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데이먼 나이트 지음, 정아영 옮김 / 다른 / 2017년 1월



  <롤리타> 1부를 읽고 2부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한데 갑자기 롤리타보다 나이트의 이책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읽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확인해봐야겠다'는 의미로서의 조급함이었다.  30일에 태경언니와 스터디를 하기로 했는데, 내가  단편소설에 대해서 제대로 다 알고 있는지-물론 안다고 해서 그걸 죄 원고 위에 구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확인할 필요도 있어서였다. 

  읽기에 이틀 걸렸다. 수월했다. 대부분 지식으로는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몇 년 전인가 읽을 때 연필로 밑줄을 긋고 느낌표와 별을 그렸던 지점에 이번에도 노란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있었다. 글쓰기보다 소설 읽기보다 글쓰기 책이 재미있다. 그 어떤 책보다 집중이 잘 된다. 이 책 표지에 '궁극의 소설 쓰기 바이블'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다. '궁극의' 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유용하게 잘 정리된 것은 맞다.  저세상, 천국에 계실 나이트에게 감사를 보낸다. 우습게도 언젠가 나도 늦은 나이에 문학에 뛰어든 늦깍이 문청들을 위한 소설쓰기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다짜고짜 들었다. 생각은 자유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이 우리 스터디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사라져도 그의 책은 아직도, 앞으로도 이렇게 건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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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2월




  이언 매큐언은 이 작품집으로 서머싯 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고 한다.서머싯 몸상 수상이면 화려한 데뷔라고 할 만하다. 거기에 그 작품들이 잊혀지지 않을만큼 강렬하다면 이후 그는 굉장한 작가가 되리라 대개는 짐작할 것이다.  한 재능 넘치는 젊은 작가가 처음 수면 위로 솟구친 순간, 그래서 초기의 첫 작품들은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한편한편이  모두 소외된 인물이거나 비정상적으로 병적인 인물들의 가장행렬 같았다.



  입체 기하학

  부부 사이가 점점 나빠져 아내를 향한 증오심에 빠진 남자가 증조부가 남긴 일기를 정리하면서 입체기하학적 방법으로 아내를 사라지게 만든다. 그는 아내의 애정을 갈구하는 행위조차 무감하게 귀찮아하다 아내를 공간이 없는 공간으로 밀어넣어버린다.  

  남자는 또 증조부가 남긴 범죄자(죄수였던)의 페니스를 소중히 간직하는데(아내가 결국 그것을 깨버렸지만)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저열한 관음증을 엿볼 수 있었다. 

  증조부도 그렇지만 남자 주인공 또한 정상을 한참 벗어난 인물이다. 이 단편집 전체가 이런 식의 괴기와 음습한 공포를 조금씩 변주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상적이고 기괴한 인물들의 극단적인 모습은 작가의 예술적인 재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작가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벌써 인간을 이해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어떤 결핍과 자신만의 방향성을  갖게 된다. 인간으로서 활동한다는 것은 결핍이 드러나게 되는 과정이고, 그럼에도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향하다보면 자신만의 방향성이 생겨난다. 그러다 인간은 악마보다 더한 악인이 되기도 하고 저열하고 비겁한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가정 처방

  성에 눈떠가는 청소년 시기의 한  남자아이, 불안과 동경과 음란한 쾌락이 이 남자아이를 놔주지 않는다. 영악스런 소년은 이것의 정체를 자신의 경험으로 알고자 어린 여동생을 강간한다. 이 악마적인 소년의 행동에 걸맞지 않게 제목이 정말 코미디. 작가의 짖궂은 상상력은 끝이 없다. 하긴 이건 상상력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불쾌해하면서도 상상해봤을 수도. 성이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의, 많은 것의 시작이면서 결말이기도 하다.


  여름의 마지막 날

  악마적인 젊은 매큐언이 이 작품에서는 가엾은 한 여자와 불쌍한 아이를 지독하게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슬픔이 독자를 오랫동안 강가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강가에는 갈대가 우거지고 하늘엔 창백한 달이 떠있다. 주인공 소년의 노젓는 소리와 눈물어린 달빛이 강물에 반사되는 저녁...


  극장의 코커 씨

  코커 씨는 끝내 리허설 도중에 무대 위에서 파트너와 정사를 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쫓겨난다. 


