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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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작가의 [가만히 부르는 이름]을 읽었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가슴저미는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진, 혁범, 한솔이 보여준 사랑의 모습은 우리가 가만히 부르는 이름에 얼마나 온 마음과 힘을 다해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나 건축사와 식물재배와 관리를 하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는 색다른 배경을 자아내며 서로가 던지는 말과 행동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듯 느껴졌다. 사람이 사는 공간과 더불어 결국은 우리가 돌아간 자연의 일부인 식물을 돌보는 일은 전혀 다른 듯 하면서도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30대 후반의 주인공 수진은 건축사무소의 일을 시작하면서 만난 직장 선배 혁범을 사랑하게 된다. 언제부터 어떻게 사랑이 시작된 것인지 설명하지 않지만 이미 이혼남이 되어버린 혁범과의 비밀스런 연애를 지속하고 있다는 정황부터 그들의 만남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이혼을 했음에도 그리고 수진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도 미래를 계획하지 않던 혁범의 모습에 아마도 수진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가운데 수진에게 한솔이라은 8살 연하의 남자가 등장한다. 수진과 혁범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로비에 식재 작업을 하러 온 한솔과 우연히 마주친 수진은 한솔의 적극적인 구애와 사랑을 고백하는 메일을 받게 된다. 한솔의 마음을 받을 생각이 없던 수진은 대사관저 리모델링을 마치고 초대받은 곳에서 혁범과 그의 전처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홧김에 한솔에게 연락을 하고 몸을 섞게 된다. 이는 한솔의 경우가 처음이 아니라 혁범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는 자신에게 내리는 형벌과 같았다. 그렇게 어른들의 행위는 하루밤의 기억으로 끝나고 수진의 의도를 아는 이전 남자들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솔은 달랐다. 한솔의 사랑은 더욱 커져만 갔고 수진은 혁범을 떠날 수 없었다. 

런던에서 정원 관련 일을 하기 위해 머물던 한솔은 갑작스런 수진의 연락을 받고 다시금 그녀를 향한 사랑의 열정을 불태운다. 이미 수진에게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한솔은 멈출 수 없었다. 런던에서의 우연한 만남 이후 수진과 한솔은 가까워진 듯 했으나, 중국의 오피스 사무실 작업의 어려움을 겪던 혁범이 오랜만에 수진의 집에서 식사를 하며 깨진 컵에 손을 베는 모습을 지켜보던 수진은 마지막을 고하던 마음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린 혁범을 다시 받아들이게 된다. 한솔에게 이별을 고하고 몹시도 힘겨워하던 한솔은 런던으로 떠나 정원 관련 공부를 할 것이라 연락하며 수진의 행복을 빌어준다. 혁범은 수진과 결혼을 하고 수진에게 아이를 갖자고 용기내어 말한다. 상투적인 러브스토리인 것 같으면서도 서로를 향한 세밀하고 조심스러운 배려의 말과 행동들에 대한 묘사는 점점 서로를 사용하려는 작금의 사랑에 대한 투쟁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소중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중요한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한때는 이별이 구원할 길 없는 결말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알게 된 많은 것들은 항상 ‘이별’이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자신의 의지로 버릴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가야 할 때도 있고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잃어버린 것들도 있지. 어쨌든 이제 그것들이 내 곁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 무게나 선명함, 그리고 소중함을 보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어. 살다 보면 알게 돼.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것들 덕분에 얻은 것이란 걸.(136)”

“‘나보’보다 ‘너’를 연민하는 마음. ‘나’보다 ‘너’가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 입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너’가 ‘나’의 마음에 보답해주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먼저 ‘나’를 내어주는 마음. ‘나’의 가혹함을 덜어내고 ‘너’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마음. 아마도 이러한 마음들이 다름 아닌 사랑의 감정일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부분을 이끌어내준다. 참 고맙고 다행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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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 제25회 시바타 렌자부로상 수상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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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다 마쓰요의 [종이달]을 읽었다. 읽는 내내 제목인 ‘종이달’이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소설 속에 두 번 초승달에 대한 배경 묘사가 나올 때마다 주인공 우메자와 리카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종이달은 말 그대로 종이로 만든 달이기에 진짜가 아닌 가짜를 말한다. 권남희 번역가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부연 설명한다. 

