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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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어릴적 소설책을 볼 때면 어차피 작가가 상상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니 아무리 이상하고 끔찍한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라고 치부해버렸다. 그래서 별다른 감정의 진폭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며 소설 속에 나오는 내용들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무리 가공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는 어디선가 내가 만난적 있거나 앞으로 만나게 될, 그리고 어쩌면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에 깊이 몰입한 이후에 한동안 후유증이 남게 된다. 특히나 이번 작품처럼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경우에는 어떤 유희나 여가의 수단 중 하나로 간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책 뒷표지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 곁의 소설가 '나'는 생사의 경계 혹은 그 너머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만한 고통만이 진실에 이를 자격을 준다는 듯이,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고통뿐이라는 듯이.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가장 결연한 답변이 여기에 있다. 언젠가부터 그의 새 소설 앞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된다. 누구나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작가들도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내용이 이어질 때 누구라도 숙연한 마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작 [소년이 온다]에서도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내용을 성경에 나온 "당신의 영혼이 칼에 궤찔리는 가운데"라는 표현처럼 폐부 깊숙이 다가왔다. 그리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광복 이후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 미군정 치하에서 발생된 제주도민 민간인 학살을 실종된 외삼촌의 조카인 인선과 그의 작업동료이자 친구인 작가 경하를 주인공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의 초입에 작가 경하는 극심한 위경련과 더불어 생의 의지를 놓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선과의 작업을 구상하며 소설을 쓰려고 하지만 도저히 그 사건이 불러올 슬픔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그렇게 서서히 슬픔의 나락으로 빠지려는 찰나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인선에게서 당장 자신에게 와줄 것을 부탁받는다. 

제주 중산간 지대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홀로 목공일을 하며 지내던 인선이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오랫만에 마주한 인선은 봉합수술 이후 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마다 바늘로 수술부위를 찔러 피를 내야 하는 고통을 담담히 인내하며 경하에게 지금 당장 제주 자신의 집으로 가서 앵무새 아마를 살펴줄 것을 부탁한다. 눈발이 거세지며 어둑해지는 찰나 마지막 비행기와 마지막 버스를 타고 조난의 위험을 거쳐 경하는 구사일생으로 인선의 집에 도착한다. 위경련에 몸부림치며 앵무새 아마를 마주하지만 이미 숨길이 멈춰 고이고이 감싸 아마를 묻어준다. 이후 경하는 단전, 단수된 인선의 고립된 집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하며 오래전 인선이 이 알려준, 인선의 어머니가 남긴 기록들을 살핀다. 

작년 제주에서 연수를 받으며 4.3 사건에 대한 진상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개괄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섯알 오름과 같은 참상의 현상을 방문하고 그 사건을 겪은 이들의 증언이 담긴 내용을 보며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잔악함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몸서리치게 되었다. 그렇게 제주 초등학교에서, 백사장에서 수만명이 학살된 이후 실종자들은 내륙의 감옥으로 이송된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학살된 이들과 동굴 속에 암매장된 이들이 있다는 것만 알았는데, 내륙이로 이송되어 감옥이 옮겨지며 실종된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그들은 이곳 저곳으로 옮겨지며 결국 폐쇄된 탄광 앞에서 총살되어 갱도 속으로 파묻히게 되고 그 앞에 시멘트로 매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유해가 발굴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도 수천구의 유해가 깊은 갱도 안에 그대로 묻혀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학살의 진상은 언제쯤 다 밝혀질 수 있을까? 그때 그들을 총살했던 군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다 죽었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낮에는 공방에서 나무를 깎고, 밤이면 안채로 돌아와 구술 증언자료들을 읽었어. 자료마다 다른 사망자들의 데이터를 대조해 확정했어. 오십 년 봉인이 해제된 후 접근 가능해진 미군 기록물들과 당시 언론 보도, 1948년과 1949년에 재판 없이 수감된 제주 수형인 명부와 보도연맹 학살 사이에서 사건들을 복기했어. 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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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밥 : 미음의 마음 ㅣ 띵 시리즈 12
정의석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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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석 님의 [미음의 마음: 병원의 밥]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12번째 책이다. 올해부터 의대에서 지내서 그런지, 매일 출퇴근 하며 병원을 왕래하는 환자들을 지켜봐서 그런지 책에 씌여진 내용이 남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에 며칠 동안 입원을 해서 그런지 '병원의 밥'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밥을 먹기만 하면 복통이 지속되어 결국 금식을 하고 원인을 찾아보고자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다. 링거 덕분에 극심한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고 속쓰림을 방지하는 약도 함께 맞았기에 약간 기운이 없는 정도였지만 어디선가 구수한 밥향기가 나면 입에 침이 고였다. 중증 환자도 아니고,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니기에 몸의 어느 부분이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았지만 링거 줄을 매달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의 행동은 여러가지 제약이 따랐다. 이틀만에 죽을 먹는데 참 달았다. 죽이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라는 생각과 더불어 부디 먹고나서 복통이 일지 않기를 기도했다. 


