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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2 - 제1부 격랑시대, 등단 50주년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11월
평점 :
조정래 작가님의 글은 늘 살아 숨쉬고 있어 읽고 느끼기에 좋다.
지역말을 이렇게 글로 쓰면서 내가 그 지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는 쉽지 않은데 찰진 지역말(사투리), 풍경을 그림 처럼 그려내는 글 솜씨, 당시 사람들의 불안과 욕망들을 잘 나타내 읽는 내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술술술 읽히게끔 쓰시느라 몇 번을 고쳤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작가의 고단함을 알게 되고 이런 작가님이 우리 역사 소설을 쓰시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다.
"그 시절에 크든 작든 친일 안한 자가 누가 있느냐. 반공으로 뭉쳐야 하는데 어쩌자고 분열 조장이냐. 그때 너도 글줄이나 배워 출세하려면 별수 있었을 것 같으냐. 그땨위 걸 따지는 건 다 촌놈들 짓거리다. 이런 친일파들의 말과 글에 대중들은 멍청이들처럼 최면당해 잘 길들여진 앵무새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규백은 자신의 의식 속에 미국이 세 가지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전사의 막강한 군사력, 전후의 잡동사니 구호물자, 그 뒤를 이어 몰려드는문화의 태풍이었다. 그 여러 형태의 힘 앞에서 한국사람들은 주눅들고 고마워하고 최면당하면서 미국은 그만큼 찬란해지고 거대해지고 선먕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규백은 그 심각성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의식 어딘가에도 미국에 대한 선망이 전혀 없지 않다는 것을 괴롭게 확인하고 있었다."
"가난이란 굶주림과 헐벗음의 끝없는 수렁이었다. 굶주림은 속으로 사무치는 슬픔이었고, 헐벗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창피스러움이었다."
"두고 보시오. 반공주의는 갈수록 강화될 거요. 왜 반공주의를 혁명공약 첫 번째로 내세웠겠소. 그게 정통성 없는 정권을 유지해가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오. 미국의 지지를 얻는 데도 절대 유리하고."
"우리 것은 무조건 무시해 버리고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 사족을 못 쓰고 가르쳐대는 이런 식의 교육이 앞으로 몇십년 계속돼 봐라. 우리 꼴이 뭐가 되겠는지. 모두 서양 것이면 무조건 높고 귀하게 보고, 우리 것이면 무조건 천하고 나쁘게 보는 얼간이들이 돼 있을 테니까. 조선시대에만 사대주의가 있었던 게 아니야. 해방 이후의 이런 작태는 신사대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