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르완다 ㅣ 나의 첫 다문화 수업 1
엄소희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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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소희 님의 [있는 그대로 르완다]를 읽었다. ‘나의 첫 다문화 수업 01’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앞으로도 이어서 출간될 다양한 나라의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로마에 머물 때 르완다 신부들 2명과 거의 1년간 매일 같이 식사를 했음에도 잊고 살아왔다. 깊은 친분을 쌓기에는 피상적인 대화들이 대부분이었고, 공부하느라 바쁘게 학교를 오가느라 그들의 삶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저 그들의 나이가 나보다 좀 많았을 뿐인데, 당시 르완다의 평균 수명을 이미 넘은 상태였다는 것과 한 명은 공부와 더불어 의학적 진료를 받기 위해서 왔다는 내용 정도였다. 아프리카 신부들과 친분을 쌓는데 경계가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무턱대고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는 선입견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언어적 한계에 매일 매일 허덕이는 나와는 달리 이미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들에게 또 다른 유럽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일은 너무나도 수월해보였기 때문에 ‘배알이 꼬이다’는 말처럼 생겨난 질투심으로 인해 아프리카에 가본적도 없으면서 내전과 기아에 허덕이는 불쌍한 사람들로만 보려고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미 그들을 만나기 전에 나 또한 이탈리아 노인들에게 비슷한 편견이 있음을 느껴왔으면서도 말이다. 당시 어학을 배울 때 머물던 수도원의 너그러운 할아버지 신부님은 내가 기숙사비를 낼 때마다 ‘너에게 그 비용이 너무 부담되는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짓곤 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깍아달라고 할까라는 생각이 교차되며 어쩌면 이 할아버지에게 우리나라는 아직도 6.25 전쟁 후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모습으로 남아있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할아버지가 우리나라 공항에 내린다면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겠지만 말이다. 저자가 르완다에 머물며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 바도 이와 일맥상통하지 않을 듯 싶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시간에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다보니 그에 부산되는 문제점들이 산적해있지만 언제부터인지 백인을 제외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아프리카라 하면 그 수많은 나라들을 한 번에 싸잡아 가난하고 마실 물 조차 없어서 오염된 물을 마신 어린 아이들이 병에 걸려 죽어가는 와중에도 종족간의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공영방송과 케이블 방송 중간에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국제구호활동 NGO와 같은 단체들의 후원회원을 유치하기 위한 공익광고에서 비춰진 모습들이 하나같이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궁핍하고 열악한 모습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르완다]는 우리의 이러한 편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고 제목처럼 있는 그대로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나라가 아니라 르완다라는 한 나라를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1994년 거의 100일동안 지속된 제노사이도로 인해 100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 당시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지금도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가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텐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그게 나와 대체 무슨 상관이나며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거리에서 배설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다. 제노사이드를 극복하고 국민들의 투표로 대통령에 오른 지도자가 2034년까지 연임할 수 있는 법 개정이 있었다고 하니, 그가 정치, 경제를 비롯한 국가 안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해도 여느 나라들의 독재자와 같은 말로가 그려지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그럼에도 마운틴고릴라 보호에 진심으로 열성을 다하며 멸종 위기를 막고 개체 수를 늘려가는 모습은 경제적 부와 상관없이 벌써 예전에 플라스틱 비닐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자 하는 르완다 국민들의 성숙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프리카 문화권에서 시간은 넓은 평면 위에 찍힌 점과 같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명확하게 구분 지어 생각하지 않는 편이고 ‘현재’에 집중하여 사고한다. 1년 내내 기후가 비슷하고 환경의 변화가 크지 않은 데다가 공동체를 이루어 농경이나 목축을 해왔기 때문에 개인의 경험보다는 공동체의 경험이 시간을 인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개인은 그 사이에서 늘 현재에 집중할 뿐이다.(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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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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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펜데믹 상황 때문인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더스트 폴의 재앙이 단지 상상 속에서만 그려낸 이야기만이 아니라 언젠가 우리에게 닥쳐올 일이 아닐까란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소설의 배경은 2050년대에 인간이 만들어낸 나노분자로 인하여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더스트가 증대되어 인류멸망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가 된 곳을 그리고 있다. 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후 더스트를 증산시킨 기관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전세계적인 기구의 협력으로 더스트는 완전 제거되어 인류는 다시 새로운 세계를 재건하게 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아영은 식물학자로 어린 시절 잠깐 머물렀던 온유라는 곳에서 보았던 푸른 빛을 내던 식물을 잊지 못한다. 

