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 맛, 향기, 빛깔에 스며든 인문주의의 역사
권은중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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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중 님의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를 읽었다. 부제는 ‘맛, 향기, 빛깔에 스며든 인문주의의 역사’이다. 신간 검색을 하다가 ‘볼로냐’라는 제목을 보고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이탈리아에 대한 여행 책자나 인문서적들은 대부분 우리가 잘 아는 로마,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정도를 다루고 있고, 근래에는 토스카나 지역이나 이탈리아 남부 지역 또는 시칠리아 섬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볼로냐’라니 정말 생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볼로냐는 딱 한 번 가봤는데, 제목에 붉은 길이 들어가 있고 표지 자체도 붉은 색으로 정한 것은 정말 볼로냐 도시의 첫 인상이 붉은 벽돌이 주는 강렬함 때문이다. 베로나에서 방학을 보내다 반복된 일상에 변주를 위해서 급 여행으로 결정한 곳이 유로스타를 타고 로마에서 베로나고 갈 때마다 지나쳤던 볼로냐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간이 걸려도 가격이 저렴한 표를 구매하려고 했더니 하필이면 sciopero(파업)가 있는 날이라 울며겨자먹기로 가장 비싼 표를 사고 덕분에 금방 볼로냐에 도착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당시 로마에서는 한 여름 거리의 Bar, Bistro, Ristorante 어디에서도 주홍색 빛깔의 음료가 들어간 와인잔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베네토주의 부자도시 베로나의 여름이면 어디에서든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주홍색 빛깔의 음료가 든 와인잔들 들고 있는 사람들을 거의 매일 마주하게 된다. 그 음료의 이름은 Spritz aperol 인데 aperol 이라는 도수가 높은 술에 화이트 와인(이왕이면 탄산처럼 기포가 있는 spunmante-스파클링 와인)를 섞어 마시는 칵테일의 일종이었다. 주홍색 빛깔이 난 이유는 aperol 이라는 술 때문이고, 다른 도수가 높은 술을 섞으면 색깔이 달라진다. 그런데 아마도 그 조합이 가장 맛이 괜찮았는지, 아니며 주홍색이 너무 예뻐서인지 대부분 그 술만 마신다. 나도 한 번 맛보고 나서는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 빛깔과 맛이 주는 청량함에 푹 빠져 베로나에 오는 지인 누구에게나 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볼로냐 도착한 날 저녁에 베로나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젊은 청년들이 광장에 여기저기 모여서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Spritz aperol 이 맞기는 한데, 와인잔이 아니라 그냥 투명 플라스틱 잔에 마시고 있었다. 볼로냐가 대학의 도시라서 그런건가 싶어 나도 한 잔 주문하고 보니 역시나 평소에 마시던 가격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맛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저자의 책에 자세히 언급된 볼로네제 파스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라구 소스가 들어간 파스타를 평소에 자주 접했음에도 볼로네제는 스파게티 면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역시나 저자의 설명처럼 이탈리아에 속한 각 주는 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주마다 도시마다 너무나도 상이한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주의 도시의 가보지 않고서는 그 지방의 특산 음식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저자의 에필로그에서 고백했듯이 주변의 지인들에게 그렇게 강력히 볼로냐를 추천했음에도 누군가는 볼게 없다든지, 볼로네제 파스타보다 미트볼 슼파게티가 더 맛있다는 혹평을 들었다는 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한식에 길들어진 입맛이 처음부터 단박에 파스타나 피자, 치즈, 프로슈토에 적응할 수는 없다. 얼죽아처럼 아메리카노만 죽도록 마시던 사람이 Bar의 banco(진열대)에 기대어 한 입에 털어넣는 에스프레소를 즐기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의 책을 읽으며 천편일률적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대도시의 관광지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탈리아를 너머 유럽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한 볼로냐라는 도시의 특색을 맛깔지게 소개한 책 덕분에 코로나에서 해방되면 첫 번째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식욕을 자극하는 구수한 향기의 정체인 프로슈토와 살루미를 맛보고 국물이 간절해지면 토르텔리니 만둣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볼로네제 파스타로 속을 든든하게 하여 뜨거운 햇살과 비를 가려줄 기나긴 회랑을 거쳐 산 위에 머문 성당에 가고 싶다. 해질녁이면 반드시 tagliere(도마) 한 상에 올려진 갖가지 햄과 올리브와 함께 람브루스코 와인을 맛보고 싶다. 그리고 아침이든 오후든 Caffe terzi 에서 마로키노나 크레미노를 마셔봐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나는 볼로냐에서 이 수레바퀴의 무게를 잠시 잊어버릴 수 있었다. 볼로냐는 제멋대로인 역사에 맞설 줄 아는 들풀처럼 강인한 사람들이 사는 특이한 지역이었다. 그 비결은 하늘의 뜻도 아니었고, 영민한 천재 혹은 어느 위대한 집단의 영도력도 아니었다. 그저 여럿이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한 방향을 보고 달려왔던 덕분이었다. 
그들은 역시의 수레바퀴가 자신을 짓밝고 지나가게 숨죽이며 기다리는 무른 땅이 아니라 그 수레바퀴가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도록 궤도를 놓을 줄 알았다. 가끔은 그 궤도가 짓이겨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볼로냐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한 궤도의 방향은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놀라운 만큼 지혜로왔다. 
볼로냐는 강철된 된 무지개를 놓았다. 그 무지개는 볼로냐 대학과 에밀리아 모델로 부리는 협동조합뿐 아니라 람부르스코 와인,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 프로슈토와 모르타델라처럼 다채로운 색깔이 있다.(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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