 외워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포장된’ 허울뿐인 지식만이 남게 되거나, 적극적으로는 어떤 반대편의 주장, 어떤 다양한 생각도 인정하지 않는 ‘낙인찍기’의 도구로 변질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성인의 말씀’이란 허울 속에 교조화되고 전제화된 앎에 대해 이탁오가 얼마나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지 보자.

“만약 반드시 공자로부터 모든 것을 취해야 한다면, 천고 이전 공자가 없을 때는 끝내 사람이 될 수 없었단 말인가?”
“하늘이 한 사람을 태어나게 했으면 당연히 그 사람의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자격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폐기하고, 모두가 공자에게 복종케 하고, 그를 따라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하는가?”

이탁오 사상의 비판지점으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앎의 무용성이다.
이는 아마도 이탁오 본인의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그는 어릴 때부터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 추위 속에서 살아야 했고, 말단 관리 생활 가운데 뇌물이나 청탁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급기야는 3남 4녀 중 딸 하나를 남기고 모두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떴으며, 특히 둘째 딸과 셋째 딸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비극을 맞았다.
(칼 마르크스와 무척이나 비슷하지 않은가!!!!!)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던 그에게 현실 생활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앎은 단지 화려한 언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그에게 기존 지식을 달달 외워 출세한 관리들의 무능함과 부정부패는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입으로 ‘인의’와 ‘도덕’을 내세우는 자들은 오로지 입만 살았을 뿐,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 한끼 해결해 주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을 실제 몸으로 겪은 이탁오는 철저하게 ‘공리주의’ 입장에서 허울뿐인 도덕론을 공격한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이 인륜이요 만물의 이치이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을 제외한다면 인륜도, 만물의 이치도 없다.” 
“‘천리(天理)를 보존하고 인욕(人慾)을 억누른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입고 먹는 것을 떠나 ‘인륜 물리(人倫物理)’가 어떻다는 둥 논하는 것은 바로 세상을 속이고 명성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기존 지식의 무용성에 대한 비판은 무능한 관료집단 및 지배집단인 향신(鄕紳)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주희의 주장대로) 하늘이 곧 이라고 치자(天卽理).
그러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은 바로 ‘이(理)’에 제사 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理)’는 사람마다 똑같이 지니고 있는데, 왜 오직 황제만 ‘이(理)’에 제사 지낼 수 있다는 것인가? 일반 백성은 왜 ‘이(理)’, 즉, 하늘에 제사 지낼 수 없나?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은 국가의 대규모 제사 규범으로 백성의 재산을 크게 축내고 백성의 노동력을 동원한다.
만약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이 곧 ‘이(理)’에 제사지내는 것이라면, ‘이(理)’가 있는 것이 ‘이(理)’가 없는 것만도 못하지 않은가!”

황제는 곧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로 자처하던 시대.
지금 봐도 위험천만해 보이는 이런 주장을 이탁오는 당시 지배계급 앞에서 서슴지 않는다.
하늘이 있어 백성의 재산을 축내고,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라면 그 하늘은 차라리 없다는 것이 낫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대역죄에 해당할 위험한 발언이었던 것이다.

한 가지 이탁오를 위해 변호하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그를 ‘극단적 개인주의자’, ‘이기주의자’로 보는 입장이다.
이런 비판의 근거는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자기의 길을 고집하는 것, ‘자기를 위하는 것’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비판은 이탁오의 주장 표면만을 파악한 것이다.
사실 유교 문화가 뿌리내려 온 중국 사회는 줄곧 사회 질서를 강조하여 개인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나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은 사회 질서를 위한 윤리 관계 내에서 생활하면서, 이 관계 준칙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천리에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윤리 관계라는 것이 공공연한 불평등원칙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 질서를 수호하고 조화와 안정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오직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여기서 개인은 ‘낮은 지위’, ‘억압받는 지위’에 있는 개인이란 점이 문제이다.
부모관계에서 (부모가 아닌) 자식, 군신관계에서 (군주가 아닌) 신하, 부부관계에서 (남편이 아닌) 아내, 형제관계에서 (형이 아닌) 아우,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관리가 아닌) 백성이 희생해야 하며,
그들로 하여금 군주, 부모, 남편, 형, 관리의 압박을 순종하며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윤리 관계와 사회 질서 뒤에 숨겨진 논리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 지향’은 실상 엄청난 허위성과 잔혹성을 가진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자기 길을 가는 데 힘쓴다”는 이탁오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는가?
그의 개인 본위와 개인 행복 지상주의는 현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며, 억압하고 지배하는 자들에 대한 대담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탁오의 주장은 윤리 본위와 ‘사회 지향’의 유교 국가에서 부처와 노자보다 훨씬 파괴력을 지닌 이단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탁오 평전]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했던 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2009년 대한민국’에 그의 비판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의 비판을 거울 삼아 우리나라의 정치, 현대사, 학계의 모습을 비추어 보라.

