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주변이 더럽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올거라는 말을 듣고나서야, 그것도 그 전날쯤이나 되어야 겨우 청소를 한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것에 의해 하게 될 때를 자꾸 경험한다.


아직은 더 이럴 때인가 보다, 라고 썼었지만 그러지 않기위해 언제 노력은 했었던가? 싶은 밤이다. 


무언가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언가에 걸맞게 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노력은 해야겠다는 생각도 좀 든다. 


어쨌거나, 봄의 밤이다. 창가에서 달이 보이지 않아도 봄 그 자체로 치릿, 가벼운 전율이 맴도는 봄밤이다. 많이 그리웠다. 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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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4-17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껜 봄의 밤 또는 봄밤이시군요.
제겐 봄이고 또 밤인데 말이죠, 여기에 비까지 내리면 정말 대책 없어지는데...
건 아니라서 그럭저럭 견딜만 합니다.
잘 지내시죠?^^

風流男兒 2012-04-18 01:02   좋아요 0 | URL
네, 그새 또 밤이 되었네요 ^^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다행이에요.
음. 그러고 보니, 벚꽃이 피면 꼭 꽃비를 기대하게 되는데,
꽃비정도는 올해도 놓치지 않고 구경해야겠어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답니다 :)

잉크냄새 2012-04-2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 발음만으로도 정겹네요.

風流男兒 2012-04-24 12:41   좋아요 0 | URL
그쵸. 정겨우면서도 뭔가모를 긴장감도 느끼게 되는 밤인 것 같아요.
주말과 어제는 비 때문인지 서늘하다 못해 냉기가 감도는 것 같았는데
오늘 아침은 벌써부터 여름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요상한 느낌이 감돌 정도로 따뜻했어요.
벚꽃은 졌지만, 봄은 좀 더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ㅎㅎ
 
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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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민담이 될거야.


성석제를 보며 자주 드는 생각이다.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의 글들은 민담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맛있다. 호랑이가 민가에 들어와 할머니를 위협하면 공포의 사건사고지만, 곶감에 혼쭐이 나 도망가는 호랑이는 무섭다기보다 새삼 귀여워지는 것처럼, 성석제는 맛난 곶감처럼 쫄깃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너무나도 부러운 재주가 있다. 


위풍당당. 자연이 담은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봉래산 한 자락 어딘가에 드라마와 관광을 목적으로 지은 썩지도 않는 실리카겔 같은 마을로 여러 사연을 안은 채 강처럼 흘러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가족과 더 끈끈한 식구가 되기 위해 이 시골까지 와서 빡세게 합숙을 하는 한 패밀리와의 만남이 그려지고 있다.


그냥 서로를 모른 채 뜨고 지는 해를 벗삼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평화로이 살다 가면 좋으련만, 하필 이 궁벽한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아가씨의 본의 아닌 외출과 하필 먹고픈 음식의 재료는 직접 수확해야 한다기에 음식따위 포기하고 돌아오는 두목의 일견 기가막히도록 평범하고도 우연해보이는 조우로부터 이 소설은 꼬이기, 아니 풀리기 시작한다.


자연 그대로의 아가씨를 한번 즐겨보겠다던 폭력배들은 목표를 코 앞에 두고 의외의 일격을 받아 전립선 일대에 큰 부상을 입고, 그 와중에도 하필 주변에 자라는 대마를 잊지 않은 두목은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신 사업 테마에 대한 정제된 욕심과 부하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복수심으로 마을을 정벌하러 떠난다. 근데 워~매. 멀지도 않아 보이던 마을은 도대체 가다가 힘 다 빼게 생겼고 그나마 복수 한번 질펀하게 질러보려다 더 질펀하고 생생한 천연 똥에, 꽉 차게 매운 고추에, 봉독세례에 온갖 자연의 매서운 맛을 다 보고나니 차라리 화투판에서 똥폭탄을 맞고 개털 되는 게 차라리 인생의 낙이지, 옷깃과 허우대로 세우던 가오는 이미 '멘붕'이다. 그런데 멘붕의 약이 또 똥이라니 이건 멘붕도 보통 멘붕이 아니다. 


