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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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산만언니 님의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커다란 사건 중의 하나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앞으로 시간이 많이 흐른다해도 분명히 기억되야만 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사실 그 사건이 발생되기 전까지만 해도 삼풍백화점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시각 나는 택시 안에 있었다. 신입생으로 맞이한 첫 여름 서품식을 마치고 동기들과 택시를 타고 연회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택시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 뉴스에서 긴박한 소식이 들려왔다. 방금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아니 21세기가 얼마남지 않은 그 시점에 오래된 건물도 아니고 새로 지은지 6년 밖에 안된 백화점이라는 거대한 건물이 무너진다라는 게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택시에서 내려 뉴스 화면을 통해 본 붕괴 장면은 예상보다 너무나도 심각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 이후 뉴스에서는 연이어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왔고, 오랜 시간 무너진 잔해더미에 깔려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도 조금은 위로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렇게 오랜 시간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겪게 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병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기에 붕괴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와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헤아리는 정도로 조금씩 잊혀져 갔다. 


시간이 흘러 PTSD에 대한 교육을 받고 삼풍 백화점에서 살아난 사람들,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세월호에서 구조되었거나 구조작업을 했던 분들이 떠올랐다. 그분들은 그 일이 있기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힘들겠구나, 그런 끔찍한 일이 있기 이전과 그 일을 겪고난 이후의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일 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글을 읽으며 행여나 나도 그 엄청난 사건들을 하나의 가십으로만 여긴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서 개미들이 머무는 곳에 침입자가 나타나는 위협적인 순간에 맞닥드린 개미는 순식간에 공포의 감정을 주변의 다른 개미들에게 전달해주는 페로몬 덕분에 한 공간에 머문 개미들은 같은 감정을 느끼며 일사분란하게 대피하거나 다른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일종의 강제적인 공감 호르몬이다. 이에 반해 인간이 가진 호르몬은 그런 강제성을 갖지 못하지만 생면부지의 타인이 겪는 고통스러운 모습에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공감능력은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의 간절한 호소처럼 세월호 사건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남의 고통과 아픔을 제멋대로 재단질 하는 이들은 과연 인간의 호르몬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아픔을 드러내면 주목을 받아 행여나 간신히 메워져 가는 상흔에 새로운 생채기가 나지 않을까 두려웠을 텐데도 용감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준 저자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이 책으로 인해 어디선가 홀로 죽음같은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들이 이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너에게 새로 주어지는 일상을 지켜내길 바라. 기억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는 소중한 거야. 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길 바라. 무엇보다 스스로를 좀더 아껴주었으면 좋겠어. 대단히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매일매일 너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며 지냈으면 좋겠어.

또 세상에 얼어나는 모든 불행의 서사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 그냥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 어떤 일들은 이유 없이 일어나. 우리네 인생도 그래. 이해하려 애쓰지 마. 그냥 받아들여. 깊이 고민하지 마. 그리고 명심해. 네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그 모든 일들은 전부 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잊지 마. 시작된 모든 일에는 끝이 있어.(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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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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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을 읽었다. 출간 예고를 보고 양장본과 저자 싸인이 있는 초판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며칠 늦게 사전 예약 주문을 했다. 출간일 다음 날 바로 도착한 책이 양장본이 아니라서 아쉬워하며 서지를 살펴보니 벌써 9쇄! 정유정 작가의 인기와 독자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단숨에 느껴졌다. 아쉬움을 삼키고 다음에는 꼭 예고를 보자마자 주문 예약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역시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긴장의 연속과 신유나라는 새로운 유형의 사이코패스에게 휘말려 옴싹달싹 못하는 주변 인물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극도의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미 저자의 악의 연대기에서 등장한 주인공들의 보여준 인간 내면에 극악함이 신유나라는 30대의 여성을 통해 책의 제목처럼 완전한 행복을 위해서 불행을 가져올만한 요소들을 잔인하게 제거하는 모습으로 치환되었다. 신유나와 신재인 자매의 불행한 관계의 전개는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두 자매의 어머니는 왜 작은 딸의 서늘한 잔인함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 란 문제의 근원을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신유나가 완전히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행했던 기이한 행동들의 단초는 그가 어린 시절에 부모와 완전히 유폐된 채 할머니에게 감금되는 벌을 감수하며 지냈던 2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영원히 부모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신유나의 맹목적인 행복을 향한 잔혹한 행동들을 정당화시켰다. 