앎과 사상의 독점은 우리 사회에서 무수한 ‘공산주의자’와 ‘빨갱이’를 양산해 왔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인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교묘히 자극함으로서
지배층의 이해관계에 상충되는 주장에 대해 붉은색을 덧칠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이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한반복되고 있는 전략 아닌가.
이들에게 좌파란 말그대로 중도를 기준으로 한 진보적 집단을 의미하는 바가 아니라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식의 감정적 반공의식에 호소하여 타도해야 할, 국가와 민족의 적(敵)일 따름이다.
때문에 이런 ‘빨갱이’들의 위협 앞에서 개인이 당연히 누려야 할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행복추구의 자유와 권리는 간단하게 무시된다.
지금 정부는 ‘실용’이라는 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지만,
그 실용의 열매는 과연 누구의 배를 불리고 있으며, 살아갈 공간 한 뼘조차 얻기 힘들어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답으로 돌아오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탁오 역시 그가 살고 있었던 종법적 봉건제도라는 시대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좌충우돌식 강단과 고집은 인간관계에 서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가 현재와 같은 민주주의나 공화정을 지향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백성을 가난에 빠뜨린 원인이 사상의 독점에서 나온 무용지물에 불과한 지식과 지배층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원인 진단과, 실질적이고 다양한 앎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종법적 봉건질서가 지배하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탁오는 지금부터 400여년 전, 우리나라도 아닌 중국(명나라)에서 살다 간 사람이었다.
그 때의 주장이 지금 우리 사회에 적용되어 수많은 ‘21세기 한국의 이탁오’를 양산하고 있다고 본다면, 이건 나의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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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 : 조선 선비가 본 드넓은 아시아 샘깊은 오늘고전 10
방현희 지음, 김태헌 그림 / 알마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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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표류한 일에 대한 기록’이란 의미의 표해록(漂海錄).
이 책은 지금부터 500여년 전인 1488년 ‘최 부’라는 조선 선비가 제주도 인근 바다에서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중국 남부 해안 지역까지 표류한 후 천신만고 끝에 강남 지역과 북경을 거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6개월의 일을 기록한 책이다.

알마에서 ‘샘깊은 오늘 고전’ 시리즈로 펴낸 [표해록]은 완역본은 아니며,
대체로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생 정도의 독자들에게 적합하게 다듬어져 있다.
물론 아이들 대상의 편집본이라고 하여 그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당시(조선 성종 연간) 주위 세계와 성리학적 세계관,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조선 선비의 인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성인들이 읽어도 당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면 자신에 대한 제어력을 잃기 쉬운 법이다.
그런데 최 부는 몇 차례나 생사의 갈림길을 넘어들면서도 스스로를 다잡고, 조선 사대부로서의 기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마음이 급박한 상황에서 풍랑을 만나 생사가 위태롭던 상황,
겨우 중국 땅에 당도하여 위기를 넘기나 싶더니 해적을 만나고,
중국 군사들에게 왜구로 오인받아 목이 날아갈 뻔한 상황.
지금처럼 통신시설이 발달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역만리 떨어져 기약없이 돌아갈 날만 기다려야 할 상황.
이렇게 그는 바다에서 생명을 건졌다 뿐이지, 그 생명을 지탱해 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그는 침착하게 일행을 이끌어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기지와 순발력을 발휘하여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태도를 보여 중국인들로부터 감탄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나는 [표해록]을 보면서 최 부란 한 선비로부터,
아니, 최 부로 대표되는 조선전기 사대부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역시 생사가 급박한 바다 위에서 보여준 놀라운 판단이다.
풍랑과 싸우느라 기진맥진한 일행은 마실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상태에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모두 탈진 상태에 이른다.
이 때 나온 귤 몇 개!!!
최 부는 관리라는 입장에서, 지배계층(사대부)이라는 입장에서 이 귤을 독식했을까? 배에 탄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우리들은 모두가 한 나라 사람으로 그 정은 한 핏줄과 같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
이 귤과 술은 한 방울이 천금과 같으니 네가 이를 맡아 배에 탄 사람의 절박한 목마름을 풀어주는 것이 좋겠다.”