머리를 감지 못하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수염이 거뭇거뭇해진 채 셀카를 찍어보니 사람 몰골이 이렇게 하루만에 초췌해지는구나 라는 진리를 깨닫고 환자복을 입은 낯선 모습을 한동안 노려보았다. 예전에 환자 방문을 할 때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부끄러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남들에게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뭘 특별히 잘못해서 그런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몸이 아프게 되면 지난날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인간이라며 어쩔 수 없이 생로병사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음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고통은 참으로 두렵기만 하다. 그런 슬픔의 시간에도 훈련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 내용 중 응급실에서 자신의 아이를 빨리 봐주지 않는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진상을 부리는 한 젊은 엄마가 나온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엄마도 다른 병원의 의사다. 이 책의 저자 또한 흉부외과 의사이지만 엄마를 수술실에 들여보내는 애끓는 마음을 고백한다. 


"요즘도 나는 그날의 우리 가족처럼 수술실 입구에서 잘 다녀오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초조해 어쩔 줄 모르며 손을 흔드는 환자와 가족들을 본다. 그때마다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입이 바짝바짝 말라 병원 주위를 미친 듯 걸으며 시간을 보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면 내 환자의 보호자들에게는, 긴 수술이니까 힘들더라도 꼭 식사를 하고 천천히 환자를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린다. 

물론 음식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식당의 메뉴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보호자 식당의 밥은 맛이 있을 리 없고, 보호자들은 그 맛도 느끼지 못하리란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나는 좀처럼 흘러가지 않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음식을 입어 넣고 삼켜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린다. 한숨을 내쉬는 대신, 맺힌 눈물을 흘리는 대신, 쉽게 넘어가지 않는 음식이라도 조금씩 삼키다 보면, 두려움과 불안도 함께 삼켜진다고 믿기 때문이다.(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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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3
김희선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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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작가의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3번째 작품이다. 작년 연수 기간 중에 '우주 이야기' 시간이 있었다. 어릴 때는 [과학 동아]를 사서 볼 정도로 우주의 신비에 관심이 많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실제로 다가설 수 없는 무한의 크기와 물리적 거리감 때문인지 소원해져서 아예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그 신비로움과 새롭게 발견된 과학적 사실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결국 우주의 기원과 팽창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진화론과 창조론이 소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인간의 진화론을 주장하는 강사의 논리에 결국은 영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한 자연진화론의 신봉자라 할지라도 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인간을 인간다운 객체로 인정할 수 있는 영혼이 주입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대체 어느 단계에서 여타의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서의 가치가 정립되는 것일까? 인간이 보노보 원숭이와 유전적으로 98%의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원숭이를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결국 인간의 영혼을 인정하게 되면 원숭이와 인간은 존재 순간부터 본래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사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송과선을 처음 언급한 철학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철학적 명제를 남긴 데카르트이다. 


"예로부터 영혼이 안주하는 기관이 어디인가를 두고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주장을 펼쳐 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본래 영혼은 인간의 심장에 거주한다고 믿어져 왔다. 가장 오래된 벽화 중 하나인 피라미드의 그림을 보아도, 아누비스가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죽은 자의 심장이다. 저승에 옷ㄴ 그 개는, 사자(死者)의 영혼의 무게를 재기 위해 (그리하여 그가 지은 죄의 무게를 가늠하기 위하여) 심장을 천칭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이 오래된 믿음은 계몽 시대에 이르러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혼은 과연 어디에 머무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두뇌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송과선'이라는 기관에 주목했다. 인체의 모든 기관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각각 두 개씩 쌍을 이루는 데에 반하여 송과선은 뇌의 중심에 있으며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데서, 그는 영혼이 솔방울 모양으로 생긴 이 작은 기관에 담겨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125-126)"


