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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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SOCRATES EXRESS]를 읽었다. 부제는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이다. 총 14명의 동서양을 망라하는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살피며 기차는 떠난다. 에릭 와이너가 타고 떠나는 철학의 기차는 인간 삶의 기나긴 여정과 함께 하며 삶과 죽음을 성찰하게 도와준다. 새로운 철학의 사조가 생겨나고 그에 따른 변주곡과 같은 기이한 형태의 유행이 뒤따른다 하더라도 결국은 인류의 발생 이래로 지속되어 온 핵심 화두는 마찬가지이다. 과연 인간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 하는 것인가? 


철학은 어렵다. 반면에 철학은 그럴듯하다. 폼내기가 좋다. 어려운 말이나 문장 몇 개를 기억하고 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럴듯한 상황에 툭 내뱉으면 꽤나 관념적인 인간처럼 보인다. 실제로 철학하는 삶을 사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철학의 삶을 살고 있다. 에릭 와이너의 책은 실제 철학가들의 원서를 보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지루해질만 하면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며 적당한 지점에서 딸과 같은 다른 등장 인물들을 등장시켜 책을 덮을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보통 일반적인 철학 전문서적을 읽기 위해서는 꽤나 깊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단지 몇 문장을 연이어 읽었을 뿐인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몇 페이지를 읽고 나면 그 책을 당장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따위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큰 소리 치고 싶어진다. 그에 반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치 고속열차를 탄 것처럼 순식간에 저명한 철학자의 정수로 우리를 데려간다. 에릭 와이너가 너무나 쉽고 간결하게 그 포문을 열어주다보니 철학도 별거 아니구나라는 손쉬운 단정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다른 챕터로 넘어가서 저자가 방금 전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시 언급해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철학은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다. 한 문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소화가 되기를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어떤 철학자가 언급한 내용을 살피기 위해 그가 비판하거나 예로 든 다른 사상가의 책을 뒤적거려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좀처럼 한권을 독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한 명의 철학가가 수십권에서 수백권의 저서를 발표했다면, 그리고 그러한 철학자가 지금까지 수 백, 수 천, 수 만에 이른다면 나는 사실 한 명의 철학자도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어느 시대의 철학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철학을 공부하고 살아가는 것은 시대의 엄청난 거리와 사조의 다양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커대란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어느 순간 비슷한 맥락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거두어들인 깨달음은 한 개인의 지평을 넓혀주고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14명의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 읽었는데도 명확히 기억하는 내용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에릭 와이너가 친절히 안내한 기차를 타고 2천년을 넘나드는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하루를 시작하는 어떤 의미있는 약속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일주일이 조금 더 철학과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용기를 건네 주는 것 같다. 


"걷는 동안 대답이 떠오른다. 짧은 두 단어다. 낯설지만 익숙하고, 터무니없지만 타당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말. 다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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