진짜 내 가족은 누구인가


그럼 이건 서로 만나서는 안될 깡패와 시골마을 사람들 이야기냐? 오호라 잘못된 만남이었냐?하는 반응이 있을지 모르겠다. 맞다, 어느 정도는. 하지만 가만 돌아보면 어설프게 연대하여 사는 사람들과 끈끈함으로 꽉꽉 다져진 듯한 한 패밀리 간의 복통나게 웃기는 갈등을 통해 과연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꼬박꼬박 묻는다. 웃기는 와중에도. 


어설퍼 보이는 연대를 하고 있는 여산, 이령, 소희 등을 위시한 마을사람들은 흘러들어온 사연이 너무나 구구절절하다. 화목해야 할 가정은 언제나 화목(火木)같았고,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생각 한번 못해봤을 법의 바깥 영역을 선택하거나, 날선 편견과 욕설로 얼룩진, 그러면서도 합법의 탈을 쓴 권력과 자본에 쫓겨 아무것 하나 가진 것 없이 이 곳까지 흘러들어온다. 쉽게 말하면 전과자요, 성폭력 피해자요, 장애우요, 힘없는 늙은이들이다. 한번 벗어난 법의 영역안에 들어가기란 너무나 어려워 여전히 불법의 영역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말만 마을사람이지 대개 서로가 참 별로다. 완~젼. 


반면에 이 깡패집단은 한 식구, 즉 한 집에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 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어찌나 끈끈하고 서로를 위하는지 '화목'이 이 식구들의 표어다. 그러니 힘깨나 쓰고 학교 좀 오래 다녔답시고 동생들을 때리다가는 합리적인 보스에게 한소리 듣고, 도태되지 않으려는 보스의 전략적 사고로 합법적 사업 포트폴리오고 짜여진다. 게다가 보스는 깔끔하기까지 하다. 남자는 그저 주먹이니 쓸데없이 연장을 휘두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가오도 있어서 쉽게 돈 버는 약쟁이들은 미치도록 혐오한다. 거기에다 운도 좋다. 이러면 이미 게임은 불공평해 보인다. 


그러나, 이 힘깨나 쓰는 깡패들의 마을 난입과 예기치 않게 벌어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두 그룹이 보이는 면면은 도대체 무엇이 가족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깡패들이 가진 의리란 사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이상의 것이 없다. 모두가 살기 위한 의리가 아니라 보스를 살리기 위한 의리일 뿐이다. 화목과 질서는 사실 모두의 치밀한 계산과 폭력의 용인 아래서만 유지된다. 그나마 연장을 사용하는 초보수준의 비겁함과 마약거래에 대해서는 단호히 혐오해오던 자기들끼리의 '사나이 다움', '가오'는 그저 마을을 무슨일이 있어도 접수하고 이기겠다는 생각아래 모두 다 허물어진다. 가오는 자본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희생된지 오래라, 아니라는 핑계만 화려할 뿐 보스에게 대마는 끝까지 관심사항이고, 맨손으로 서있는 마을 사람과 결전을 벌이는 그의 손에는 횟칼이, 옷 안주머니에는 만일을 대비한 전기 충격기마저 들려있다. 그렇게 운좋게, 이기며, 살아온 그는 드디어 도태의 두려움을 제대로 직면한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거리감이 눈 앞에 다가온 이 순간. 그는 그 외에 모든 것을 다 버리는 최악의 방법을 택한다. 영원히 하나일 것을 외치던 끈끈하도록 화목하던 깡패집단은 커지는 위협앞에 와해되고 분열된다. 갈수록 깡패 집단은 없어지고 깡패 보스만 남는다. 그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죽을 뿐인 그런 화목함을 횟칼에 새겨둔. 남의 생으로 나의 생을 이어갈 뿐인 그 혼자만. 


찾던 모든 것, 강 같은 평화를 만나게 될 때에, 비로소. 