  나비

  이렇게 기분 나쁜 소설을 중독된 것처럼 읽어나가고 끝내 아름답다고까지 느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소녀를 추행하고 운하에 처넣은 찌질하면서도 구역질나는 남자가 마냥 밉지만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오묘하고 기묘한 소설이다. 매큐언, 이 <나비> 하나만으로도 그의 천재성은 뚜렷하게 드러나고 만다.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

  엄마의 이기적이고 말초적인 사랑을 받던 남자가 갑자기 버려지면서 벽장 속으로 숨어버린 이야기. 지나치게 강박적인 사랑에서 벗어난 아들이 영원히 유아로 머물기 위해 택한 벽장 속. 사랑의 상실이,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버림받은 아들의 삶이 어둡고 음울하기만 하다.


  첫 사랑 마지막 의식

  표제작인데 가장 생각이 나지 않는 작품이다. 어린 연인들이 이런저런 삶의 곡절을 겪으면서 서로 단단해지고, 삶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을 갖게 된다는... 이 정도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하긴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체해서 죽다 살아났고, 이사를 했고, 집 정리를 하고, 엄지 손 아래를 수술했다.ㅠㅠ 이제부턴 좀 속도를 내서 책도 읽고 글도 몇 달 만에 써야겠다. 성당에도 주말마다... 일상의 아주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고 노력여하에 따라 안정적인 상황이 지속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장 파티

  이 소설집 전체가 그렇지만 이 작품이 가장 끔찍스럽고 공포스러웠다. 어린 조카를 자신의 필요대로, 여장남자로 서서히 탈바꿈시켜가는 이모의 광기와 히스테리가 목이 졸리는 것처럼 숨막혔다. 겨우 자신의 집에서야 광폭적인 가장 놀이의 연출가이자 배우인 이모의 천박하면서도 기괴한 놀이는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킨다. 결핍이 불러오는 비천하고 뻔뻔한 범죄행위들이 수많은 어린 아이들을 오늘도 희생시키고 있으리라는 예감에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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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작가가 2016년 여름부터 2020년 봄까지 갈무리한 여덟편의 이야기.

  목록
  시간의 궤적
  여름의 빌라
  고요한 사건
  폭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흑설탕 캔디
  아주 잠깐 동안에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백수린에게 매혹당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느 한 편도 허투루 읽고 싶지 않은 완결성과 서사를 지녔다. 만남과 헤어짐, 그 후에 남겨진 아쉬움과 미안함, 그리움들. 
  우선 이 단편들에는 어린 시절, 젊은 날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그 시절을 반추해보는, 중년에 들어서기 전의 여성 화자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많다. 첫 단편 <시간의 궤적>은 프랑스에서 만난 '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여름의 빌라>도 파리의 서점에서 만났던 한스 부부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린다. <고요한 사건>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뒤돌아보며 자신이 처음 계층에 대해 어렴풋이 느꼈던 곤혹감을, 그러나 당시에는 잘 몰랐기 때문에 그저 지나쳤던 감정을 끄집어낸다. 
  이에 비하면 <폭설>은 혈육(엄마)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던, 폭설 속에 엄마와 단 둘이 고립된 상황에서 오래 묵은 감정을 터트릴 수 있었던, 앞의 작품들과는 해결 방식이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폭설 속에서, 단 둘만이 오랜 시간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야 참고 참았던 그리움과 원망을 뱉어내는 서사는 리얼하다. 뜻하지 않은 낯선 상황, 얼결에 마주치게 된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는 자신의 밑바닥까지 드러낼 수 없는 법이다. 늘 흘려보내는 안전하고 변함없는 일상에서는 자신의 깊은 곳을 꺼내어 발설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은 일상의 뒷면에 만연하고 출구없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순서로 본다면 앞의 네 작품과 달리 이 소설집의 뒤에 실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흑설탕 캔디>,<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은 앞의 네 작품과 달리 두리뭉실하게 표현해서 성과 사랑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우선,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는 젊은 엄마인 주인공이 자신의 진짜 욕망에 솔직해지는 지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의 자아찾기로도 볼 수 있었다. 또 사회적으로는 발화할 수 없는, 내밀한 욕망을 향해 울타리를 넘는 여성을 그리고 있어 독자에게는 불안감과 더불어 그 반대편의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럴 때 이런 공감은 억압 속에서 살아본 여자들이 느끼는 '공감'일지도 모르겠다.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은 사춘기 시절 꿈틀대는 본능의 속삭임을 다루고 있다. 분명 그 시절에는 금기인 어휘고 금기시되는 상상...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된 그녀에게 지나간 그 날들은 그저 아카시아 향과 함께 기억되는 추억일 뿐이다. 남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사춘기 시절, 돌아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어이없어 웃음이 터지는 아슴프레하고 풋풋하면서도 달큰한 그 무엇.
  이 소설집에서 내가 두 번 읽은 작품은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과 <흑설탕 캔디>였다. 특히 <흑설탕 캔디>는 필사를 했고(그래봐야 워드로. A4 12장 반) 플롯을 점검해봤고 밑줄을 다시 그었다. 정말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였다. 보통 소설이라는 게 사랑과 이별, 계층간의 위화감, 빈곤과 소외 등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가 많을 것 같지만 현대 소설은 진지한 주제를 더 우위에 두기 때문인지 순수한 사랑 얘기는 드문 것 같다. 특히 단편에서는. 한데 <흑설탕 캔디>는 한국 할머니와 프랑스 할아버지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노인의 이야기가 이채로우면서도 특별히 아름답다. 두 사람은 피아노를 통해 서서히 서로를 의식하게 되고 만나게 된다. 한불사전을 통해 겨우 명사와 현재형 동사로써만 의사소통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품격있고 진취적이면서 고요한 사람이다. 프랑스 할아버지(브뤼니에 씨)는 여유있으면서 낭만적이고 따듯한 사람이다. 그렇게 매력적이고 순수한(?) 두 사람은 시나브로 젖어들어간다, 사랑에.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라는 것에 더 호감이 간다. 근래에 본 단편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섬세한 작품이었다. 러브스토리의 명작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주인공이 남자인 유일한 작품은 <아주 잠깐 동안에>인데, 지나치게 선량하고 건실한 남자인 화자는 우연히 언덕을 오르는 산동네의 노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가 그 일의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평생 죄책감을 지고 살아가게 된다. 내겐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친절을 베풀다가 그 일의 수고스러움 때문에 후회할 때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철저하게 진심이어야 하고 그 일에 따르는 어려움도 책임질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는 우리집  대문 위의 고양이들이나 감자를 돌볼 때 뼈저리게 느낀다.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봉사(?)한다는 것은 시작은 쉽지만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후회한다면 그건 시작하지 못한 것만 못할 수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 자식과 남편, 늙으신 어머니. 그들은 내게 소중하지만 너무나 짐스러운 존재들이다. ㅠㅠ 
 이 소설집을 다 읽고 단 하나의 흠을 잡자면 주인공들 대부분이 너무나 모범적이라는 것, 판에 박은 듯한 건실성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작품마다 주인공들이 그 서사에 어울리게 아주 달랐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해도 결론은 백수린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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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푸른나무, 2004년 1월



