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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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 하우스만의 [사랑하는 아이]를 읽었다. 독일 작가의 책은 실로 오랜만에 접해보는 것 같다. 기차를 타기 전 급하게 들른 서점에서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고르다가 예전에 잠깐 살펴보았던 이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더 이상 다른 책을 살펴볼 여유가 없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작가의 이름이었고, 표지에 쓰인 베스트셀러 1위라는 광고 문구는 오히려 읽고 난 후에 더 큰 실망감을 자아내기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몰입하게 되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 중의 하나는 납치범이 인질을 데리고 있다가 도망친 생존자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도 23살의 젊은 여성이 갑자기 실종되어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레나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 실종된지 십수년이 흘렀지만 그녀의 아버지 마티아스는 딸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소설이라는 가정이기에 이런한 긴장 상태가 극의 재미를 더하기는 하지만 막상 이러한 일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감히 헤아려본다. 요즘도 가끔 지하철과 기차역에 모퉁이에 붙어 있는 실종자들의 사진을 볼 때가 있다. 어떤 곳에서는 식당 탁자 위에 놓인 안내지를 통해서도 잃어버린 이들의 얼굴과 인적사항을 살펴보기도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훑어보지 않을 것이고 실종된지 오래된 경우에는 분명 얼굴도 많이 달라졌을 테니 이렇게 찾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부터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이들의 경우에는 티끌만한 단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고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행여나 제보가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루 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렇게 실종자를 애태게 찾는 마음이 소설 속에서도 레나의 아버지 마티아스와 어머니 카린의 대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마티아스는 자신의 경찰 친구 게르트가 밤 중에 전화를 걸어 레나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교통사고 환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의 지체도 없이 곧장 병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 마티아스는 레나와 닮은 소녀 한나를 발견하게 되고 한나가 자신의 손녀임을 단숨에 알아챈다. 

대부분의 실종자 가족들이 그렇듯이 마티아스와 카린은 레나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기에 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장기간 딸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대부분의 가족들은 일상은 무너져 버릴 수 밖에 없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레나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야스민 그라스는 납치범에 잡혀 가 오두막에 감금되어 한나와 요나스의 엄마 역할을 강요당하게 된다. 야스민은 자신이 레나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납치범은 폭력과 구타로 야스민을 공포로 몰아넣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서의 규칙을 준수할 것을 명령한다. 야스민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납치범을 스노볼로 때려 도망치다 달려오는 차에 치었기 때문인데, 어째서 한나가 같이 구급차에 타고 병원까지 온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된다. 

딸 레나 대신 손녀 한나를 만나게 된 마티아스는 이성을 잃고 딸을 찾기 위한 무모한 짓을 하게 된다. 무능한 경찰을 욕하며 진절머리나는 기자들을 상대로 단서를 흘리게 되고, 야스민이 레나에 대한 내용을 알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야스민에게 공포심을 자아낼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은 절정에 이르러 야스민이 경찰을 만나 납치범으로 추정되는 이의 몽타주를 보고 그는 납치범이 아니라 자신을 차로 치고 구급차를 부르려던 남자였음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다면 납치범은 살아있다는 말인가? 납치범은 의외로 마티아스가 계속해서 접촉해왔던 인물이었고 그는 야스민을 다시 납치해 오두막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다 마티아스와 야스민의 친구 키르스텐까지 죽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때서야 레나와의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고 마티아스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당신은 우리가 오두막에 갇혀 당신의 절대적인 통제를 받으며 살아간다고 믿겠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파리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고, 세상 어디든 못 가는 곳이 없다. 당신은 출입문과 창문을 잠가놓으면 우리가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진 힘이다. 
나는 털실로 만든 고양이를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사방이 가로막힌 공간에서도 태양이 환하게 비쳐들게 할 수 있다. 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따올 수도 있다. 내 아이들이 언제나 내 눈을 통해, 내 설명을 통해 접한 것들을 실제로 대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리란 걸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이 오두막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리라는 것도. 
바로 그것이 희망이다. 내 희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내가 가진 힘이다. 
당신은 우리를 가둘 수 없다. 소유할 수 없다. 
이 오두막은 당신의 감옥이다. 결코 우리의 감옥이 아니다.(44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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