작가의 말에 나왔듯이 전작에서는 악의 주인공들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듯이 진행되었다면, 이번 작품의 악인 신유나는 신유나의 주변 인물들에 의해서 그려진다. 신유나의 언니 신재인, 신유나의 전남편 서준영, 현남편 차은호, 그리고 신유나의 딸 서지유 혹은 차지유의 관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이야기의 초반부에는 신유나가 딸 지유에 대한 태도나 준영과 은호의 대화에서 비춰지는 혹시나 이 여인이 범인일까 라는 의구심이 그렇게 강렬하게 들지는 않는다. 유나가 동거한 대학동기, 러시아의 애인, 아버지를 졸음 운전으로 죽게 만든 사람이 아니었을까에 대한 의심을 잠재울 만큼, 빈틈없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딸 지유의 관점에서 엄마 유나를 바라봤을 때 유나는 집착이 강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긴 하지만 설마 그렇게 잔인한 일을 저지를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아닐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나의 언니 재인과 서준영의 동생 민영의 만남과 은호가 대학동기 진우에게서 듣게 된 유나의 과거를 통해서 거대한 퍼즐이 맞춰지듯이 하나의 결론을 향하고 있었다. 재인과 은호는 자기들의 의심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아무런 자구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유나의 산재물이 되기를 자처한다. 소설의 말미에 유나의 악행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며 극의 절정부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지유는 꿈이라 착각했던 장면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음이, 악몽을 꾸게 만들고 아빠 인형을 갖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각성하게 되어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한다. 반달늪에서 벌어진 죽음을 앞둔 이들의 사투는 한 인간이 무책임하게 자신의 행복만을 꿈꾸며 타인의 불행을 망각한 채 저지른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해서 얻은 결과라면, 우리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얼음 속에서 얼굴을 밖으로 내밀 수 없어 숨쉬지 못하는 누군가를 외면하는 잔인한 인간이 되어버릴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불시에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해올줄은 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고민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는 머뭇대다 대답했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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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 맛, 향기, 빛깔에 스며든 인문주의의 역사
권은중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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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중 님의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를 읽었다. 부제는 ‘맛, 향기, 빛깔에 스며든 인문주의의 역사’이다. 신간 검색을 하다가 ‘볼로냐’라는 제목을 보고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이탈리아에 대한 여행 책자나 인문서적들은 대부분 우리가 잘 아는 로마,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정도를 다루고 있고, 근래에는 토스카나 지역이나 이탈리아 남부 지역 또는 시칠리아 섬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볼로냐’라니 정말 생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볼로냐는 딱 한 번 가봤는데, 제목에 붉은 길이 들어가 있고 표지 자체도 붉은 색으로 정한 것은 정말 볼로냐 도시의 첫 인상이 붉은 벽돌이 주는 강렬함 때문이다. 베로나에서 방학을 보내다 반복된 일상에 변주를 위해서 급 여행으로 결정한 곳이 유로스타를 타고 로마에서 베로나고 갈 때마다 지나쳤던 볼로냐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간이 걸려도 가격이 저렴한 표를 구매하려고 했더니 하필이면 sciopero(파업)가 있는 날이라 울며겨자먹기로 가장 비싼 표를 사고 덕분에 금방 볼로냐에 도착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당시 로마에서는 한 여름 거리의 Bar, Bistro, Ristorante 어디에서도 주홍색 빛깔의 음료가 들어간 와인잔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베네토주의 부자도시 베로나의 여름이면 어디에서든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주홍색 빛깔의 음료가 든 와인잔들 들고 있는 사람들을 거의 매일 마주하게 된다. 