아영은 해월에서 모스바나가 과도하게 확장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혹시나 모스바나가 어릴 때 보았던 푸른 빛을 내던 식물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아영은 인류가 더스트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세계를 재건하는 도중에 당연히 알고 있었던 진실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란 가정을 하게 된다. 그 의구심은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학회를 통해서 풀어보고자 희망을 갖고 그곳에서 나오미를 만나 프림 빌리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프림 빌리지는 마치 공상 과학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지금의 세계가 완전히 망가진 이후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세운 새로운 공동체이다. 그렇게 생존만을 위해 생겨난 공동체들이 의례 그렇듯이 공동체 건립 초창기에 구성원들 모두가 열정을 갖고 임하고 어느 정도의 평화로운 시기가 지난 후에는 갈등과 반목 그리고 배신과 이탈이 이어져 공동체는 무너져 버리고 만다. 

아마라와 나오미 자매는 생존지를 찾다가 유일한 이동수단인 호버카를 넘기는 댓가로 얻은 프림 빌리지의 좌표를 얻게 된다. 구사일생으로 프림 빌리지에 도착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그들 자매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 내성종자인 나오미와 절반 정도의 내성을 가진 아마라는 다행스럽게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프림 빌리지에서 지도자에 해당되는 지수 씨와 공동체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온실 안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레이첼을 만나게 된다. 프림 빌리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영화 <아바타>에 나온 원주민 ‘나비족’의 공간을 침투하려는 인간의 폭력적인 모습이 재현되어 그려지는 것 같다. 결국 지수 씨는 프림 빌리지를 지키기 위해서 레이첼이 만류한 식물을 심게 되고 그로 인해 외부인들은 더 이상 마을을 침투하지 못하게 된다. 그 식물이 바로 모스바나이고 그 식물로 인해 프림 빌리지의 사람들이 애써 가꾼 작물들은 모두 죽고 만다. 

아영은 나오미의 증언과 프림 빌리지의 흔적을 토대로 더스트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게 된 것은 모스바라는 식물의 자연적인 변이에 의한 것이 아니라 레이첼이라는 사이버 인간이 의도적으로 변종을 만들어서 가능했음을 증명해낸다. 그리고 아영이 어릴 때 만났던 이희수라는 인물은 프림 빌리지의 기술자 지수 씨였고 그는 죽기 전에 자신과 레이첼의 이야기를 남긴 칩을 남기게 된다. 지수 씨와 레이첼의 숨겨진 이야기는 결국 그들의 연대와 사랑이 싹트는 관심과 애정 덕분에 모스바나라는 치유의 식물이 탄생될 수 있었음을 드러낸다.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 중에서(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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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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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 하우스만의 [사랑하는 아이]를 읽었다. 독일 작가의 책은 실로 오랜만에 접해보는 것 같다. 기차를 타기 전 급하게 들른 서점에서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고르다가 예전에 잠깐 살펴보았던 이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더 이상 다른 책을 살펴볼 여유가 없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작가의 이름이었고, 표지에 쓰인 베스트셀러 1위라는 광고 문구는 오히려 읽고 난 후에 더 큰 실망감을 자아내기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몰입하게 되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 중의 하나는 납치범이 인질을 데리고 있다가 도망친 생존자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도 23살의 젊은 여성이 갑자기 실종되어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레나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 실종된지 십수년이 흘렀지만 그녀의 아버지 마티아스는 딸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소설이라는 가정이기에 이런한 긴장 상태가 극의 재미를 더하기는 하지만 막상 이러한 일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감히 헤아려본다. 요즘도 가끔 지하철과 기차역에 모퉁이에 붙어 있는 실종자들의 사진을 볼 때가 있다. 어떤 곳에서는 식당 탁자 위에 놓인 안내지를 통해서도 잃어버린 이들의 얼굴과 인적사항을 살펴보기도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훑어보지 않을 것이고 실종된지 오래된 경우에는 분명 얼굴도 많이 달라졌을 테니 이렇게 찾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부터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이들의 경우에는 티끌만한 단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고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행여나 제보가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루 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렇게 실종자를 애태게 찾는 마음이 소설 속에서도 레나의 아버지 마티아스와 어머니 카린의 대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마티아스는 자신의 경찰 친구 게르트가 밤 중에 전화를 걸어 레나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교통사고 환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의 지체도 없이 곧장 병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 마티아스는 레나와 닮은 소녀 한나를 발견하게 되고 한나가 자신의 손녀임을 단숨에 알아챈다. 

