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힘

양철북, 2013. 7. 19.  남덕현 지음






  "<충청도의 힘>은 '거기서 거기'에 불과한 사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인생의 무겁고 복잡한 의미를 머리칼 쓸어 올리듯 사소하게, 한없이 사소하게 다뤘다."

  "....시인 이성복의 말처럼 살짝 금이 간 '플라스틱 병마개'이기를 바란다. 영원히 헛도는 병마개, 그러나 헛돌기에 삶은 영원히 닫히지 않는다. 시인에게는 시가 병마개이고, 나에게는 일상의 비루함이 그렇다. 이렇게 살고자 하였으나 저렇게 살고, 저렇게 살고자 하였으나 이렇게 사는 것이 삶이다. 얼마나 많은 성찰과 사유의 반복이 필요할 것이며, 삶은 또 얼마나 지쳐 갈 것인가."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에 실린 충청도 노인들은 별로 지쳐보이지 않는다. 낙천과 유머를 인생의 길에 빙 둘러놓고 닥쳐오는 시련과 허망함을 그것들에 예속시키는 경륜이 있으니 말이다. 


  "살펴보나마나 고추 농사 조지기는 매한가지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혀 차는 소리가 잔잔한 공명으로 울려 퍼진다. 그리고 어르신의 얼굴에는 안심이 깃들며 화색이 돈다. 

  "성님, 저 가유!"

  "잉? 밥이나 한술 말구 가!" 

  "아뉴! 고추밭 물 대야 혀유."

  "허허~ 조진 고추밭에 헛물 주는 겨?"

  "고추가 뭔 죄유! 쌩으루 죽일 순 없잖유."

  내려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만 조진게 아닌 것이 어디 고추뿐이랴.

  인생도 나만 조진게 아니라서 조진 사람들끼리 허물없이 살아가는 힘. 충청도의 힘"

  

  나도 이 나이쯤 되었고 지금 상황을 보노라면 인생 조진게 아닌가 싶다. 틀림없이 반은 조졌다.한데 아직 반이 남아있고 그렇다면 마냥 조졌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남아있는 고추밭에 물을 주러 내려가는 어른처럼 발걸음 가벼이 부지런히 내려가야겠다.


  "줄담배도 이어지고 장인어른의 사설도 이어졌다.

  "그란디, 나래두 살림이 힘들문 저라구 안 댕긴다는 보장 못 혀! 옛날부터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 고구라매두 심구문 자석들 쌀밥으루는 배못 불려두 겨울 내둥 알루다가 굶기는 벱은 읎으니께. 저 냥반이 가심에 못이 백혀서 그려. 그눔의 손바닥만 한 밭뙈기 하나 읎이 일생을 살아 노니께, 그 설움이 오죽이겄어? 인자는 잘사나 못사나 자석들 다 밥 먹구 사는디두 그 설움을 못 샘키구 노는 땅만 보믄 기냥 지나치지를 못하는 겨, 워쩌겄어? 그 설움 다헐 때까지는 아무두 못 말려!"

  방바닥에 남겨진 농약병을 치우는데, 목울대를 타고 슬픔이 신물이 넘어오는 듯했다.

  아, 썩을 놈의 손바닥만 한 밭뙈기, 하늘이 땅을 내고, 그 위에 사람을 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땅 때문에 사람 가슴에 못이 박히고, 평생 삼키지도 못할 서러움을 심어 기르라는 뜻은 아니지 않겠는가. 도대체 누가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을, 땅 때문에 서럽고 굶주리게 만드는가, 사람의 의리는 어디에 있는가."

  시골살이하며 자식을 키운 한 어른의 땅을 향한 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손바닥만한 땅이 노는 걸 보면 자신의 땅이 아닌데도 그걸 부쳐보고 싶은 이 어른의 오래된 설움에 나도 목울대를 타고 슬픔이 올라왔다. 땅과 집! 우리의 한평생이 그것 때문에 볼모로 잡히거나 서러움에 붙들리면 안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땅과 집 때문에 혹사당했는지 모를 일이다. 


  작가가 새벽마다 그날 동네 어르신들이 했던 대화들을 메모해 놓은 기록이란다. 충청도 사투리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특히 교본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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