그는 이 소중한 귤의 사용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고,
‘입술이 타고 입이 마른’ 심각한 상태의 사람들에게 주도록 하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만 남은 상황에서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니...
만약 그가 자신의 계급적 우위를 주장하여 귤을 독점하여 하였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작은 배위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발생하여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장면은 수차(水車)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 부는 북경을 향해 가면서 갑자기 동행한 중국 관리에게 수차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말한다.
물이나 퍼올리는 수차에 선비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몰라 묻는 관리에게 답하는 말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나라는 논이 많은데 자주 가뭄이 든다오.
만약 수차 제작법을 배워 우리 백성에게 가르쳐 준다면 농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마치 그로부터 300여년 후에 나타난 실학자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당시 사대부로서는 놀라운 성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관리 역시 수차에는 문외한이었던지 ‘형태와 돌리는 방법을 대략’ 듣기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이런 것이 조선 전기 사대부들이 가졌던 기본 소양이고 자신감이었나 보다.
아쉽다면 이런 진취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사대부들의 소양이 그 직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연산군 치세부터 일어난 사화는 사대부들의 건전한 성장과 진출을 막았고,
(최 부 역시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양끝에 처형당했다)
그 직후 일어난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성리학 일변도의 이념만이 강조되어 새롭고 진취적인 풍토의 진작은 이단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표해록]을 보면 자꾸 그런 생각이 겹친다.
조선 초기 훈구파의 실용적이면서도 우리 문화에 대해 가졌던 자신감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사림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어 ‘실사구시’와 ‘지조’가 함께 살아숨쉬는 조선사회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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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우주 - 별의 탄생에서 인류의 진화까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본 우주의 수수께끼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이민용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의 <은하철도 999>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안드로메다까지 먼 여행을 떠나는 한 여행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와 영원히 순환하는 은하철도를 배경으로 활용하였는데,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주제의식이 잘 조화된 명작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우주는 무엇보다 ‘무한함’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시골마을의 밤하늘은 정말 캄캄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던 검은 심연(深淵)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검은 밤하늘에 쏟아져 내릴 듯 달려 있던(?) 별들은 도저히 끝까지 헤아릴 수 없었다. 어쩌면 ‘무한하다’는 말은 인간 이성이 쌓아 온 물리적 법칙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감의 표현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력감에 빠진 우리들이 이 ‘무한함’을 조물주의 문제로 돌린다고 해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많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에서부터 평범한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보면서 기독교의 창조주든, 범신론적인 신이든, 자연현상을 ‘신’의 위상까지 끌어 올리든 하나의 절대자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우주는 자연과학의 대상이면서 언제나 인문학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 같다. 우주의 무한함은 인간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좋은 대비거리였고,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는 질문은 신의 존재와 연결되어 신학과 철학의 영원한 주제가 되었다. 우주에 대한 하나의 사실을 밝혀냈다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뿐, 곧바로 풀리지 않는 의문거리가 꼬리를 물고 나타나 과학의 한계를 사유하게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증명해낸 시간과 공간의 일그러짐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인식해온 ‘시공간의 절대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뉴튼식의 물리적 세계관을 붕괴시켰다. 그 뿐인가? 우주에 인간말고 다른 생명체와 문명이 있을 것이란 상상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온 오래된 주제였으며, 별들을 연결한 별자리는 신화의 형태로 인간의 뇌리에 박혀 있다.

그래서였을까? 게르하르트 슈타군의 [유혹하는 우주] 표지에 쓰인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본 우주의 수수께끼’라는 표현이 아주 낯설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유혹하는 우주]는 대단히 충격적인 ‘인문학적 언어’로 시작한다.

                                    “세계는 착각이고 모든 것은 현상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연상하게 하는 이 프롤로그는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우주의 모든 현상(별이 반짝이고, 혜성이 날아다니는 것,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 등)은 실제 우리 감각으로 인식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현상이라는 점에서 착각이며, 따라서 절대적 법칙이 아닌 상식을 뛰어넘는 상대적 입장이 필요한 공간이 우주라는 의미이다. 환원론적 입장이기는 하지만 우주를 비롯한 모든 물질은 사실 형체를 볼 수 없는 원자들의 집합체이다. 물론 이 원자는 또 쪼개어 양성자와 전자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우주를 ‘감상하는’ 것에는 눈과 망원경으로 충분하겠지만,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자의 성격과 운동을 상상하고 검정하는 머리와 가슴이 필요하다. 마치 플라톤이 현상에 구애받지 않고 궁극적 이데아를 찾아 나선 것과 같이 말이다.