극동리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어떤 이상한 방법으로 인간의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이동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실험에 이용된 사람들은 빈 껍데기만을 가진 채 살아가게 되는 SF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노이균 회장을 비롯한 인간의 영혼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이들은 이만호와 같이 그들에게 저항하는 무리들을 소탕하려고 하고, 그들의 갈등을 우연히 알게 된 김영주와 최와 같은 기자들은 서서히 그들의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그런데 극동리는 단순히 노이균과 같은 무리가 실험을 자행하는 장소만이 아니라 <배틀 온 마스>라는 이름의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찍는 세트장이 되어 극동리 주민들이 빈 껍데기가 되는 상황을 영화 속 스토리와 절묘하게 짝을 이루게 된다. 지역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영화 세트장을 짓고 바이오 산업을 육성시킨다는 미명아래 폐기물을 몰래 들여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이들은 극동리 주민들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배들 온 마스>의 주인공 최가 화성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조사하러 갔다가 결국은 화성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어떤 미지의 존재에 의해 머리 속이 다 전염되어 자신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장면은, 소설 속의 최라는 기자와 모습과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인간의 영혼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다는 SF적인 요소가 삽입된 상상 속의 이야기이지만, 비단 그런 능력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현재의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갖가지 치졸하고 편협한 방법으로 타인의 영혼을 농락하는 일들을 그저 방관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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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리커버 에디션)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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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재인, 재욱, 재훈]을 읽었다.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5번째 책이다. 2014년에 출간되었는데, 2021년 서울국제도서전 특별판으로 접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욕심이 더불어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어차피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표지가 달라지거나 특별판, 한정판이 나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입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다른 형태로 재출간된 책을 나란히 꽂아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마치 마약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그런 욕심은 이동진 영화 평론가처럼 아카이브를 만들어놓을 정도로 집약적인 직업과 공간이 없다는 내려놓아야만 한다. 걸핏하면 이사짐을 싸야하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니 너무나도 힘겨운 욕심이다. 그래도 이번 특별판은 양장으로 표지 그림도 소설의 내용들을 암시하고 있어 꽤나 마음에 든다.

소설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되었고, 같은 재 자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혹시나 형제들간이가 싶은 생각은 빙고! 재인은 첫째 딸, 재욱은 3살 어린 남동생, 그리고 막내 재훈은 재인과 열살 차이나 나는 고등학생이다. 재훈이 화자로 나오는 부분에서 드러나듯이 재인과 재욱은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키도 크고 다리도 길쭉한 재훈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형제로 그려진다. 이에 반해, 재훈은 뚱뚱하고 누나 형처럼 공부도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훈이 열등감에 휩싸인 중2병을 앓는 문제아는 아니다. 재인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기업 연구소에서 OLED 조명을 연구하고 있고, 재욱은 아랍지역에서 원유에서 나온 1차 가공유를 다시 2차 가공유로 만드는 시설인 플랜트를 설계하는 일을 하러 떠난다. 고등학생인 재훈마저 교환 학생으로 미국 조지아의 시골 마을에서 지내게 된다. 이처럼 평범한 3남매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세랑 작가의 SF픽션이 가미되며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이들 3남매에게는 이름모를 사람에게 갑작스런 택배를 받게 된다. 재인에게는 손톱깍이와 함께 Save1 이라고 적힌 종이가, 재욱에게는 레이저포인터와 함께 Save2 라고 적힌 종이가, 막내 재훈에게는 열쇠 목걸이와 함께 Save3 라고 적힌 종이가 배달된다.