그 음료의 이름은 Spritz aperol 인데 aperol 이라는 도수가 높은 술에 화이트 와인(이왕이면 탄산처럼 기포가 있는 spunmante-스파클링 와인)를 섞어 마시는 칵테일의 일종이었다. 주홍색 빛깔이 난 이유는 aperol 이라는 술 때문이고, 다른 도수가 높은 술을 섞으면 색깔이 달라진다. 그런데 아마도 그 조합이 가장 맛이 괜찮았는지, 아니며 주홍색이 너무 예뻐서인지 대부분 그 술만 마신다. 나도 한 번 맛보고 나서는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 빛깔과 맛이 주는 청량함에 푹 빠져 베로나에 오는 지인 누구에게나 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볼로냐 도착한 날 저녁에 베로나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젊은 청년들이 광장에 여기저기 모여서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Spritz aperol 이 맞기는 한데, 와인잔이 아니라 그냥 투명 플라스틱 잔에 마시고 있었다. 볼로냐가 대학의 도시라서 그런건가 싶어 나도 한 잔 주문하고 보니 역시나 평소에 마시던 가격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맛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저자의 책에 자세히 언급된 볼로네제 파스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라구 소스가 들어간 파스타를 평소에 자주 접했음에도 볼로네제는 스파게티 면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역시나 저자의 설명처럼 이탈리아에 속한 각 주는 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주마다 도시마다 너무나도 상이한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주의 도시의 가보지 않고서는 그 지방의 특산 음식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저자의 에필로그에서 고백했듯이 주변의 지인들에게 그렇게 강력히 볼로냐를 추천했음에도 누군가는 볼게 없다든지, 볼로네제 파스타보다 미트볼 슼파게티가 더 맛있다는 혹평을 들었다는 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한식에 길들어진 입맛이 처음부터 단박에 파스타나 피자, 치즈, 프로슈토에 적응할 수는 없다. 얼죽아처럼 아메리카노만 죽도록 마시던 사람이 Bar의 banco(진열대)에 기대어 한 입에 털어넣는 에스프레소를 즐기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의 책을 읽으며 천편일률적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대도시의 관광지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탈리아를 너머 유럽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한 볼로냐라는 도시의 특색을 맛깔지게 소개한 책 덕분에 코로나에서 해방되면 첫 번째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식욕을 자극하는 구수한 향기의 정체인 프로슈토와 살루미를 맛보고 국물이 간절해지면 토르텔리니 만둣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볼로네제 파스타로 속을 든든하게 하여 뜨거운 햇살과 비를 가려줄 기나긴 회랑을 거쳐 산 위에 머문 성당에 가고 싶다. 해질녁이면 반드시 tagliere(도마) 한 상에 올려진 갖가지 햄과 올리브와 함께 람브루스코 와인을 맛보고 싶다. 그리고 아침이든 오후든 Caffe terzi 에서 마로키노나 크레미노를 마셔봐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나는 볼로냐에서 이 수레바퀴의 무게를 잠시 잊어버릴 수 있었다. 볼로냐는 제멋대로인 역사에 맞설 줄 아는 들풀처럼 강인한 사람들이 사는 특이한 지역이었다. 그 비결은 하늘의 뜻도 아니었고, 영민한 천재 혹은 어느 위대한 집단의 영도력도 아니었다. 그저 여럿이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한 방향을 보고 달려왔던 덕분이었다. 
그들은 역시의 수레바퀴가 자신을 짓밝고 지나가게 숨죽이며 기다리는 무른 땅이 아니라 그 수레바퀴가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도록 궤도를 놓을 줄 알았다. 가끔은 그 궤도가 짓이겨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볼로냐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한 궤도의 방향은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놀라운 만큼 지혜로왔다. 