[유혹하는 우주]는 우주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원자(양성자, 전자)의 움직임과 빛의 성질부터 출발하여 우주의 현상(시간과 공간까지도)을 왜 상대적으로 보아야 하는지, 우주와 별의 일생은 어떠한지, 우주에서 생명은 어떻게 발생하여 진화해 왔는지의 순서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그리고 저자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 중간중간에 인문학적으로 생각해 볼만한 많은 공간을 주고 있다. 절대성에 대해서, 창조주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외계생명체에 대해서 등등... 이 책을 통해 과학적 지식과 함께 이런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채워둔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독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우주의 생성-성장-사멸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인간의 일생과 어딘지 닮아 있는 우주의 일생을 보면서 무척이나 신기했는데, 이와 연관된 블랙홀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우주와 신에 대한 상상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사실 우주는 인간의 미미함을 보여주는 기제로 활용되어 왔다. 인간의 역사는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 수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초에 30만 km나 나가는 빛이 무려(!) 1년을 진행하는 ‘광년’을 거리의 기본 단위로 삼는 우주의 스케일 앞에 인간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우주도 종말을 맞이한단다. 지구나 태양과 같은 특정한 별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가? 이 지구가 소행성이나 혜성과 충돌하여 사라져버린다거나, 태양과 같은 항성이 에너지원을 모두 소모하면서 지구와 더불어 멸망하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확률이 낮거나 엄청나게 긴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분명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주 자체가 종말을 고한다니...

[유혹하는 우주]의 저자 슈타군은 두 가지 방향으로 우주의 종말을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출발점은 현재도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우주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 종말 시나리오. 엄청나게 높은 밀도를 가진 한 점이 폭발하여(빅뱅) 현재의 우주가 확장되고 있듯이 언젠가는 이 우주가 다시 처음의 한 점으로 수축해 버린다. 우주가 확장될수록 우주 공간에는 물질이 많아지고, 빅뱅의 에너지 대신 만유인력이 작용하여 이 물질은 서로 끌어 당긴다. 결국에는 모든 물질이 하나의 점으로 합쳐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종말 시나리오. 우주가 확장은 당연히 우주의 온도 저하로 나타난다(실제 초창기 우주에 비해 현재 우주의 온도는 무척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우주가 더욱 넓어져서 입자들이 활동할 수 없을 정도까지 온도가 떨어진다면? 아마도 태양과 같은 별들은 백색왜성이 되어 식어 버리고, 에너지가 없어진 우주는 빛이 사라져 어떤 존재도 남아 있지 않은 말그대로 ‘태초의 흑암’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아! 무섭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몇 조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어쨌든 결론은 무한해 보이는 우주도 결국은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나 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별종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블랙홀(black hole)이란 녀석이다. 태양의 수십배 되는 크기의 별이 일생을 다하고 중성자별이 되고 난 후에 그 중력이 엄청나게 강력해져서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무서운(!!!) 암흑의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 블랙홀은 우주의 종말에도 살아 남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블랙홀의 중심에 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물론 지금의 과학으로 이걸 증명할 수는 없다. 빛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관측한다는 것 자체에도 많은 가설과 가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지 않은가? 블랙홀 안에 천국과 지옥이 있는 셈이니까. 그래서 신의 존재나 천국, 지옥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과학적 엄밀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왠지 내 상상력이 조금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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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알기 쉽게 풀어쓴 (한글판 + 영문판)
E. H. 카 지음, 이화승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바야흐로 ‘역사’의 중흥기라고 할 만 하지 않은가? 대형 서점 역사 관련 서적의 진열대는 그 어느 시기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덕일 선생과 같은 분은 그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지 오래이다. 어쩌면 일주일 내내 거의 매일 TV 화면에 방송되고 있는 사극이야말로 최근 역사서적에 쏠리는 관심과 인기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역사책과 역사물의 홍수 속에서 혹시나 역사를 안다는 것이 가지는 기본이 부족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의문이 생긴다. 최근의 역사 열풍은 ‘고루하고 어려운 암기과목’이라는 역사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을 극복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지만, 지나치게 흥미위주로 빠지거나 드라마의 경우 역사왜곡의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다. 이제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과거로 하여금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되게 하고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현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옛 것은 현재를 비추어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단계가 될 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딘지 기본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무언가 근본적인 것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좋은 방법은 그 분야의 고전을 읽는 것이다.
E.H.카의 강의를 묶어낸 [역사란 무엇인가].
비록 세상에 나온지 50여년 정도인 젊은(?) 책이지만 역사 분야의 고전으로 너무나 유명한 책이다. 좀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권하는 필독서 목록에서 이 책이 빠져 있다면, 목록 작성에 문제가 있었을 거다. 그리고 아마 이 책을 읽지 못한 사람이라도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정의를 들어본 사람은 꽤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 새내기 시절 독후감을 위해 읽은 후 다시 한 번 [역사는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E.H.카의 논의가 이분법적이거나 환원론적이지 않고 대단히 ‘통합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점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수없이 많이 들고 있는 당대의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이름을 빼놓고 순수하게 그가 주장하는 바를 읽다보면 무척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관점이고, 50년 전 서구의 역사학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당시 서구 역사학계는 일세를 풍미하던 랑케의 실증사학과 이에 대한 비판이 격렬하게 부딪치던 시기였다.