대부분의 실종자 가족들이 그렇듯이 마티아스와 카린은 레나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기에 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장기간 딸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대부분의 가족들은 일상은 무너져 버릴 수 밖에 없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레나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야스민 그라스는 납치범에 잡혀 가 오두막에 감금되어 한나와 요나스의 엄마 역할을 강요당하게 된다. 야스민은 자신이 레나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납치범은 폭력과 구타로 야스민을 공포로 몰아넣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서의 규칙을 준수할 것을 명령한다. 야스민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납치범을 스노볼로 때려 도망치다 달려오는 차에 치었기 때문인데, 어째서 한나가 같이 구급차에 타고 병원까지 온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된다. 

딸 레나 대신 손녀 한나를 만나게 된 마티아스는 이성을 잃고 딸을 찾기 위한 무모한 짓을 하게 된다. 무능한 경찰을 욕하며 진절머리나는 기자들을 상대로 단서를 흘리게 되고, 야스민이 레나에 대한 내용을 알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야스민에게 공포심을 자아낼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은 절정에 이르러 야스민이 경찰을 만나 납치범으로 추정되는 이의 몽타주를 보고 그는 납치범이 아니라 자신을 차로 치고 구급차를 부르려던 남자였음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다면 납치범은 살아있다는 말인가? 납치범은 의외로 마티아스가 계속해서 접촉해왔던 인물이었고 그는 야스민을 다시 납치해 오두막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다 마티아스와 야스민의 친구 키르스텐까지 죽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때서야 레나와의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고 마티아스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당신은 우리가 오두막에 갇혀 당신의 절대적인 통제를 받으며 살아간다고 믿겠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파리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고, 세상 어디든 못 가는 곳이 없다. 당신은 출입문과 창문을 잠가놓으면 우리가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진 힘이다. 
나는 털실로 만든 고양이를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사방이 가로막힌 공간에서도 태양이 환하게 비쳐들게 할 수 있다. 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따올 수도 있다. 내 아이들이 언제나 내 눈을 통해, 내 설명을 통해 접한 것들을 실제로 대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리란 걸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이 오두막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리라는 것도. 
바로 그것이 희망이다. 내 희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내가 가진 힘이다. 
당신은 우리를 가둘 수 없다. 소유할 수 없다. 
이 오두막은 당신의 감옥이다. 결코 우리의 감옥이 아니다.(44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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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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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 작가의 [대불호텔의 유령]을 읽었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았음에도, 또 개항기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차이나타운 지역을 밥 먹듯이 지나다녔음에도 점점 낙후되어 가는 지역적 현실을 개탄할 뿐 제물포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개화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 소설을 읽기 얼마 전에 우연히 대불호텔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다는 정보를 접하고 왜 지금까지 그 호텔을 우연히도 본적이 없을까 의아했는데 이미 철거되어 자리만 남아있기 때문임을 알고 조금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몇년 전 인기리에 방영된 <미스터 션사인> 드라마에서 쿠도히나가 운영하는 서양식 호텔이 극의 중심적인 장소가 되고 그곳에서 코히를 마시며 허세를 부리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지금까지 대불호텔이 남아 있었다면 드라마에서 재연된 장면들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제목은 [대불호텔의 유령]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좀비나 귀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청에 시달리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헛것을 보거나 토템적인 요소가 아닌 인물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내면의 변화를 다른 목소리로 대변하고 있다. 소설의 형식 또한 독특한데, 화자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중간에 다른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이 몇 겹으로 연결되어 있는듯해,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이 사람이 주인공인가 싶으면, 또 다시 다른 비중있는 인물이 등장하여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흐름은 갈팡질팡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자인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엄마의 친구 보애 이모의 아들 ‘진’을 통해서 보애 이모의 엄마 박지운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나의 엄마와 보애 이모는 둘도 없는 절친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의례 그렇듯이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연락이 끊기게 되지만 서로를 잊지 않고 지냈던 덕에 다시금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보애 이모의 엄마 박지운은 당시 드물게 청인, 지금은 화교라고 불리는 이와 결혼했지만 남편 뢰이한이 죽고 나서 재혼을 하게 되고 딸에게 무척이나 매정한 엄마로 그려진다. 처음 뢰이한 이라는 청인의 이름이 등장했을 때에는 박지운과 뢰이한의 애틋한 사연이 주된 스토리가 될까 생각했는데, 뢰이한이 일했던 중화루에 머물던 고연주와 지영현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후의 전개는 고연주와 지영현이 어떻게 대불호텔을 운영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곳에 장기가 머물게 된 미국인 셜리와의 관계에서 극의 고조는 절정에 달한다. 특히나 지영현은 월미도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아 홀로 살아남아 인천으로 건너온 인물로 6.25 전쟁 발발 후 좌익과 우익의 어처구니 없는 대립으로 형제와 이웃이 서로를 죽고 고발하는 악연이 된 역사적 배경을 삼고 있다. 