볼로냐는 강철된 된 무지개를 놓았다. 그 무지개는 볼로냐 대학과 에밀리아 모델로 부리는 협동조합뿐 아니라 람부르스코 와인,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 프로슈토와 모르타델라처럼 다채로운 색깔이 있다.(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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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
정재영 지음 / Lik-it(라이킷)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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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님의 [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을 읽었다. Like-it 시리즈 9번째 책이다. 사실 공구하면 최근에 사용한 적이 별로 없기에 문외한이라는 말이 딱이다. 오히려 어릴때에는 못과 망치를 들고 뭔가를 만들어보겠다는 모험심도 있었는데 이제는 겁이 많아져인지, 아님 딱히 벽에 액자 걸때 외에는 딱히 쓸 일이 없어서인지 내 책상에 공구라면 십자와 일자 드라이버와 줄자 밖에 없는 상황이 조금은 한심하고, 조금은 참 편히 살았구나 싶다. 

그럼에도 복스알(소켓)과 깔깔이(래칫 렌치)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잊고 있었던 군생활이 떠올랐다. 포병으로 군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경험이 있을텐데, 조종수나 정비병이 아니어도 검열이 있는 날에는 전 장병이 포에 들러붙어 분해된 재료들을 기름과 구리스로 범벅이 되어 수입을 하게 된다. 이때 다시 원상태의 조립을 위해서 복스알과 깔깔이를 사용하곤 했는데, 깔깔이가 돌아갈때의 소리가 꽤나 리듬감있고 정확히 조여졌을 때 느껴지는 쾌감 같은게 있었다. 구리스는 얼마나 닦이지 않던지 비누칠을 열 번을 해도 손이 미끄덩 거렸고, 그 손으로 상추쌈에 고기를 싸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또 용접에 대한 저자의 예찬과 더불어 용접은 해본적도 없으면서도 알루미늄 용접을 구경하다가 아다리(용접 눈뽕)에 걸려서 하루종일 눈물을 질질 흘렸던 기억도 난다. 

1부에서는 ‘공구로운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어떻게 공구상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공구상으로 적응하고 일을 배워가며 겪은 에피소드를 전해준다. 그리고 2부에서는 ‘공구로운 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간단한 공구에서부터 전문적인 산업용 공구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구체적인 상표의 이름까지 알려준다. 공알못인 나조차도 한 번 사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로 DIY에 대한 동기유발로 충분하다. 아마도 집안의 간단한 작업을 즐겨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계기로 자기만의 공구함이나 작업공간을 갖고 싶은 소망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믹스커피에 대한 저자의 소회는 우리나라에 만연되어 있는 직업의 귀천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학원 강사가 수학 가형 7등급은 결국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럴 거면 지이잉~ 용접 기술 배워 호주로 가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10)”는 기사는 우리 사회에서 육체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70년대에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로 대변되던 사무직 노동자와 공장 및 산업 노동자들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본 시선은 아직도 건제하여 망언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누군가가 믹스커피 봉지에 담긴 커피와 설탕과 프림을 뜨거운 물에 넣고 봉지를 말아 휘휘 저으면 분명 안 좋은 성분이 녹아내릴 것을 알면서도 그 한 잔에 노고와 시름을 견뎌낼 수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잊고 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식품의 믹스커피를 사랑하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가끔은 다른 맛도 보시라고 베트남의 G7커피를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렇게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공장과 아파트가 장난감처럼 쌓아 올려지던 옛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땀 흘리던 우리 부모님들에게 잠깐 숨 돌릴 틈을 만들어준 것이 이 믹스커피 한 잔 아니었을지, 그리고 기분 좋은 달달함과 더불어 적당한 각성으로 현장으로 되돌아가 움직이게 하는 동력의 원천이 아니었을지. 지금 나도 갑자기 믹스커피가 당긴다.(27)”

