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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리커버 에디션)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평점 :
정세랑 작가의 [재인, 재욱, 재훈]을 읽었다.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5번째 책이다. 2014년에 출간되었는데, 2021년 서울국제도서전 특별판으로 접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욕심이 더불어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어차피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표지가 달라지거나 특별판, 한정판이 나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입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다른 형태로 재출간된 책을 나란히 꽂아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마치 마약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그런 욕심은 이동진 영화 평론가처럼 아카이브를 만들어놓을 정도로 집약적인 직업과 공간이 없다는 내려놓아야만 한다. 걸핏하면 이사짐을 싸야하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니 너무나도 힘겨운 욕심이다. 그래도 이번 특별판은 양장으로 표지 그림도 소설의 내용들을 암시하고 있어 꽤나 마음에 든다.
소설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되었고, 같은 재 자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혹시나 형제들간이가 싶은 생각은 빙고! 재인은 첫째 딸, 재욱은 3살 어린 남동생, 그리고 막내 재훈은 재인과 열살 차이나 나는 고등학생이다. 재훈이 화자로 나오는 부분에서 드러나듯이 재인과 재욱은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키도 크고 다리도 길쭉한 재훈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형제로 그려진다. 이에 반해, 재훈은 뚱뚱하고 누나 형처럼 공부도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훈이 열등감에 휩싸인 중2병을 앓는 문제아는 아니다. 재인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기업 연구소에서 OLED 조명을 연구하고 있고, 재욱은 아랍지역에서 원유에서 나온 1차 가공유를 다시 2차 가공유로 만드는 시설인 플랜트를 설계하는 일을 하러 떠난다. 고등학생인 재훈마저 교환 학생으로 미국 조지아의 시골 마을에서 지내게 된다. 이처럼 평범한 3남매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세랑 작가의 SF픽션이 가미되며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이들 3남매에게는 이름모를 사람에게 갑작스런 택배를 받게 된다. 재인에게는 손톱깍이와 함께 Save1 이라고 적힌 종이가, 재욱에게는 레이저포인터와 함께 Save2 라고 적힌 종이가, 막내 재훈에게는 열쇠 목걸이와 함께 Save3 라고 적힌 종이가 배달된다.
이들 3남매는 함께 바지락칼국수집에 다녀온 이후 갑작스러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재인은 손톱이 마치 쇠처럼 강력한 힘으로 나무의자에 이름을 새길 수 있을 정도이고, 재욱은 위급 상황이 되면 눈이 빨갛게 변하고, 재훈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고 원하는 층에 멈출 수 있게 된다. 사실 그동안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의 기이한 능력에 비하면 너무나도 하찮은 부분이지만, 그들이 받은 물건과 더불어 종이에 적힌 Save 란 말은 결국 그들의 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Save 란 단어 옆에 붙은 숫자대로 3남매는 이불먼지를 털다 13층에서 떨어져 돌아가실 뻔한 엄마를 구하고, 인신매매단에서부터 탈출해 재욱이 사막을 향해 누른 레이저포인터의 불빛을 보고 도망쳐온 두 명의 소녀를 구하고, 마지막으로 재훈이 조지아의 학교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다가 버섯 먹은 사람들이 환각에 빠져 학생들을 해치러 오는 것을 보고 엘리베이터를 움직여 친구들 3명을 구하게 된다. 슈퍼 히어로들의 영화를 보면 나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면 하고 바라게 된다. 사실 그런 힘이 인간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어찌보며 불공평의 정점에 달하는 것이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더러, 그런 초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나에겐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줄 정도의 친절함과 따뜻함이 있을거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