  유시민이 스물여덟 살에 썼다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초판을 1988년 7월에 출간했다. 그리고 34년 뒤, 작년 10월에는 전면개정한 신간을 다시 펴냈다.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사랑받았음이 여실하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박종철 씨 고문살해 사건에서 6월 항쟁에 이르는 격동기에 군사독재정권 타도 투쟁을 선동하는 유인물을 찍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곰팡내 나는 반지하 자취방에 숨어 지내면서 썼다" 고. 그러니 당시 저자는 이 책에 싣게 될 내용과 어조를 이미 특정하고 있었으리라. 지금의 유시민도 그렇지만 스물여덟 열혈 청년은 근대에 일어난 혁명들, 부패와 모순의 사회를 향했던 민중의 저항에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밤마다 앓으며 이 책을 써내려 갔을 것이다. 

 

  나로선 이미 알던 역사들은 빠르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치받혔다. 에밀졸라의 사인이 모호한 죽음이나 암살당한 말콤X의 죽음는 분노스러웠다. 어째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람을, 약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그토록 혐오하는지, 진짜 악한 사람을 향해야 할 증오를 선하고 용기있는 사람에게로 향하는지...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 온갖 술수로 권력과 부를 거머쥔 자에게 박수를 치며 손을 흔들고 표를 주려 한다. 민주주의란 인간을 창조해놓고 인간세계에는 관여하지 않아 악이 횡행하도록 방치하는 신과 같다. 민주주의보다 나은 체제가 지구상에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물론 내 생에는 그 씨앗조차 꿈꿀 수조차 없겠지만...


  내가 가장 몰랐고 놀라웠던 부분은 모택동의 '대장정'이었다. 한때 유럽에서 모택동 바람이 불었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모택동이야말로 영웅으로 간주될, 모든 면에서 훌륭하고 출중한 인물이었다. 영웅은 자신의 전부를 바쳐서 세상을 바꾸려하고, 그 영웅이 만든 반석 위에서 뒤를 잇는 정치인들은 명예와 권력을 독점하려 세상을 더럽힌다. 고생만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탐욕만 채우는 사람이 있다. 더 말해 무엇하랴. 