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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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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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작가의 [카르마 폴리스]를 읽었다. 그야말로 어느 판타지 영화에서 그려볼법한 가시여왕이 지배하는 왕국의 모습이 소설의 커다란 배경이지만,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허구성을 벗겨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부패와 딜레마를 그대로 적용시킬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의 전개는 기존 소설과는 다른 느낌으로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오가며 독자들을 혼란시킨다. 실제에 있을 법한 등장인물이 나와서 스피드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갑작스럽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혼령들의 구슬픈 서사도 진행되고 고아 42번이 마주한 조각상의 시선도 특색있게 등장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고아 42번이 태어나게 된 경위이다. 관절염을 앓는 유리부인과 남편은 불임의 오랜 시간 끝에 아이를 갖게 되고 유리부인의 임신을 유지할 신체적 건강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자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가시여왕이 통치하는 왕국의 모습이다. 유리부인과 남편은 북쪽 마을에서 부르주아와 지배 계급의 사람들과 유리된 채 난쟁이와 노숙자, 가난한 노동자들이 사는 곳에서 거대한 댐 건설의 노동자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다. 가시여왕은 댐 공사에 터무니 없는 명령을 내리며 건축사의 말을 무시했고, 결국 만에 하나의 경우의 수가 실제로 벌어져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거대한 볼더 댐은 무너지고 북쪽 마을 사람들은 수장되고 만다. 댐이 무너지며 유리부인과 남편은 아이를 살리기 위한 기적같은 행동으로 유리부인은 간신히 붙은 숨으로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부모를 잃은 유리부인과 남편의 간난 아기는 이미 교단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P수사가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고아원에 보내지게 된다. 볼더 댐의 수장으로 P수사를 기소하려던 모든 이가 죽게 되고 P수사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 여기며 위선적인 고아원장이 된다. P수사는 평소의 악한 성정을 다시 드러내며 어린 아이들을 추행하고 폭력을 행사하다 그만 21번의 고아를 죽게 만든다. 이후 쥐들의 기이한 행로를 지켜보던 난쟁이 무덤지기가 의로운 젤링거 박사에 투서를 넣게 되고 P수사의 악행은 드러나게 된다. 


이후 가시여왕의 과거사가 드러나게 되는데, 그녀가 그런 극악무도한 인물이 된 불우한 어린 시절이 그려진다. 아주 오래 전 만행을 거듭했던 어느 왕조의 이야기에서 들어봤을 법한 가시여왕의 선조왕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과연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의 전형을 보여주듯이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 그리고 가시여왕은 왕가의 충실한 사냥개이자 잔혹한 집행관이 알도 파스칼리노와 그녀의 아버지와 똑같은 폭정을 이어오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복잡하고도 모든 연결되어 있는 중심에는 고아 42번이 있다. 42번은 박쥐를 닮은 얼굴로 태어나 P수사의 괴롭힘을 당할 위기를 천재적인 암기력으로 모면한 후 전전긍긍한 상태에서 가시여왕의 자폐증에 걸린 아들과의 도플갱어와 같은 얼굴로 궁전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가시여왕의 아들은 지하에 유폐된 채 지내오다가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제정신을 차리게 되는데 그 이후의 전개는 그야말로 피의 복수가 넘쳐 흐르는 호러물을 방불케 하며 죄를 지은 이들은 언제일지 모르는 자신이 덫씌운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진실은 포유류이다.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거짓은 버섯류이다. 한 번에 수천여 개의 홑씨를 뿌리며 포자번식을 하고, 그늘진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라나기 때문이다. 독버섯은 이따금 떨어져주는 빗물 외엔 그 어떠한 보살핌도 필요치 않았다.(275)"


"대관절 세상이 전혀 알기 쉽게 되어 있지 않은데, 거기에 대고 알기 쉬운 설명을 읊어댄다는 건 이미 그 자체로 사기극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손쉬운 설명에만 열광했으니, 이것만큼 그들이 바라는 것이 진리가 아님을 명약관화하게 증명해주는 증거도 없었다.(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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