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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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를 읽었다. 저자의 35주년 기념작에 걸맞게 대작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가 연이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어찌보면 단지 살인 사건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등장인물들의 빈틈없는 연계성을 통해 인간의 죄와 벌이 이분법적으로만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철학적인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 꽤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가까운 나라지만 일본 이름이라 입에 잘 붙지 않지만 특별히 외우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각각의 인물들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촘촘히 묘사되어 있었다. 


이야기의 장르가 사회추리소설이다보니 서정적이고 심오한 내용보다는 정황 묘사와 사건의 진행 등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들이 많다보니 분량이 꽤 많지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미니 시리즈 드라마 한 편을 본 것처럼 그 다음이 다음이 궁금해서 빨리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살해당할 이유가 없을 듯한 양심적인 변호사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고다이 형사, 살인을 자백한 구라키의 아들 가즈마, 살해당한 시라이시 변호사의 딸 미레이, 세 사람의 시점을 따라가며 경찰 수사본부의 형사들, 검사, 변호인, 피해자 참여제도 후원 변호사와의 이야기가 잘 짜인 허구의 세계로 조곤조곤 흥미롭게 펼쳐진다.(564)"


시라이시 변호사가 살해당한 후 펼쳐지는 수사의 전개는 고다야 형사와 그의 동료 나카마치 형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해변의 산책로에서 살해당한 후 거리가 떨어진 길가의 차량 뒷좌석에 방치된 시라이시 변호사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의로운 삶을 살아왔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범인의 행방은 미궁으로 빠져드는듯 했으나 시라이시 변호사 사무실에 통화한 구라키라는 사람의 심문을 통해서 그의 의문스러운 행적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수사에서 구라키는 조금은 어이없게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실토한다. 아니 이렇게 빨리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것인가? 또 다른 사건이 단편식으로 이어지는 형식인가? 의아함이 들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구라키의 아들 가즈마와 시라이시의 딸 미레이가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행적에 의심을 품고 경찰과 검찰, 변호인마저 마무리지으려는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35년 전의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마치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이 하나의 진실이 드러나며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밝혀져 대체 이 사건은 어디까지 연결된 것일까라 놀라움이 생겨난다. 각 나라마다 사법 절차가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일본과 우리나라의 확연하게 다른 범죄과 신상 공개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보통 우리나라는 아주 극악무도한 범인 아니고는 뉴스 보도에서도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범죄자의 신상을 모두 공개해 버리는 편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가즈마와 미레이가 살인자의 아들과 딸이라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받게 되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물론 우리나라도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처지에 놓이곤 한다. 특히나 인터넷의 발달로 익명성에 숨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일임에도 그들을 쉽게 단죄하려고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이 [백조와 박쥐]인 것처럼 처음에는 구라키가 공소시효 때까지 살인한 것을 숨기고 그러한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시라이시 변호사를 살해한 것으로 인해 그의 아들 가즈마가 나락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사실은 시라이시 변호사의 35전 살해사건의 진범이며 구라키는 다른 이유로 그 모든 것을 짊어지려 했던 것이다. 미레이는 한 순간에 피해자의 딸에서 파렴치한 살인범의 딸로 전락한다. 종이 한 장의 차이처럼 미레이와 가즈마가 진실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백조와 박쥐처럼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백조와 박쥐가 완전 뒤바뀌는 반전을 맞이하고도 미레이는 후회하지 않는다. 진실을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것으로 자신이 감당해야할 현실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누군가의 잘못을 너무나도 쉽게 단정지으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알 고보면 누군가의 죄는 단순히 그로부터 기인했다기보다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촘촘히 연결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n분의 1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해 준다. 


"그분이야말로 가해자 가족이라는 걸로 큰 고통을 겪었어요. 아마 지금은 이전의 일상을 회복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한 일도 잘못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올바른 행동이었다, 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분이 행복해졌다면 그건 나한테도 구원이니까.(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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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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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미 린의 [최애, 타오르다]를 읽었다. ‘19세 등단. 21세 두 번째 소설로 아쿠가와상 수상’이라는 걸출한 표제가 걸린 문구를 보고 과연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최애(最愛)’라는 단어를 주인공의 이름인가 생각했었는데, 내용을 살펴보며 ‘가장 사랑한다’는 뜻임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이 대중문화에 대한 유희가 우리보다 빨라서인지 특정인물이나 특정된 무엇인가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을 오타쿠라는 말이 오덕후 혹은 덕후라는 말로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에 질세라 아이돌을 주축을 우리는 대중가요가 붐을 일으키며 팬덤이라는 말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팬질은 때로는 도를 넘어서 스토킹 같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며 ‘겨울연가’라는 드라마의 엄청난 인기로 인해 일본에서는 욘사마의 중년 여성 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뉴스 보도를 보면서 대체 저 나이에 자국민도 아닌 외국 배우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거야 라는 의아함이 생기기도 했다. 