  **오늘 냥이들이 마당 구석에 세워둔 스탠드 에어컨에 올라가 그 위에 앉아있었다. 직각의 가구면을 올라가는 발칙하고 버릇없는 놈들. 근데 너무 예쁘니 무슨 사고를 쳐도 귀여우니, 이사갈때 녀설들을 데리고 갈 생각을 하니 얼마나 고생을 하게 될지, 안 당해봐도 앞날이 훤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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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힘

양철북, 2013. 7. 19.  남덕현 지음






  "<충청도의 힘>은 '거기서 거기'에 불과한 사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인생의 무겁고 복잡한 의미를 머리칼 쓸어 올리듯 사소하게, 한없이 사소하게 다뤘다."

  "....시인 이성복의 말처럼 살짝 금이 간 '플라스틱 병마개'이기를 바란다. 영원히 헛도는 병마개, 그러나 헛돌기에 삶은 영원히 닫히지 않는다. 시인에게는 시가 병마개이고, 나에게는 일상의 비루함이 그렇다. 이렇게 살고자 하였으나 저렇게 살고, 저렇게 살고자 하였으나 이렇게 사는 것이 삶이다. 얼마나 많은 성찰과 사유의 반복이 필요할 것이며, 삶은 또 얼마나 지쳐 갈 것인가."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에 실린 충청도 노인들은 별로 지쳐보이지 않는다. 낙천과 유머를 인생의 길에 빙 둘러놓고 닥쳐오는 시련과 허망함을 그것들에 예속시키는 경륜이 있으니 말이다. 


  "살펴보나마나 고추 농사 조지기는 매한가지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혀 차는 소리가 잔잔한 공명으로 울려 퍼진다. 그리고 어르신의 얼굴에는 안심이 깃들며 화색이 돈다. 

  "성님, 저 가유!"

  "잉? 밥이나 한술 말구 가!" 

  "아뉴! 고추밭 물 대야 혀유."

  "허허~ 조진 고추밭에 헛물 주는 겨?"

  "고추가 뭔 죄유! 쌩으루 죽일 순 없잖유."

  내려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만 조진게 아닌 것이 어디 고추뿐이랴.

  인생도 나만 조진게 아니라서 조진 사람들끼리 허물없이 살아가는 힘. 충청도의 힘"

  

  나도 이 나이쯤 되었고 지금 상황을 보노라면 인생 조진게 아닌가 싶다. 틀림없이 반은 조졌다.한데 아직 반이 남아있고 그렇다면 마냥 조졌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남아있는 고추밭에 물을 주러 내려가는 어른처럼 발걸음 가벼이 부지런히 내려가야겠다.


  "줄담배도 이어지고 장인어른의 사설도 이어졌다.

  "그란디, 나래두 살림이 힘들문 저라구 안 댕긴다는 보장 못 혀! 옛날부터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 고구라매두 심구문 자석들 쌀밥으루는 배못 불려두 겨울 내둥 알루다가 굶기는 벱은 읎으니께. 저 냥반이 가심에 못이 백혀서 그려. 그눔의 손바닥만 한 밭뙈기 하나 읎이 일생을 살아 노니께, 그 설움이 오죽이겄어? 인자는 잘사나 못사나 자석들 다 밥 먹구 사는디두 그 설움을 못 샘키구 노는 땅만 보믄 기냥 지나치지를 못하는 겨, 워쩌겄어? 그 설움 다헐 때까지는 아무두 못 말려!"

  방바닥에 남겨진 농약병을 치우는데, 목울대를 타고 슬픔이 신물이 넘어오는 듯했다.

  아, 썩을 놈의 손바닥만 한 밭뙈기, 하늘이 땅을 내고, 그 위에 사람을 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땅 때문에 사람 가슴에 못이 박히고, 평생 삼키지도 못할 서러움을 심어 기르라는 뜻은 아니지 않겠는가. 도대체 누가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을, 땅 때문에 서럽고 굶주리게 만드는가, 사람의 의리는 어디에 있는가."

  시골살이하며 자식을 키운 한 어른의 땅을 향한 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손바닥만한 땅이 노는 걸 보면 자신의 땅이 아닌데도 그걸 부쳐보고 싶은 이 어른의 오래된 설움에 나도 목울대를 타고 슬픔이 올라왔다. 땅과 집! 우리의 한평생이 그것 때문에 볼모로 잡히거나 서러움에 붙들리면 안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땅과 집 때문에 혹사당했는지 모를 일이다. 


  작가가 새벽마다 그날 동네 어르신들이 했던 대화들을 메모해 놓은 기록이란다. 충청도 사투리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특히 교본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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