랑케의 실증사학은 사료와 기록을 중시하였으며, 사실에 관한 모든 지식은 객관적이며 증명 가능한 경험적 증거에 의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랑케는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에 관심을 가졌고, 이는 과거 사실들이 개별적으로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사실의 개별성’과 ‘사실의 개체성’으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역사는 ‘과학’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이 모여 구성되는 각 시대는 그 자체로 완결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들의 인과성이나 직선적인 과정으로서 역사적 진보는 거부된다.
반대로 실증사학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랑케의 생각을 ‘고상한 꿈일뿐’이라고 치부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과거의 사실들이란 역사가의 자아가 개입되고, 역사 서술계층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의도적이고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크로체가 말한 ‘모든 역사는 현재사(contemporary history)의 성격을 갖는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역사란 현재 역사가의 관심과 상황에 따라 재구성되고 있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란 말도 이런 점이 반영된 말이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일기>가 과연 어떤 관점에서 쓰여졌고, 그 관점에 따라 인물과 시대상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역사란 무엇인가]가 역사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유로는 세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우선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 전체에 흐르는 통합적, 상호의존적 관점이다. E.H.카는 실증사학과 反실증사학의 대립, 정치사상의 대립,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의문들 속에서 접점을 찾고자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도출될 수 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다루었다.
두 번째 이 책의 강점은 그 문제들이 하나같이 역사철학에서 대단히 비중있는 주제들이란 점이다. 과거의 사실과 역사적 사실, 역사 속에서의 개인과 집단, 역사가 가지는 과학적 성질, 역사상 사건들의 인과관계, 역사의 진보와 방향성 등 굵직굵직한 주제들은 사실 각각 하나의 책으로 나올 수 있을만큼 중요한 문제들이다. 카는 이런 주제들을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묶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설적이지만, 그 문제들이 결코 하나의 해답으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점에 저자의 주장이 가지는 생명력이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지금도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E.H.카의 주장 역시 포스트모던 계열과 구조주의 계열의 역사학자들로부터 끊임없는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된, 지금도 살아 있는 주장인 것이다.

이번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해 본 것이 있다.
E.H.카가 말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는 결국 ‘과거의 사실들과 현재의 역사가들의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랑케의 실증사학을 극복하고 역사가를 역사적 사실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으니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과연 역사가는 무엇을 기준으로 수많은 사실들 가운데 역사적 사실을 추려 내는가 하는 것이며, 둘째는 역사가의 힘이 지나치게 커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E.H.카는 대화가 ‘사회적’으로 해석되어야 함을 주장하였고, 두 번째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과학적’ 방법의 원용을 주장한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란 그 시대와 사회의 제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계속하여 강조한다. 영웅, 위인, 악인들은 어쩌면 한 명의 개인이지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개인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듯,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마침내 역사적 사실로 발생한 ‘축적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 축적성이 있는 과거 사실이라야 ‘역사적 사실’로 다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과학적 방법을 활용한다는 것은 객관화와 일반화를 의미한다. 또한 인과관계의 규명도 중요한 과학의 특성이다. 왜 E.H.카는 과학을 언급했을까? 그 이유는 과도한 역사가의 주관 개입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아니라 역사가에 의한 사실의 ‘지배’와 ‘왜곡’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가 주장하듯이 역사학을 진보적인 학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는 역사학의 발전을 변증법적으로 보는 듯 하다. 내가 본 것이 틀리지 않다면 E.H.카는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과거를 해석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이것이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역사학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모순의 축적에 따른 진보, 즉, 역사적 사실의 축적에 따른 사회의 진보가 아니라 ‘역사학의 진보’만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그의 마지막 장이다. E.H.카는 역사학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하여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지양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리엔탈리즘’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 이전인 50여년 전에 영국의 한 학자가 이러한 주장을 폈다는 것이 한 편으론 신기하면서도 또 한 편으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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