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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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언니 님의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커다란 사건 중의 하나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앞으로 시간이 많이 흐른다해도 분명히 기억되야만 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사실 그 사건이 발생되기 전까지만 해도 삼풍백화점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시각 나는 택시 안에 있었다. 신입생으로 맞이한 첫 여름 서품식을 마치고 동기들과 택시를 타고 연회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택시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 뉴스에서 긴박한 소식이 들려왔다. 방금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아니 21세기가 얼마남지 않은 그 시점에 오래된 건물도 아니고 새로 지은지 6년 밖에 안된 백화점이라는 거대한 건물이 무너진다라는 게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택시에서 내려 뉴스 화면을 통해 본 붕괴 장면은 예상보다 너무나도 심각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 이후 뉴스에서는 연이어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왔고, 오랜 시간 무너진 잔해더미에 깔려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도 조금은 위로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렇게 오랜 시간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겪게 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병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기에 붕괴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와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헤아리는 정도로 조금씩 잊혀져 갔다. 


시간이 흘러 PTSD에 대한 교육을 받고 삼풍 백화점에서 살아난 사람들,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세월호에서 구조되었거나 구조작업을 했던 분들이 떠올랐다. 그분들은 그 일이 있기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힘들겠구나, 그런 끔찍한 일이 있기 이전과 그 일을 겪고난 이후의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일 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글을 읽으며 행여나 나도 그 엄청난 사건들을 하나의 가십으로만 여긴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서 개미들이 머무는 곳에 침입자가 나타나는 위협적인 순간에 맞닥드린 개미는 순식간에 공포의 감정을 주변의 다른 개미들에게 전달해주는 페로몬 덕분에 한 공간에 머문 개미들은 같은 감정을 느끼며 일사분란하게 대피하거나 다른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일종의 강제적인 공감 호르몬이다. 이에 반해 인간이 가진 호르몬은 그런 강제성을 갖지 못하지만 생면부지의 타인이 겪는 고통스러운 모습에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공감능력은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의 간절한 호소처럼 세월호 사건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남의 고통과 아픔을 제멋대로 재단질 하는 이들은 과연 인간의 호르몬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아픔을 드러내면 주목을 받아 행여나 간신히 메워져 가는 상흔에 새로운 생채기가 나지 않을까 두려웠을 텐데도 용감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준 저자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이 책으로 인해 어디선가 홀로 죽음같은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들이 이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너에게 새로 주어지는 일상을 지켜내길 바라. 기억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는 소중한 거야. 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길 바라. 무엇보다 스스로를 좀더 아껴주었으면 좋겠어. 대단히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매일매일 너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며 지냈으면 좋겠어.

또 세상에 얼어나는 모든 불행의 서사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 그냥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 어떤 일들은 이유 없이 일어나. 우리네 인생도 그래. 이해하려 애쓰지 마. 그냥 받아들여. 깊이 고민하지 마. 그리고 명심해. 네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그 모든 일들은 전부 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잊지 마. 시작된 모든 일에는 끝이 있어.(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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