이제는 남녀노소를 떠나 최애 배우나 가수 등이 한 명 쯤은 있을 것이고 그들의 활동으로 인해 적지 않은 위로와 힘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 말들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한때 한 가수의 노래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가수는 나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내가 그렇게 자주 반복해서 자신의 노래를 들었다는 것을 아마도 죽는 날까지 모를테지만, 소설의 주인공 아카리처럼 최애가 나를 알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최애의 노래가 좋았던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렇게 누군가를,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전혀 생산적인 일이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기에 여러가지의 것들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한 맹목적인 사랑의 행위를 누군가 눈치챈다면 철이 없다느니, 대체 그런 무용한 짓을 왜 계속하는 것이냐며 핀잔을 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사랑의 행위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느끼는 강렬한 욕구에 정당한 응답을 보내는 것 뿐이다. 그래서 열정적인 구애의 행동 이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후회나 아쉬움 같은 것은 남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 아카리는 아이돌 그룹 ‘마자마좌’의 멤버 마사키를 최애한다. 그런데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일상이 마사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학교 공부도 뒷전이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중퇴하게 된다. 학교를 다니지 않을 거면 일이라도 하라는 부모의 이야기를 담아듣지 않는다. 아카리는 오로지 마사키만을 생각하는 조금은 모자란 청소년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카리가 그렇게 자신의 온 일상을 바쳐 최애하는 마사키 또한 조금 제멋대로의 아이돌이다. 아카리처럼 자신만 바라보는 팬들에 대한 배려 없이 갑작스레 그룹을 해체하고 연예가 생활에서 은퇴를 하고 만다. 마사키가 삶의 중심이었던 아카리는 몹시도 혼란스럽다. 꼰대의 나이에 이르러 아카리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대체 아무런 의지도 없이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삶이 얼마나 한심해보이는지 티를 내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일본 사회에서 이 소설이 주목받고 상을 받게 된 것은 아마도 이렇게 서로가 이해하기 힘든 세계에 속해있을 때 한 걸음만 뒤로 내딛어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편협한 시각을 내려보라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오후, 전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어딘지 태평하고 한가로워 보일 때가 있는데, 아마도 ‘이동하는 중’이라는 안심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이동하지 않아도 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안도, 그러니까 속 편하게 휴대폰을 보거나 잘 수 있다. 대기실 같은 곳도 그렇다. 햇살조차 차가운 방에서 코트를 껴입고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에는 때때로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따스한 다정함이 있다. 만약 우리 집 소파였다면, 내 체온과 냄새가 스며든 담요 속이라면 달라진다.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자더라도 해가 저물 때까지 걸리는 시간만큼 마음 어딘가에 새까만 초조함이 달라붙는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괴롭기도 하다.(83)”

“최애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불러 일깨운다. 포기하고 놓아버린 무언가, 평소에는 생활을 위해 내버려둔 무언가, 눌려 찌부러진 무언가를 최애가 끄집어낸다. 그래서 최애를 해석하고 최애를 알려고 했다. 그 존재를 생생하게 느낌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고 했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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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띵 시리즈 10
배순탁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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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작가의 [평양냉면: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10번째 책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여름을 나면서 냉명 한 번 안 먹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까? 딱히 냉면을 먹으로 냉면 전문점을 찾지 않는다고 해도 고기 먹으러 갔다가 후식 냉면 정도는 한 번씩 맛보기 마련이다. 면 매니아가 아닌 나 조차도 해마다 여름이면 냉면을 몇 번씩 사먹곤 했으니 말이다. 띵 시리를 읽다보면 갑자기 나도 그 음식을 먹으러 나가야 할 것 같은 유혹에 휩싸인다. 비단 음식을 주제로 한 에세이지만 음식 얘기만이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틈틈이 섞여 있어 주제가 된 음식이 더욱 땡기는 것 같다. 