이들 3남매는 함께 바지락칼국수집에 다녀온 이후 갑작스러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재인은 손톱이 마치 쇠처럼 강력한 힘으로 나무의자에 이름을 새길 수 있을 정도이고, 재욱은 위급 상황이 되면 눈이 빨갛게 변하고, 재훈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고 원하는 층에 멈출 수 있게 된다. 사실 그동안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의 기이한 능력에 비하면 너무나도 하찮은 부분이지만, 그들이 받은 물건과 더불어 종이에 적힌 Save 란 말은 결국 그들의 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Save 란 단어 옆에 붙은 숫자대로 3남매는 이불먼지를 털다 13층에서 떨어져 돌아가실 뻔한 엄마를 구하고, 인신매매단에서부터 탈출해 재욱이 사막을 향해 누른 레이저포인터의 불빛을 보고 도망쳐온 두 명의 소녀를 구하고, 마지막으로 재훈이 조지아의 학교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다가 버섯 먹은 사람들이 환각에 빠져 학생들을 해치러 오는 것을 보고 엘리베이터를 움직여 친구들 3명을 구하게 된다. 슈퍼 히어로들의 영화를 보면 나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면 하고 바라게 된다. 사실 그런 힘이 인간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어찌보며 불공평의 정점에 달하는 것이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더러, 그런 초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나에겐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줄 정도의 친절함과 따뜻함이 있을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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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볼 아래서
강진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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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작가의 [미러볼 아래서]를 읽었다. 부제는 ‘고양이를 찾습니다’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혹시 노래방이나 클럽 같은 것을 소재로 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읽는 도중 고양이 ‘치니’를 잃어버리게 되면서 표지의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건 분명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또 읽다보면 잃어버리는 고양이를 찾고자 하는 주인공 아엽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면서도 고양이가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미러볼과 고양이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이지만 그 중간에 주인공 아엽이 있게 되면 충분히 말이 되고 오히려 미러볼과 고양이에 대한 아엽의 마음이 안쓰러워진다.

우리나라에 노래방 놀이문화가 시작되면서 미러볼은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의 전유물이 아니며 좀 놀아봤다는 날라리들만 향유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며 누구나 흥이 나면 머리 위를 돌며 산란한 빛을 선사하는 미러볼의 향연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한때 노래방을 밥먹듯이 다닐 때에는 미러볼에 대한 아무런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노래방 가기가 죽도록 싫어지면서 미러볼은 TV 드라마에서나 말도 안되는 개연성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로만 인식되어왔다. 그런데 작년에 안식년 기간 중 연수원의 공동체실에 노래방 기계를 갖다놓고 누군가 어디에서 이동식 미러볼을 가지고 와서 분위기를 자아낼 때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 아엽의 아버지는 미러볼 밑에서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아엽은 슬플 때도 화가 날때도 웃는 얼굴인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어 대전 집에 거의 왕래를 하지 않는다. 집을 나간 엄마도 어쩌면 언제나 웃는 얼굴인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데 아엽의 집에 도둑이 들고 그 틈에 고양이 치니가 사라지자, 고양이를 찾기 위해 탐정까지 고용하며 전단지를 붙여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 아버지가 미러볼에서 미친 사람처럼 춤을추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그렇게 미러볼처럼 돌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엽은 친구가 많지 않다. 그나마 대학시절부터 친해진 미옥이 유일하게 아엽에게 오래된 친구이자 함께 오랜 시간 동거를 해왔다. 하지만 학교 선배의 직장에서 어이없은 이유로 짤리고 난 이후 아엽의 상황에서 등장하는 미옥은 아엽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괴롭히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아엽은 고양이 치니에게 말을 건네며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해왔는데, 치니마저 사라지자 아엽의 마음을 위로할 존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치니를 찾아나서는 가운데 아엽이 직장을 그만두게 만든 유명한 미술가의 비리가 밝혀지게 되고 그 미술가로 인해 전시회를 열었던 미옥마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엽은 그때서야 미옥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연락을 받지 않는 미옥에게 찾아가 애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아엽 스스로는 미옥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던 말과 행동이 오히려 미옥을 무시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맨정신으로 미러볼을 쳐다보고 있으면 금방 어지러워진다. 쉴세없이 돌아가며 다양한 파장의 빛을 뿜어내며 우리의 눈을 산란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아엽은 치니를 찾다 지쳐 면역력이 떨어져 평형 기관에 염증이 생기는 전정 신경염에 걸리게 되어, 취업수당을 받기 위해 억지로 연수를 받던 중 알게된 병선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아엽이 걸린 머리가 어지러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정 신경염은 상징적으로 아엽이 처한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어지럽지 않고서는 도저히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난파선과도 같은 상태를 그리려고 한 것은 아닐까? 아엽이 간절히 치니를 찾고자 노력하다 치니와 비슷한 검은 고양이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200만원을 요구했던 것은 아엽이 한 평생 갖고자 했던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인간 관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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