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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작가 스스로가 "내가 쓰는 글은 오직 굼벵이 같은 노동의 소산이다."라고.
이 글 한 줄만으로도 이 책은 읽은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글 속엔 한국의 근현대사가 녹아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아직도 직접 손으로 글을 쓰는 작가 김훈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글이다.
"한 생애를 늙히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이 첨단기술과 거대 자본을 동원해서 만든 장치나 구조물은 제작과 운영에서 윤리성의 바탕을 상실했을 때 거대한 재앙이 되어서 인간을 향해 달려 드는데, 이때 인간은 이 재앙을 회피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 더구나 구조물 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 또한 그러하다. 이것은 책에 나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죽어 나자빠진 세월호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쓰러진 세월호는 한국 현대사의 괴로운 자화상이다.그 녹슨 고철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이 괴물은 고통스러운 질문과 회한을 한꺼번에 들이대고 있다."
"가난했던 시절에 한국 사람들은 나라가 잘 살게 되고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빈곤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소득이 늘어나자 빈곤은 구조화되었고 구조적 빈곤은 토착화되어 세습되어 간다. 가난은 다만 물질적 결핍이 아니다. 빈곤은 그 결핍을 포함한 소외, 차별, 박탈, 멸시이다. 이 구조는 이제 일상화되어서 아무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무말랭이는 햇볕을 말려서 먹는 반찬이고 오이지는 시간을 절여서 먹는 반창이다. 그 반찬 속에서 삶의 미립자들은 반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