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님의 [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을 읽었다. Like-it 시리즈 9번째 책이다. 사실 공구하면 최근에 사용한 적이 별로 없기에 문외한이라는 말이 딱이다. 오히려 어릴때에는 못과 망치를 들고 뭔가를 만들어보겠다는 모험심도 있었는데 이제는 겁이 많아져인지, 아님 딱히 벽에 액자 걸때 외에는 딱히 쓸 일이 없어서인지 내 책상에 공구라면 십자와 일자 드라이버와 줄자 밖에 없는 상황이 조금은 한심하고, 조금은 참 편히 살았구나 싶다. 그럼에도 복스알(소켓)과 깔깔이(래칫 렌치)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잊고 있었던 군생활이 떠올랐다. 포병으로 군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경험이 있을텐데, 조종수나 정비병이 아니어도 검열이 있는 날에는 전 장병이 포에 들러붙어 분해된 재료들을 기름과 구리스로 범벅이 되어 수입을 하게 된다. 이때 다시 원상태의 조립을 위해서 복스알과 깔깔이를 사용하곤 했는데, 깔깔이가 돌아갈때의 소리가 꽤나 리듬감있고 정확히 조여졌을 때 느껴지는 쾌감 같은게 있었다. 구리스는 얼마나 닦이지 않던지 비누칠을 열 번을 해도 손이 미끄덩 거렸고, 그 손으로 상추쌈에 고기를 싸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또 용접에 대한 저자의 예찬과 더불어 용접은 해본적도 없으면서도 알루미늄 용접을 구경하다가 아다리(용접 눈뽕)에 걸려서 하루종일 눈물을 질질 흘렸던 기억도 난다. 1부에서는 ‘공구로운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어떻게 공구상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공구상으로 적응하고 일을 배워가며 겪은 에피소드를 전해준다. 그리고 2부에서는 ‘공구로운 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간단한 공구에서부터 전문적인 산업용 공구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구체적인 상표의 이름까지 알려준다. 공알못인 나조차도 한 번 사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로 DIY에 대한 동기유발로 충분하다. 아마도 집안의 간단한 작업을 즐겨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계기로 자기만의 공구함이나 작업공간을 갖고 싶은 소망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믹스커피에 대한 저자의 소회는 우리나라에 만연되어 있는 직업의 귀천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학원 강사가 수학 가형 7등급은 결국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럴 거면 지이잉~ 용접 기술 배워 호주로 가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10)”는 기사는 우리 사회에서 육체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70년대에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로 대변되던 사무직 노동자와 공장 및 산업 노동자들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본 시선은 아직도 건제하여 망언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누군가가 믹스커피 봉지에 담긴 커피와 설탕과 프림을 뜨거운 물에 넣고 봉지를 말아 휘휘 저으면 분명 안 좋은 성분이 녹아내릴 것을 알면서도 그 한 잔에 노고와 시름을 견뎌낼 수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잊고 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식품의 믹스커피를 사랑하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가끔은 다른 맛도 보시라고 베트남의 G7커피를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렇게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공장과 아파트가 장난감처럼 쌓아 올려지던 옛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땀 흘리던 우리 부모님들에게 잠깐 숨 돌릴 틈을 만들어준 것이 이 믹스커피 한 잔 아니었을지, 그리고 기분 좋은 달달함과 더불어 적당한 각성으로 현장으로 되돌아가 움직이게 하는 동력의 원천이 아니었을지. 지금 나도 갑자기 믹스커피가 당긴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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