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의 메시지를 이제 같은 땅에서 볼 수 있는 것도 감동이다.
시각장애인이 드문 일을 해내면, 사람들은 그 일을 해낸 데에만 초점을 둔다. 내가 출퇴근하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고 말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거의 3시간 정도를 매일 길에다 버리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많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눈에는 무엇보다 먼저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부터 보이기 때문이다.
나를 회사까지 책임지고 데려가 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 갈 길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항상 지금 나의 위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략) 현재 내 위치만 알고 있으면 아무리 혼잡한 가운데서도 목적지에 가닿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삶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배경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에 대해 적어도 다음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가 접하고 있는 현실, 둘째,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 마지막으로 그의 삶을 변화시킬 사랑이 그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도 그를 둘러싼 현실, 그가 붙잡고 추구하는 생각과 일, 그리고 삶을 변화시킬만한 사랑이 그의 삶에 있어 시각장애보다 더 중요할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나는 꼭 필요한 정보만을 읽고 검토하는 능력을 쌓아야 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주제에 대해 쓴 글을 수동적으로 읽기 보다는 내게 필요한 것을 직접 찾아 읽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소위 Primary Source를 Secondary Source 보다 더 먼저 찾아보는 것이다.
증권의 장기가치가 눈에 보이지 않고, 또 몇가지 간단한 것들로 결정되듯이 삶에서 중요한 것들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고, 몇가지 간단한 것들로 결정되고 유지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은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권리를 잃은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거부할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사는 듯하다.
양엄마는 삶의 중요한 것들은 적당히 하는 것보다, 남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또 아무리 많은 것을 안다 해도 남에게 그것을 전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무엇을 하든지 꼭 필요한 능력은 표현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이유로, 나쁜 일, 가령 팔이 부러진다든지, 도둑을 맞는 일에 대해서까지도 하나님께 감사하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캐로더스 목사의 한마디, "한번 해 보는데 손해볼 것은 없다"는 말에 나도 한번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용서하지 못해서, 너무나 완벽한 공평함을 고집하느라, 혹은 남을 매섭게 판단하는 일이 많아 은혜의 메시지가 점점 흐려져 가는 것만 같다.
감사하는 삶과 영적 훈련을 하는 삶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그것을 다시 베푸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일들을 돕는 삶을 산다는 뜻일 테니까.
간단히 말해 주름살은 글의 삶을 현재 완성형으로 말해준다. 그러니까 주름은 결국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명예로운 배지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원한다, 이런 정치인.
원한다, 이런 포퓰리즘.
내 이력서를 보고 눈을 부라리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데, 경멸하는 표정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여기 이력서에 오타가 있군요. 당신이 하는 일이 이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난 곧바로 받아쳤다. "저를 타이핑이나 하는 사람으로 고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그는 내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 그러더니 상체를 뒤로 젖히고 웃어댔다. "앞으로 일 잘하겠군요"
아빠와 나는둘 다 가난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가난이란 문제에 대해 아빠는 절대로 돈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돈이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절대로,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식으로 반응했다. 반면 나는 계약법, 재무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실패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모든 걸 배우는 식으로 반응했다.아빠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문제들로부터 멀찍이 물러섰고 나는 그것들을 콕콕 찔러댔다.
내게 불편부당이란 개념에 대해 중요한 걸 한가지 가르쳐줬다. 이걸 추구할 때는 소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중략) 최소공통분모를 찾아 "하늘은 파랗다"라는 성명서를 내지 않았다. 그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 밀고, 찌르고, 때로는 언쟁을 벌였다. 피나는 노력을 해가면서 분석한 결과 우리 보고서는 강력해졌고, 우리 언어는 대담해졌다.
금융 업계의 최고 경영진 중에는 여자가 거의 없는데 어떻게 그들이 저지른 사고의 설거지를 하게 된 사람은 모두 여자일까, 라는 물음이었다. (참고로 워렌 및 당시 연방예금보험공사 총재,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여성이었음)
워렌씨는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금융위기 당시 제가 OO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요. 그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이야기를 하다보면, 누군가가 항상 이렇게 묻곤 했던 것 같아요. `이 일을 엘리자베스 워런이 알게 되면 뭐라고 할까?` 그 질문이 나오면 사람들은 항상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생각하게 됐죠.
일주일쯤 뒤 소포를 하나 받았다. 그 안에 대통령이 쓴 쪽지가 하나 있었고, 펜도 한 자루 들어있었다. 그것은 대통령이 소비자 보호 기관 법안을 서명할 때 쓴 펜중 하나였다.
난 조금 놀랐다. 난 대통령이 지금은 승리를 만끽할 순간이고 그럴 권리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비자 보호 기관을 법으로 제정한 업적은 그에게 아주 큰 승리였다. 그런데 그는 지금 자신이 이룰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나는 정치적 승리뿐 아니라 그가 한 일의 영향을 받게 될 서민들을 잊지 않는 이 사람을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 교훈이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분노해서 어깨를 맞대고 싸운다면 상당히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교훈이다. 혹자는 지금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정계를 조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련다. 맞다. 우리가 뛰는 경기는 공평하지 않고 시스템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조작됐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계속 싸워나갈 작정이다.
읽은 책이 있어야 뭐라도 쓸 게 아닌가 세상에.
올해는 읽은 책이 없으니 글자라도 몇 남긴다.
그러면 뭐라도 읽을 성 싶나, 그럴리가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