이미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얼굴까지도 어느 정도 알려진 저자이기에 혹시나 유명세를 타고 이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은 아닐까란 우려는 단숨에 사라질 정도로 잘 읽혔다. 살얼음이 살짝 낀 냉면수를 들이키는 것처럼 시원한 맛이 느껴지고 자신의 생각과 개성을 주저없이 드러내는 소신넘치는 진술에는 나도 모르게 동조하며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음악 평론가이자 전문가답게 평양냉면에 대한 생각과 짝을 맞추는 듯한 음악 이야기는 여러모로 매력적이고, 음악이 절대로 고정관념처럼 음악을 좀 안다고 허세를 부리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어필해주니 더욱 고맙기 그지없다. 


나도 냉면을 먹으러 가면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식초나 겨자 소스를 넣거나 가위로 면을 자르는 행동은 평양냉면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지 냉면을 가위로 자를 때면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슬쩍 눈치를 보게 된다. 혹시 나 촌뜨기처럼 냉면 자르고 있는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런 나의 의기소침함을 저자가 단숨에 위로해 준다. 식초나 겨자를 넣든 말든, 면을 자르던 말던 냉면을 먹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편하고 내가 만족스러우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평양냉면을 먹을 때의 어떤 절대적인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양냉면 매니아가 설파해주니 속이 다 시원해진다. 특히나 내용 중에 돼지갈비와 같이 먹는 평양냉면에 대한 감상 부분이 나오는 부분은 정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아마도 이렇게 평양냉면 하나에도 전심전력인 작가와 한 팀이기에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앞으로도 꾸준히 인기가 높을 듯 싶다.


"다행이다. 치과 치료를 열심히 받은 결과, 내 이는 아직까지 얼음을 견딘 만하다. 여러분도 더는 미루지 말고 치과 치료를 빨리 받기 바란다. 맛있게 나온 냉면 기왕이면 제대로 즐겨야 하지 않겠나. 무섭다고 치과 치료 미룰수록 늘어나는 건 지옥으로의 초대장이나 다름없는 고통과 치료비뿐이다.(52)"


"내가 바라는 타인과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 적어본다. 상대방에게 사심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관심하지는 않은 관계. 마치 노련한 조종사처럼 서로 간의 영역과 궤도를 잘 지키고 침범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기 할 일 열심히 할 줄 아는 관계. 그러면서도 필요할 때는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관계.(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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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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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스키마와라시]를 읽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면 제목에 붙은 말이 좀 더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고 나니 ‘스키마와라시’라는 말은 실제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고 작가의 만든 가상의 공간에서 적용되는 말이라 소리내어 반복할수록 어떤 주문을 외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르 문학으로만 여겨졌던 SF와 판타지 소설들이 점차 주목받는 시기라 그런지 이번 소설도 판타지 요소가 큰 맥락을 차지하고 있다. 책 표지부터 뭔가 일본의 정통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같이 표현되어 있는데, 실제 읽고나서 다시 살펴보니 소설의 가장 중요한 화두를 아주 잘 표현한 것 같다. 책날개에 표시된 것으로 보아 원서와 같은 표지 디자인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1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다. 중간에 대화가 상당히 많이 나와서 희곡집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주인공 ‘산타’가 ‘스키마와라시’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아주 친절히 설명해주듯 이야기는 진행된다. 산타와 그의 형 다로는 골동품 전문점을 운영하며 더불어 몇 가지 음식을 팔고 있다. 그런데 산타에게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었는데 어떤 물건을 만지고 나면 그 물건에 담긴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어릴때 지로라는 개가 물어온 샌들을 만져 죽은 아이가 버려진 곳을 묘사하거나 커다란 호텔의 기념 파티 현장에서 바닥에 떨어진 오비도메라는 물림 장치만 보고도 주인이 누군지 찾아내는 신묘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부분에서는 스티븐 킹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그린 마일>이 생각났다. 교도소에 갇힌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인물은 범죄자와 악수를 하면 상대방이 살인이나 상해를 가할 때의 장면이 떠오르게 되고 그로 인해 죽음에 처한 이들이 살아나는 이야기로 기억된다. 온다 리쿠도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오마주 한 것인가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조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산타가 갖게 된 이상한 능력은 그의 형 다로가 운영하는 골동품 전문점을 유지하기 위한 일과 연계되어 사건이 발생된다. 우연히 만지게 된 어떤 타일을 통해서 ‘그것’이라 지칭되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의 유입과 오감을 통해 커다란 퍼즐의 한 조각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산타가 형과 함께 그 타일을 찾아나서며 어릴 때 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는 혹시나 부모님의 사고와 관련된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결론 부분에 이르러 산타는 그가 가진 특별한 능력과 이미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로와 너무나도 닮은 너트라는 개를 통해서 부모님을 만나는 통로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산타가 가진 의문을 해소된다. 