“사진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사진관에서는 초승달 모양의 가짜 달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가짜 달을 보며 찍었는지, 달 모양 위에서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껏 포즈를 잡으며 행복한 얼굴로 가족 혹은 연인과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물론 그것은 종이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달이었던 것 같지만, 거기에서 비롯되어 ‘종이달’이라고 하면,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보낸 가장 행복한 한때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종이달’은 너무나도 이 소설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종이달’이 ‘가짜’와 ‘가장 행복했던 한때’를 중의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면.(353)”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우메자와 리카라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한 은행의 시간제 업무를 담당하며 시작된다. 리카는 냉소적인 남편과의 관계에 환멸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남편과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열망을 잠시 접어둔 채 은행에서 취직하며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다. 어느덧 시간제 업무에서 좀 더 확대된 업무 배당을 받게 되고 우연히 고객의 집에서 고타를 만나게 된다. 고타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리카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외근 후 복귀 길에 지나치던 백화점에서 충동적으로 사게 된 5만엔의 화장품을 계기로 리카는 고객의 돈을 횡령하며 고타와 외도를 하게 된다. 리카의 이야기가 중심적으로 펼쳐지지만 중간에 리카의 고등학교 동창인 오카자키 유코, 리카의 전남친 야마다 가즈키, 그리고 리카가 전업주부일때 다녔던 요리학원 친구인 주조 아키의 이야기가 조금씩 전개된다. 리카의 부정과 불륜이 주된 이야기의 흐름이지만, 리카의 주변 인물들 또한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리카의 어리석게만 보이는 연하남 고타를 향한 무조건적인 조공은 답답하고 위태롭게 보이면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행복한 순간에 대한 의식의 흐름으로 횡령을 반복하는 리카는 물신숭배의 사회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을 많이 소유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 리카의 철부지 애인 고타와의 위험천만한 줄타기 연애를 보면서 가짜임을 알면서도 진짜인 것처럼 손에 쥔 행복의 시간을 카운트 하고 있는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태국의 방콕으로, 치앙마이로 도망친 리카가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망연자실함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엿보며 되뇌이는 후회의 말이 가슴깊이 와닿는다. 나도 가끔 리카와 같은 과거를 거슬러 가는 가정을 하며 후회를 하지만 결국 같은 자리의 나를 만나지 않을까 싶다. 

“만약 고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까, 하고 리카는 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 된 것은 고타를 만나서라고 생각할 수 없다. 만약 편집 회사에 근무했더라면, 만약 아이가 생겼더라면, 만약 마사후미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 중고교가 같이 있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추천으로 그 전문대학을 선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 전문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카드 회사에 근무하는 일도 없고, 은행에서 일할 거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가정은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무수히 흩어졌갔지만, 하지만 어떤 가정을 해도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34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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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띵 시리즈 5
김민철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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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작가의 [치즈: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5번째 책이다. 좋아하는게 뭐냐고 물으면 바로 답할 수 있는 명징한 기호가 있다면 그것 또한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치즈에 대한사랑은 우리나라 5대 음식에 넣어야 마땅하지 않느냐고 주장할 만큼 강력하고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맨 마지막 장에서 예로 든 16가지의 치즈를 한 번 맛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길 정도로 치즈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가독성 넘치게 표현했다. 술술 넘어가는 책장은 허기를 몰고 오고 어딘가 고즈넉한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와인잔을 기울이며 예쁘게 플레이팅 된 치즈를 맛보고 싶은 생각도 들게 만든다. 

저자가 어찌하다보니 치즈에 대한 이야기보다 여행기가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며 치즈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유럽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는 말에 적극 공감이 된다. 어느덧 라떼는 말이야의 세대가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치즈에 대한 첫 기억은 그저 그냥 느끼한 외국 발효 음식이라는 생각만 있었다. 그래도 간혹 햄버거에 들어간 치즈를 먹을 때는 그다지 거부감 없이 먹곤 했는데, 막상 이탈리아에 머물려 먹게 되는 치즈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처음에는 거부감부터 들곤 했다.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고 코를 들어막던 치즈가 어느 순간 고소히 느껴질 때가 있었다. 외국 사람이 김치를 좋아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거나 아예 맛을 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외국 음식을 즐긴다는 사람들도 막상 열흘 이상 해외 여행을 하면 치즈가 들어간 음식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된다. 식습관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몇 년 전에 업무와 더불어 다시 방문하게 된 이탈리아에서 당일치기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오게 되었다. 저자의 책에도 나오는 토스카나 지역의 피엔차라는 곳이었는데, 그곳은 와이너리 뿐만 아니라 pecorino 치즈가 꽤나 유명하다고 했다. 페코리노는 염소를 말한다. 염소젓으로 만든 치즈라니 더군다니 그 지역에서는 tartufo(트러플, 송로버섯)가 많이 발견되는 곳이라 트러플이 들어간 페코리노 치즈를 맛볼 수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자유시간이 주어져 치즈를 사러 어느 가게에 들어갔다. 할머니 한 분이 친절히 맞이해주셨는데, 내가 이탈리아어로 페코리노 치즈를 달라고 주문하자 무척 놀라며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랄게 어디서 왔느냐, 요즘 여기 날씨가 어떻다, 이 치즈가 맛이 있다 등등 간단한 대화였는데, 할머니는 내게 이탈리아어를 아주 잘한다고 칭찬까지 덤으로 해 주셨다. 치즈를 사고 나오며 이런 칭찬을 공부를 할때 들었더라면 그렇게 기죽지 않고 지낼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무튼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고이고이 포장해 온 치즈를 가까운 이들과 함께 와인을 마실 때 꺼내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만 그들의 무덤덤한 반응이라니, 쩝! 그래도 지금은 그때가 몹시도 그립다. 편하게 지인들을 만나던 때가...