고연주와 지영현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소설가 나는 ‘진’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자신의 소설을 완성시킨다. 진의 할머니 박지운이 치매를 앓으며 그때 그때 이야기를 다르게 전했다면 중화루의 지금까지도 이어온 이청화를 통해서 전혀 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셜리, 고연주, 지영현, 뢰이한이라는 인물들이 남긴 흔적들은 폐허가 된 흔적을 떠도는 망령이나 유령이 아니라 나를 안심시키시려는 고단한 시기를 보낸 이들이 전하는 위로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느닷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나는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해준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련은 시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고통 이후 단단해지는 마음이나 냉정한 판단력 같은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는 뜻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을 여유 잇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마다 다르다는 건 알겠다. 물질적인 안정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휴식일 수도 있고, 새로인 닥쳐온 또다른 고난일 수도 있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여유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 불가해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지속되는 원한.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 가라앉지 않는 분노.(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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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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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경 작가의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를 읽었다. 구체적인 장소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카지노가 허가된 강원도 정선이 이야기의 배경이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카지노에서 도박에 중독되어 폐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혹 듣기는 했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도박중독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중독이라는 말이 붙은 것처럼 한 번 빠지게 되면 자신의 의지로는 절대로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도박에 빠진 이들이 갖고 있는 차나 시계나 값이 나는 물건들을 맡기는 전당포에서 일하는 십대를 갓 벗어난 인물이다. 기면증을 앓고 있어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전당포에서 의례 기도를 볼 정도의 체격도 갖추지 못했지만 흰 캐딜락을 몰고 와 전당포를 차린 성사장은 진을 꽤나 신뢰한다. 

이야기는 카지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장수꾼들과 그들의 물건을 맡긴 전당포 사람들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곧바로 주인공인 진이 경쟁 전당포의 진규에게 쫓겨 화장실에 숨어들었다가 성사장의 캐딜락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본격적인 판타지 요소가 개입될 것을 암시한다. 카지노 주변의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이들은 남들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비밀을 안고 있다. 바로 이들 중에 포트를 열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신비로운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과거에 심장 이식을 불법적으로 해상에서 해왔던 사건과 연결되어 흥미를 유발한다. 포트를 열어 공간 이동이 가능한 능력자의 심장을 이식받게 되면 동일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설정으로 한 회장은 주인공 진의 심장을 원하게 된다. 아직 자신의 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진은 자신이 기면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급박한 순간에 포트를 열어 위기를 모면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자신을 보살핀 아줌마가 사실은 엄마였다는 조금은 진부한 설정과 더불어 그 엄마가 진의 심장을 원하는 한 회장의 수하였다는 것은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지만 진과 성사장의 특별한 인연은 결론을 궁금하게 만든다. 

다른 포트를 여는 이들과는 다르게 진에게는 공간 이동과 더불어 시간까지도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이는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오마주 한 것처럼 진이 포트를 열어 공간 이동을 하려는 찰라 그에게는 여러 가지 장소가 쳅터처럼 선택할 수 있어 시간 이동까지도 가능한 것이다. 진에게만 있는 능력을 시기하는 포트를 여는 다른 이들은 진에게 큰 위협이 되지만 진의 엄마와 성사장의 도움으로 진은 위기를 벗어나게 되고, 그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던 심 경장에게 8년 전으로 돌아가 딸을 살릴 수 있는 거래를 한다. 결국 생명을 잃을 수 있는 8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포트를 열은 진은 심 경장을 과거의 시간으로 돌려보내고 그 이후의 미래는 조금씩 달라졌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성사장이 한계령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과거로 돌아간 심 경장의 죽음과 그의 딸이 살아나는 변화로 인해 성사장 또한 진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텔레포트의 능력은 SF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로웠지만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개별적인 특성은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사건과의 연관성이 희미해보여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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