산타와 다로가 다이코 하나코를 우연히 만나 페스티벌에 그동안 모아온 골동품인 창문과 문을 사용하며 ‘스키마와라시’라 불리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한 여름 밤에 읽는다면 순간 순간 소름이 돋는 장면들이 연이어 나오기에 적당한 피서가 될 것 같지만 판타지한 요소가 자주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고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일본인들의 정서에는 기묘한 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지 않나 싶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면 우리나라의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들의 주제와는 상반되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접할 때가 많다. 그들이 상상력이 더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너무나도 단조롭고 일률화된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인지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저너머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SNS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뭐, ‘그것’ 탓도 있겠지만. 프라이버시 보호가 심해지고 개인 정보를 신경 쓰는 사람이 늘어난 것에 역행하듯이 어째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사람이 많을까, 그것이 늘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다, 자신에게 그 ‘증거’를 보여주고 안심하고 싶은 것이라면 어쩐지 이해가 된다.(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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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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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SOCRATES EXRESS]를 읽었다. 부제는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이다. 총 14명의 동서양을 망라하는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살피며 기차는 떠난다. 에릭 와이너가 타고 떠나는 철학의 기차는 인간 삶의 기나긴 여정과 함께 하며 삶과 죽음을 성찰하게 도와준다. 새로운 철학의 사조가 생겨나고 그에 따른 변주곡과 같은 기이한 형태의 유행이 뒤따른다 하더라도 결국은 인류의 발생 이래로 지속되어 온 핵심 화두는 마찬가지이다. 과연 인간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 하는 것인가? 


철학은 어렵다. 반면에 철학은 그럴듯하다. 폼내기가 좋다. 어려운 말이나 문장 몇 개를 기억하고 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럴듯한 상황에 툭 내뱉으면 꽤나 관념적인 인간처럼 보인다. 실제로 철학하는 삶을 사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철학의 삶을 살고 있다. 에릭 와이너의 책은 실제 철학가들의 원서를 보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지루해질만 하면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며 적당한 지점에서 딸과 같은 다른 등장 인물들을 등장시켜 책을 덮을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보통 일반적인 철학 전문서적을 읽기 위해서는 꽤나 깊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단지 몇 문장을 연이어 읽었을 뿐인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몇 페이지를 읽고 나면 그 책을 당장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따위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큰 소리 치고 싶어진다. 그에 반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치 고속열차를 탄 것처럼 순식간에 저명한 철학자의 정수로 우리를 데려간다. 에릭 와이너가 너무나 쉽고 간결하게 그 포문을 열어주다보니 철학도 별거 아니구나라는 손쉬운 단정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다른 챕터로 넘어가서 저자가 방금 전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시 언급해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철학은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다. 한 문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소화가 되기를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어떤 철학자가 언급한 내용을 살피기 위해 그가 비판하거나 예로 든 다른 사상가의 책을 뒤적거려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좀처럼 한권을 독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한 명의 철학가가 수십권에서 수백권의 저서를 발표했다면, 그리고 그러한 철학자가 지금까지 수 백, 수 천, 수 만에 이른다면 나는 사실 한 명의 철학자도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어느 시대의 철학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철학을 공부하고 살아가는 것은 시대의 엄청난 거리와 사조의 다양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커대란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어느 순간 비슷한 맥락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거두어들인 깨달음은 한 개인의 지평을 넓혀주고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14명의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 읽었는데도 명확히 기억하는 내용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에릭 와이너가 친절히 안내한 기차를 타고 2천년을 넘나드는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하루를 시작하는 어떤 의미있는 약속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일주일이 조금 더 철학과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용기를 건네 주는 것 같다. 


"걷는 동안 대답이 떠오른다. 짧은 두 단어다. 낯설지만 익숙하고, 터무니없지만 타당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말. 다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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