“외국을 여행할 땐 마음 놓고 피신할 음식이 필요하다. 여행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그 현실은 때론 냉정하고, 대체로 말이 안 통하며, 게다가 한국에선 평생 벗 삼았던 입맛까지 종종 떠나니 말이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 사람들은 여행 가방 속에 햇반과 라면, 깻잎 장아찌와 고추장, 김치와 미역국 등을 챙긴다. 여차하면 바로 거기로 피신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여행도 몸도 마음도 도무지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저녁, 숙소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익숙한 맛으로 피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위로를 받곤 하니까. 때론 우리가 그 정도에 괜찮아지는 단순한 존재라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드니까.(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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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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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를 읽었다. 여러 작가들의 책에서 인용되는 소설이기에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었고,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어이없게도 스포일러된 결말을 알게 되었다. 조금은 김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결론을 알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촘촘한 법정 판결 기록에 대한 묘사와 주인공 피오나의 긴장된 심리는 겉으로 보이는 완벽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딜레마와 같은 어려운 선택의 순간과 그로 인해 감당해야할 무게가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피오나 메이는 고등법원 판사이다. 피오나는 판사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다보니 어느덧 아이를 갖지 않게 되었고,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해 조금은 미련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해도 아이가 없는 이유가 남편과의 불화를 가져오지 않았고 그들은 별 문제없는 부부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잭은 피오나에게 불같은 열애를 해보고 싶다며 외도를 허락해 달라는 얼토당토 되지도 않는 말을 내뱉는다. 잭은 피오나를 사랑하지만 죽기 전에 꼭 한 번 끓어오르는 성욕을 해소해보고 싶은 것이다. 피오나는 잭의 부탁을 애써 외면하며 잭과의 이별 후의 삶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잭이 외출하자 집 열쇠를 바꾸며 만일 잭이 찾아오지 않을 경우의 비참해질 자신을 상상해본다. 그럼에도 피오나는 프로답게 주어진 소송 판결을 마무리하며 일상을 버텨낸다. 잭과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녀에게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 배당된다. 여호와의 증인으로 애덤이라는 17세 소년이 백혈병에 걸렸지만 수혈을 거부하고 있고, 병원 측에서는 환자와 보호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소송에 대한 판결이다. 애덤의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기에 피오나는 사흘 안에 판결을 내려야 했다. 소설에서는 애덤의 변호인이 왜 그가 수혈을 거부하고 있는지, 그리고 병원 측에서 수혈을 받을 것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마치 법정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여호와의 증인을 그냥 사이비 종교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단정 짓고 국방의 의무를 거부하고 수혈 또한 거부하며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그들의 태도에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피오나가 애덤을 만나 그가 왜 수혈을 거부하는지에 대한 존중하는 태도의 대화를 보며 애덤이 가지고 있는 신실한 종교적 신념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생각 또한 존중 받을 자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애덤은 피오나와 나눈 대화로 마음을 바꿔 수혈을 받게 되고 백혈병을 치료 받아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애덤은아버지와의 마찰을 무릅쓰고 더 이상 여호와의 증인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피오나에게 편지를 보낸다. 피오나는 애덤의 편지를 받고도 답장하지 않게 되고, 다른 도시로 순회판결을 나간 곳까지 애덤이 찾아오게 된다. 애덤과 만나게 된 피오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애덤과 이야기를 나누다 충격적인 제안을 받게 된다. 

피오나의 외면 이후 다시 백혈병이 재발했지만 수혈을 거부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 애덤의 소식을 연주회 도중 듣게 된 피오나는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무너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외도를 하려던 자신을 책망하며 돌아온 잭은 피오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만 피오나의 불안한 모습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피오나는 잭에게 애덤과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영국 법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가정 불화에 대한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단지 먼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언제든 양날의 검을 가진 판단을 내려야 하는 갈래길을 놓였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애덤의 진실한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피오나가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장면을 통해 결국은 종교가 만들어낸 갈등조차도 진심을 기울인 배려만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익히 알고 있는 명제가 가슴 깊이 와닿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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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황승택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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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택 기자의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를 읽었다. 얼마전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을 읽으며 알게된 책이다. 장강명 작가도 전업작가로 글을 쓰기 전에는 기자였기에 저자의 삶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급성 배혈병이라는 혈액암은 말로만 들어도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데, 저자의 생생한 체험이 담긴 글을 읽으니 몇년 간 겪었을 극심한 고통이 조금은 상상되어 잘 모르는 분임에도 연민과 아픔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추천사에 담겨 있는 것처럼 저자의 긍정적인 기운이 담겨 있어 희망찬 마음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젊고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무엇보다도 아내와 두 딸이 있는 가운데 어쩌면 황망히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될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게 진짜 나에게 닥친 일인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고가 정지되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인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감이 밀려오며 이 심각한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할지 모른다. 

저자가 담담히 고백하고 있지만 몇년 간의 투병 생활, 특히나 두 번이나 암이 재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의 심리적 충격은 실로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암으로 인해 받게 된 선물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시선을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동안 간과해 왔던 소중한 것들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음에 감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존경스럽다. 

책을 읽으며 지금도 병실에서 병마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힘과 용기를 낼 수 있기를, 그리고 건강한 삶을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닌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넓힐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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