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의 [스키마와라시]를 읽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면 제목에 붙은 말이 좀 더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고 나니 ‘스키마와라시’라는 말은 실제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고 작가의 만든 가상의 공간에서 적용되는 말이라 소리내어 반복할수록 어떤 주문을 외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르 문학으로만 여겨졌던 SF와 판타지 소설들이 점차 주목받는 시기라 그런지 이번 소설도 판타지 요소가 큰 맥락을 차지하고 있다. 책 표지부터 뭔가 일본의 정통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같이 표현되어 있는데, 실제 읽고나서 다시 살펴보니 소설의 가장 중요한 화두를 아주 잘 표현한 것 같다. 책날개에 표시된 것으로 보아 원서와 같은 표지 디자인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1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다. 중간에 대화가 상당히 많이 나와서 희곡집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주인공 ‘산타’가 ‘스키마와라시’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아주 친절히 설명해주듯 이야기는 진행된다. 산타와 그의 형 다로는 골동품 전문점을 운영하며 더불어 몇 가지 음식을 팔고 있다. 그런데 산타에게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었는데 어떤 물건을 만지고 나면 그 물건에 담긴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어릴때 지로라는 개가 물어온 샌들을 만져 죽은 아이가 버려진 곳을 묘사하거나 커다란 호텔의 기념 파티 현장에서 바닥에 떨어진 오비도메라는 물림 장치만 보고도 주인이 누군지 찾아내는 신묘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부분에서는 스티븐 킹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그린 마일>이 생각났다. 교도소에 갇힌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인물은 범죄자와 악수를 하면 상대방이 살인이나 상해를 가할 때의 장면이 떠오르게 되고 그로 인해 죽음에 처한 이들이 살아나는 이야기로 기억된다. 온다 리쿠도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오마주 한 것인가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조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산타가 갖게 된 이상한 능력은 그의 형 다로가 운영하는 골동품 전문점을 유지하기 위한 일과 연계되어 사건이 발생된다. 우연히 만지게 된 어떤 타일을 통해서 ‘그것’이라 지칭되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의 유입과 오감을 통해 커다란 퍼즐의 한 조각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산타가 형과 함께 그 타일을 찾아나서며 어릴 때 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는 혹시나 부모님의 사고와 관련된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결론 부분에 이르러 산타는 그가 가진 특별한 능력과 이미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로와 너무나도 닮은 너트라는 개를 통해서 부모님을 만나는 통로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산타가 가진 의문을 해소된다. 산타와 다로가 다이코 하나코를 우연히 만나 페스티벌에 그동안 모아온 골동품인 창문과 문을 사용하며 ‘스키마와라시’라 불리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한 여름 밤에 읽는다면 순간 순간 소름이 돋는 장면들이 연이어 나오기에 적당한 피서가 될 것 같지만 판타지한 요소가 자주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고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일본인들의 정서에는 기묘한 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지 않나 싶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면 우리나라의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들의 주제와는 상반되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접할 때가 많다. 그들이 상상력이 더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너무나도 단조롭고 일률화된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인지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저너머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SNS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뭐, ‘그것’ 탓도 있겠지만. 프라이버시 보호가 심해지고 개인 정보를 신경 쓰는 사람이 늘어난 것에 역행하듯이 어째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사람이 많을까, 그것이 늘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다, 자신에게 그 ‘증거’를 보여주고 안심하고 싶은 것이라면 어쩐지 이해가 된다.(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