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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우사미 린의 [최애, 타오르다]를 읽었다. ‘19세 등단. 21세 두 번째 소설로 아쿠가와상 수상’이라는 걸출한 표제가 걸린 문구를 보고 과연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최애(最愛)’라는 단어를 주인공의 이름인가 생각했었는데, 내용을 살펴보며 ‘가장 사랑한다’는 뜻임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이 대중문화에 대한 유희가 우리보다 빨라서인지 특정인물이나 특정된 무엇인가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을 오타쿠라는 말이 오덕후 혹은 덕후라는 말로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에 질세라 아이돌을 주축을 우리는 대중가요가 붐을 일으키며 팬덤이라는 말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팬질은 때로는 도를 넘어서 스토킹 같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며 ‘겨울연가’라는 드라마의 엄청난 인기로 인해 일본에서는 욘사마의 중년 여성 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뉴스 보도를 보면서 대체 저 나이에 자국민도 아닌 외국 배우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거야 라는 의아함이 생기기도 했다.
이제는 남녀노소를 떠나 최애 배우나 가수 등이 한 명 쯤은 있을 것이고 그들의 활동으로 인해 적지 않은 위로와 힘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 말들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한때 한 가수의 노래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가수는 나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내가 그렇게 자주 반복해서 자신의 노래를 들었다는 것을 아마도 죽는 날까지 모를테지만, 소설의 주인공 아카리처럼 최애가 나를 알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최애의 노래가 좋았던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렇게 누군가를,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전혀 생산적인 일이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기에 여러가지의 것들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한 맹목적인 사랑의 행위를 누군가 눈치챈다면 철이 없다느니, 대체 그런 무용한 짓을 왜 계속하는 것이냐며 핀잔을 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사랑의 행위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느끼는 강렬한 욕구에 정당한 응답을 보내는 것 뿐이다. 그래서 열정적인 구애의 행동 이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후회나 아쉬움 같은 것은 남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 아카리는 아이돌 그룹 ‘마자마좌’의 멤버 마사키를 최애한다. 그런데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일상이 마사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학교 공부도 뒷전이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중퇴하게 된다. 학교를 다니지 않을 거면 일이라도 하라는 부모의 이야기를 담아듣지 않는다. 아카리는 오로지 마사키만을 생각하는 조금은 모자란 청소년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카리가 그렇게 자신의 온 일상을 바쳐 최애하는 마사키 또한 조금 제멋대로의 아이돌이다. 아카리처럼 자신만 바라보는 팬들에 대한 배려 없이 갑작스레 그룹을 해체하고 연예가 생활에서 은퇴를 하고 만다. 마사키가 삶의 중심이었던 아카리는 몹시도 혼란스럽다. 꼰대의 나이에 이르러 아카리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대체 아무런 의지도 없이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삶이 얼마나 한심해보이는지 티를 내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일본 사회에서 이 소설이 주목받고 상을 받게 된 것은 아마도 이렇게 서로가 이해하기 힘든 세계에 속해있을 때 한 걸음만 뒤로 내딛어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편협한 시각을 내려보라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오후, 전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어딘지 태평하고 한가로워 보일 때가 있는데, 아마도 ‘이동하는 중’이라는 안심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이동하지 않아도 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안도, 그러니까 속 편하게 휴대폰을 보거나 잘 수 있다. 대기실 같은 곳도 그렇다. 햇살조차 차가운 방에서 코트를 껴입고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에는 때때로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따스한 다정함이 있다. 만약 우리 집 소파였다면, 내 체온과 냄새가 스며든 담요 속이라면 달라진다.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자더라도 해가 저물 때까지 걸리는 시간만큼 마음 어딘가에 새까만 초조함이 달라붙는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괴롭기도 하다.(83)”
“최애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불러 일깨운다. 포기하고 놓아버린 무언가, 평소에는 생활을 위해 내버려둔 무언가, 눌려 찌부러진 무언가를 최애가 끄집어낸다. 그래서 최애를 해석하고 최애를 알려고 했다. 그 존재를 생생하게 느낌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고 했다.(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