반면, 마을 사람들은 위기가 다가올수록 점점 변화하고 성장한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만 내보내면 된다는 두려움을, 도망가면 아무런 피해가 없으리라는 당연한 두려움을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과 대답들을 통해 떨쳐낸다. 죽지도 썩지도 않는 이 인공의 마을에 생명과 평화를 심고 길러낸 애정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여기에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너무 소중하기에, 내 옆의 사람이 소중하기에 이들은 위협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강해진다. 그동안 권력과 경쟁, 자본에 치이고 뺏기며 분노로 파편화되던 이들이 한데 모여 강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해진다. 화목(火木)으로부터의 자유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이들이 이제는 무엇을 위한 자유가 필요한지 무엇을 향한 자유가 필요한지를 묻지 않아도 깨닫고 쓰지 않아도 이해한다. 바로, 운명을 벗어나 서로를 선택하는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가정이 탄생한다. 바로 이때가 내게는 소설의 제목과 내용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위.풍.당.당. 


이토록 생명과 자유의 의미를, 소중함을 명백히 깨달은 이들에게 깡패집단은 더 이상의 적수가 될 수가 없다. 그 뿐이랴, 자연의 생명력을 끊어버리려는 기계군단의 등장과 접근도 그다지 두렵지 않다. 이제 "우리 가족이 가는 데는 어디나 우리 무대가" 될 테니까. 준비할 것도 별로 없다. 일단 고픈 배 부터 추리면 될 일이니까. 그래, "강같은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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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4-17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님의 이렇게 긴 글은 첨이라서 말이죠~.
좋네요, 역시 봄이고 밤이 좋긴 좋네요.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은 제가 대신 틀어드리죠~^^
왠지 장학퀴즈 나가야 할 것 같다는~--;


風流男兒 2012-04-18 01:05   좋아요 0 | URL
와우. 사실 결혼식 입장때 이노래를 쓸까 했는데 결국 평범하게 입장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음, 생각해보니 양철님은 장학퀴즈 나가셔도 엄청 잘하셨을 것 같은데요 ㅎㅎ
 
지식의 권유 - 사유와 실천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춘을 위한
김진혁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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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이라는 사람과 함께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가 보여주는 지식과 행동에 담긴 그의 말과 마음에 대해 내 마음의 응원과 신뢰를 함께 보낸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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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4-0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하더이까?^^ 그렇다면 나도 접수!!!!

風流男兒 2012-04-09 18:02   좋아요 0 | URL
흐흐 누나 ^^
근데 아마 누나는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이시고 생각하신 내용이실듯 해요!

웽스북스 2012-04-08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마음에서 한 말인 지 알 것 같아요. 저도 사놨는데, 슬슬 펴봐야겠어요 :)

風流男兒 2012-04-09 18:03   좋아요 0 | URL
네. 그러고보니 말이 책에 대한 평이지, 실제는 트윗이나 평소의 글을 통해 느끼던 게 더해진 터라 책만 보고 말한 건 또 아니었던 거 같다.. 싶어요 ^^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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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평을 쓰는데도 망설여진지, 어느새 두어달이 다 되었다. 힘들게 읽었다. 그가 책 앞에 붙여둔 `희망이 이깁니다`라는 말. 그 말의 무거움과, 무게 속 편안함을 같이 느낀다. 이길 것이다.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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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2-04-08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한 책, 선뜻 선물해주신 양철나무꾼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2-04-17 02:42   좋아요 0 | URL
힘들게 읽게 해서 죄송해요~^^
'희망이 이깁니다'라는 말의 무거움과, 그 말의 무게 속에서 편안함을 같이 느끼셨다는 표현...너무 근사한걸요~.
'이길 것이다'와 더불어 제가 품어가요, 감사~!

風流男兒 2012-04-18 01:06   좋아요 0 | URL
아 그렇지 않아요 ^^ 꼭 책 자체가 힘들었다기 보다도, 그 즈음의 제 삶도 마찬가지로 은근한 압박이 심했던 것 같아요. 품어가주셔서 감사드려요 후훗 :)

웽스북스 2012-04-08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디요 ㅠㅠ

風流男兒 2012-04-09 18:03   좋아요 0 | URL
제발 ㅠㅠ
 
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가랑비에 옷젖는다고 했다. 불안도 그와 같다. 더 늦기 전에, 함께 견디고 이겨야 한다. 나의 체온과 내 옆 사람의 체온이 그 어느때보다도 소중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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