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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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빨치산 생활로 자신의 전 인생이 그리고 가족들의 인생이 힘겨웠지만 평생을 나름대로 소신과 올곧음으로 살아낸 아버지에 대한 딸의 이야기.

그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아버지가 살아온 평생을 새롭게 알게 되는 딸의 입장이 담담하니 멋부림 없이 담백하게 쓰여져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촥~ 가라 앉는 느낌이 든다. 

과거 6.25 이후 연좌제에 묶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제자리를 못 찾고 힘들게 살았는가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겪어 보지 못했지만 민족분단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로 세상을 일관되게 살아내신 아버지에 대한 딸의 이야기가 먹먹하게 다가온다. 사람 사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워찌나 청산유순가 쌧바닥에 신이 내렸는 중 알았당게. 말문이 터질라면 예수 믿어야 쓰겄대."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 설켜 끈허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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