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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평점 :
홍준성 작가의 [카르마 폴리스]를 읽었다. 그야말로 어느 판타지 영화에서 그려볼법한 가시여왕이 지배하는 왕국의 모습이 소설의 커다란 배경이지만,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허구성을 벗겨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부패와 딜레마를 그대로 적용시킬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의 전개는 기존 소설과는 다른 느낌으로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오가며 독자들을 혼란시킨다. 실제에 있을 법한 등장인물이 나와서 스피드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갑작스럽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혼령들의 구슬픈 서사도 진행되고 고아 42번이 마주한 조각상의 시선도 특색있게 등장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고아 42번이 태어나게 된 경위이다. 관절염을 앓는 유리부인과 남편은 불임의 오랜 시간 끝에 아이를 갖게 되고 유리부인의 임신을 유지할 신체적 건강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자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가시여왕이 통치하는 왕국의 모습이다. 유리부인과 남편은 북쪽 마을에서 부르주아와 지배 계급의 사람들과 유리된 채 난쟁이와 노숙자, 가난한 노동자들이 사는 곳에서 거대한 댐 건설의 노동자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다. 가시여왕은 댐 공사에 터무니 없는 명령을 내리며 건축사의 말을 무시했고, 결국 만에 하나의 경우의 수가 실제로 벌어져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거대한 볼더 댐은 무너지고 북쪽 마을 사람들은 수장되고 만다. 댐이 무너지며 유리부인과 남편은 아이를 살리기 위한 기적같은 행동으로 유리부인은 간신히 붙은 숨으로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부모를 잃은 유리부인과 남편의 간난 아기는 이미 교단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P수사가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고아원에 보내지게 된다. 볼더 댐의 수장으로 P수사를 기소하려던 모든 이가 죽게 되고 P수사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 여기며 위선적인 고아원장이 된다. P수사는 평소의 악한 성정을 다시 드러내며 어린 아이들을 추행하고 폭력을 행사하다 그만 21번의 고아를 죽게 만든다. 이후 쥐들의 기이한 행로를 지켜보던 난쟁이 무덤지기가 의로운 젤링거 박사에 투서를 넣게 되고 P수사의 악행은 드러나게 된다.
이후 가시여왕의 과거사가 드러나게 되는데, 그녀가 그런 극악무도한 인물이 된 불우한 어린 시절이 그려진다. 아주 오래 전 만행을 거듭했던 어느 왕조의 이야기에서 들어봤을 법한 가시여왕의 선조왕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과연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의 전형을 보여주듯이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 그리고 가시여왕은 왕가의 충실한 사냥개이자 잔혹한 집행관이 알도 파스칼리노와 그녀의 아버지와 똑같은 폭정을 이어오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복잡하고도 모든 연결되어 있는 중심에는 고아 42번이 있다. 42번은 박쥐를 닮은 얼굴로 태어나 P수사의 괴롭힘을 당할 위기를 천재적인 암기력으로 모면한 후 전전긍긍한 상태에서 가시여왕의 자폐증에 걸린 아들과의 도플갱어와 같은 얼굴로 궁전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가시여왕의 아들은 지하에 유폐된 채 지내오다가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제정신을 차리게 되는데 그 이후의 전개는 그야말로 피의 복수가 넘쳐 흐르는 호러물을 방불케 하며 죄를 지은 이들은 언제일지 모르는 자신이 덫씌운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진실은 포유류이다.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거짓은 버섯류이다. 한 번에 수천여 개의 홑씨를 뿌리며 포자번식을 하고, 그늘진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라나기 때문이다. 독버섯은 이따금 떨어져주는 빗물 외엔 그 어떠한 보살핌도 필요치 않았다.(275)"
"대관절 세상이 전혀 알기 쉽게 되어 있지 않은데, 거기에 대고 알기 쉬운 설명을 읊어댄다는 건 이미 그 자체로 사기극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손쉬운 설명에만 열광했으니, 이것만큼 그들이 바라는 것이 진리가 아님을 명약관화하게 증명해주는 증거도 없었다.(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