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달 - 제25회 시바타 렌자부로상 수상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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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다 마쓰요의 [종이달]을 읽었다. 읽는 내내 제목인 ‘종이달’이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소설 속에 두 번 초승달에 대한 배경 묘사가 나올 때마다 주인공 우메자와 리카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종이달은 말 그대로 종이로 만든 달이기에 진짜가 아닌 가짜를 말한다. 권남희 번역가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부연 설명한다. 

“사진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사진관에서는 초승달 모양의 가짜 달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가짜 달을 보며 찍었는지, 달 모양 위에서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껏 포즈를 잡으며 행복한 얼굴로 가족 혹은 연인과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물론 그것은 종이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달이었던 것 같지만, 거기에서 비롯되어 ‘종이달’이라고 하면,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보낸 가장 행복한 한때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종이달’은 너무나도 이 소설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종이달’이 ‘가짜’와 ‘가장 행복했던 한때’를 중의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면.(353)”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우메자와 리카라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한 은행의 시간제 업무를 담당하며 시작된다. 리카는 냉소적인 남편과의 관계에 환멸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남편과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열망을 잠시 접어둔 채 은행에서 취직하며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다. 어느덧 시간제 업무에서 좀 더 확대된 업무 배당을 받게 되고 우연히 고객의 집에서 고타를 만나게 된다. 고타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리카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외근 후 복귀 길에 지나치던 백화점에서 충동적으로 사게 된 5만엔의 화장품을 계기로 리카는 고객의 돈을 횡령하며 고타와 외도를 하게 된다. 리카의 이야기가 중심적으로 펼쳐지지만 중간에 리카의 고등학교 동창인 오카자키 유코, 리카의 전남친 야마다 가즈키, 그리고 리카가 전업주부일때 다녔던 요리학원 친구인 주조 아키의 이야기가 조금씩 전개된다. 리카의 부정과 불륜이 주된 이야기의 흐름이지만, 리카의 주변 인물들 또한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리카의 어리석게만 보이는 연하남 고타를 향한 무조건적인 조공은 답답하고 위태롭게 보이면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행복한 순간에 대한 의식의 흐름으로 횡령을 반복하는 리카는 물신숭배의 사회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을 많이 소유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 리카의 철부지 애인 고타와의 위험천만한 줄타기 연애를 보면서 가짜임을 알면서도 진짜인 것처럼 손에 쥔 행복의 시간을 카운트 하고 있는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태국의 방콕으로, 치앙마이로 도망친 리카가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망연자실함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엿보며 되뇌이는 후회의 말이 가슴깊이 와닿는다. 나도 가끔 리카와 같은 과거를 거슬러 가는 가정을 하며 후회를 하지만 결국 같은 자리의 나를 만나지 않을까 싶다. 

“만약 고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까, 하고 리카는 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 된 것은 고타를 만나서라고 생각할 수 없다. 만약 편집 회사에 근무했더라면, 만약 아이가 생겼더라면, 만약 마사후미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 중고교가 같이 있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추천으로 그 전문대학을 선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 전문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카드 회사에 근무하는 일도 없고, 은행에서 일할 거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가정은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무수히 흩어졌갔지만, 하지만 어떤 가정을 해도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34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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