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2월




  이언 매큐언은 이 작품집으로 서머싯 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고 한다.서머싯 몸상 수상이면 화려한 데뷔라고 할 만하다. 거기에 그 작품들이 잊혀지지 않을만큼 강렬하다면 이후 그는 굉장한 작가가 되리라 대개는 짐작할 것이다.  한 재능 넘치는 젊은 작가가 처음 수면 위로 솟구친 순간, 그래서 초기의 첫 작품들은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한편한편이  모두 소외된 인물이거나 비정상적으로 병적인 인물들의 가장행렬 같았다.



  입체 기하학

  부부 사이가 점점 나빠져 아내를 향한 증오심에 빠진 남자가 증조부가 남긴 일기를 정리하면서 입체기하학적 방법으로 아내를 사라지게 만든다. 그는 아내의 애정을 갈구하는 행위조차 무감하게 귀찮아하다 아내를 공간이 없는 공간으로 밀어넣어버린다.  

  남자는 또 증조부가 남긴 범죄자(죄수였던)의 페니스를 소중히 간직하는데(아내가 결국 그것을 깨버렸지만)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저열한 관음증을 엿볼 수 있었다. 

  증조부도 그렇지만 남자 주인공 또한 정상을 한참 벗어난 인물이다. 이 단편집 전체가 이런 식의 괴기와 음습한 공포를 조금씩 변주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상적이고 기괴한 인물들의 극단적인 모습은 작가의 예술적인 재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작가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벌써 인간을 이해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어떤 결핍과 자신만의 방향성을  갖게 된다. 인간으로서 활동한다는 것은 결핍이 드러나게 되는 과정이고, 그럼에도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향하다보면 자신만의 방향성이 생겨난다. 그러다 인간은 악마보다 더한 악인이 되기도 하고 저열하고 비겁한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가정 처방

  성에 눈떠가는 청소년 시기의 한  남자아이, 불안과 동경과 음란한 쾌락이 이 남자아이를 놔주지 않는다. 영악스런 소년은 이것의 정체를 자신의 경험으로 알고자 어린 여동생을 강간한다. 이 악마적인 소년의 행동에 걸맞지 않게 제목이 정말 코미디. 작가의 짖궂은 상상력은 끝이 없다. 하긴 이건 상상력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불쾌해하면서도 상상해봤을 수도. 성이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의, 많은 것의 시작이면서 결말이기도 하다.


  여름의 마지막 날

  악마적인 젊은 매큐언이 이 작품에서는 가엾은 한 여자와 불쌍한 아이를 지독하게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슬픔이 독자를 오랫동안 강가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강가에는 갈대가 우거지고 하늘엔 창백한 달이 떠있다. 주인공 소년의 노젓는 소리와 눈물어린 달빛이 강물에 반사되는 저녁...


  극장의 코커 씨

  코커 씨는 끝내 리허설 도중에 무대 위에서 파트너와 정사를 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쫓겨난다. 


  나비

  이렇게 기분 나쁜 소설을 중독된 것처럼 읽어나가고 끝내 아름답다고까지 느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소녀를 추행하고 운하에 처넣은 찌질하면서도 구역질나는 남자가 마냥 밉지만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오묘하고 기묘한 소설이다. 매큐언, 이 <나비> 하나만으로도 그의 천재성은 뚜렷하게 드러나고 만다.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

  엄마의 이기적이고 말초적인 사랑을 받던 남자가 갑자기 버려지면서 벽장 속으로 숨어버린 이야기. 지나치게 강박적인 사랑에서 벗어난 아들이 영원히 유아로 머물기 위해 택한 벽장 속. 사랑의 상실이,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버림받은 아들의 삶이 어둡고 음울하기만 하다.


  첫 사랑 마지막 의식

  표제작인데 가장 생각이 나지 않는 작품이다. 어린 연인들이 이런저런 삶의 곡절을 겪으면서 서로 단단해지고, 삶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을 갖게 된다는... 이 정도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하긴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체해서 죽다 살아났고, 이사를 했고, 집 정리를 하고, 엄지 손 아래를 수술했다.ㅠㅠ 이제부턴 좀 속도를 내서 책도 읽고 글도 몇 달 만에 써야겠다. 성당에도 주말마다... 일상의 아주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고 노력여하에 따라 안정적인 상황이 지속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장 파티

  이 소설집 전체가 그렇지만 이 작품이 가장 끔찍스럽고 공포스러웠다. 어린 조카를 자신의 필요대로, 여장남자로 서서히 탈바꿈시켜가는 이모의 광기와 히스테리가 목이 졸리는 것처럼 숨막혔다. 겨우 자신의 집에서야 광폭적인 가장 놀이의 연출가이자 배우인 이모의 천박하면서도 기괴한 놀이는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킨다. 결핍이 불러오는 비천하고 뻔뻔한 범죄행위들이 수많은 어린 아이들을 오늘도 희생시키고 있으리라는 예감에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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