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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을 읽었다. 출간 예고를 보고 양장본과 저자 싸인이 있는 초판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며칠 늦게 사전 예약 주문을 했다. 출간일 다음 날 바로 도착한 책이 양장본이 아니라서 아쉬워하며 서지를 살펴보니 벌써 9쇄! 정유정 작가의 인기와 독자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단숨에 느껴졌다. 아쉬움을 삼키고 다음에는 꼭 예고를 보자마자 주문 예약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역시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긴장의 연속과 신유나라는 새로운 유형의 사이코패스에게 휘말려 옴싹달싹 못하는 주변 인물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극도의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미 저자의 악의 연대기에서 등장한 주인공들의 보여준 인간 내면에 극악함이 신유나라는 30대의 여성을 통해 책의 제목처럼 완전한 행복을 위해서 불행을 가져올만한 요소들을 잔인하게 제거하는 모습으로 치환되었다. 신유나와 신재인 자매의 불행한 관계의 전개는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두 자매의 어머니는 왜 작은 딸의 서늘한 잔인함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 란 문제의 근원을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신유나가 완전히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행했던 기이한 행동들의 단초는 그가 어린 시절에 부모와 완전히 유폐된 채 할머니에게 감금되는 벌을 감수하며 지냈던 2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영원히 부모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신유나의 맹목적인 행복을 향한 잔혹한 행동들을 정당화시켰다.
작가의 말에 나왔듯이 전작에서는 악의 주인공들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듯이 진행되었다면, 이번 작품의 악인 신유나는 신유나의 주변 인물들에 의해서 그려진다. 신유나의 언니 신재인, 신유나의 전남편 서준영, 현남편 차은호, 그리고 신유나의 딸 서지유 혹은 차지유의 관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이야기의 초반부에는 신유나가 딸 지유에 대한 태도나 준영과 은호의 대화에서 비춰지는 혹시나 이 여인이 범인일까 라는 의구심이 그렇게 강렬하게 들지는 않는다. 유나가 동거한 대학동기, 러시아의 애인, 아버지를 졸음 운전으로 죽게 만든 사람이 아니었을까에 대한 의심을 잠재울 만큼, 빈틈없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딸 지유의 관점에서 엄마 유나를 바라봤을 때 유나는 집착이 강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긴 하지만 설마 그렇게 잔인한 일을 저지를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아닐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나의 언니 재인과 서준영의 동생 민영의 만남과 은호가 대학동기 진우에게서 듣게 된 유나의 과거를 통해서 거대한 퍼즐이 맞춰지듯이 하나의 결론을 향하고 있었다. 재인과 은호는 자기들의 의심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아무런 자구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유나의 산재물이 되기를 자처한다. 소설의 말미에 유나의 악행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며 극의 절정부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지유는 꿈이라 착각했던 장면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음이, 악몽을 꾸게 만들고 아빠 인형을 갖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각성하게 되어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한다. 반달늪에서 벌어진 죽음을 앞둔 이들의 사투는 한 인간이 무책임하게 자신의 행복만을 꿈꾸며 타인의 불행을 망각한 채 저지른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해서 얻은 결과라면, 우리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얼음 속에서 얼굴을 밖으로 내밀 수 없어 숨쉬지 못하는 누군가를 외면하는 잔인한 인간이 되어버릴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불시에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해올줄은 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고민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는 머뭇대다 대답했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11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