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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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를 읽었다. 저자의 35주년 기념작에 걸맞게 대작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가 연이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어찌보면 단지 살인 사건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등장인물들의 빈틈없는 연계성을 통해 인간의 죄와 벌이 이분법적으로만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철학적인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 꽤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가까운 나라지만 일본 이름이라 입에 잘 붙지 않지만 특별히 외우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각각의 인물들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촘촘히 묘사되어 있었다. 


이야기의 장르가 사회추리소설이다보니 서정적이고 심오한 내용보다는 정황 묘사와 사건의 진행 등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들이 많다보니 분량이 꽤 많지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미니 시리즈 드라마 한 편을 본 것처럼 그 다음이 다음이 궁금해서 빨리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살해당할 이유가 없을 듯한 양심적인 변호사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고다이 형사, 살인을 자백한 구라키의 아들 가즈마, 살해당한 시라이시 변호사의 딸 미레이, 세 사람의 시점을 따라가며 경찰 수사본부의 형사들, 검사, 변호인, 피해자 참여제도 후원 변호사와의 이야기가 잘 짜인 허구의 세계로 조곤조곤 흥미롭게 펼쳐진다.(564)"


시라이시 변호사가 살해당한 후 펼쳐지는 수사의 전개는 고다야 형사와 그의 동료 나카마치 형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해변의 산책로에서 살해당한 후 거리가 떨어진 길가의 차량 뒷좌석에 방치된 시라이시 변호사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의로운 삶을 살아왔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범인의 행방은 미궁으로 빠져드는듯 했으나 시라이시 변호사 사무실에 통화한 구라키라는 사람의 심문을 통해서 그의 의문스러운 행적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수사에서 구라키는 조금은 어이없게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실토한다. 아니 이렇게 빨리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것인가? 또 다른 사건이 단편식으로 이어지는 형식인가? 의아함이 들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구라키의 아들 가즈마와 시라이시의 딸 미레이가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행적에 의심을 품고 경찰과 검찰, 변호인마저 마무리지으려는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35년 전의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마치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이 하나의 진실이 드러나며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밝혀져 대체 이 사건은 어디까지 연결된 것일까라 놀라움이 생겨난다. 각 나라마다 사법 절차가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일본과 우리나라의 확연하게 다른 범죄과 신상 공개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보통 우리나라는 아주 극악무도한 범인 아니고는 뉴스 보도에서도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범죄자의 신상을 모두 공개해 버리는 편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가즈마와 미레이가 살인자의 아들과 딸이라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받게 되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물론 우리나라도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처지에 놓이곤 한다. 특히나 인터넷의 발달로 익명성에 숨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일임에도 그들을 쉽게 단죄하려고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이 [백조와 박쥐]인 것처럼 처음에는 구라키가 공소시효 때까지 살인한 것을 숨기고 그러한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시라이시 변호사를 살해한 것으로 인해 그의 아들 가즈마가 나락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사실은 시라이시 변호사의 35전 살해사건의 진범이며 구라키는 다른 이유로 그 모든 것을 짊어지려 했던 것이다. 미레이는 한 순간에 피해자의 딸에서 파렴치한 살인범의 딸로 전락한다. 종이 한 장의 차이처럼 미레이와 가즈마가 진실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백조와 박쥐처럼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백조와 박쥐가 완전 뒤바뀌는 반전을 맞이하고도 미레이는 후회하지 않는다. 진실을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것으로 자신이 감당해야할 현실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누군가의 잘못을 너무나도 쉽게 단정지으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알 고보면 누군가의 죄는 단순히 그로부터 기인했다기보다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촘촘히 연결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n분의 1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해 준다. 


"그분이야말로 가해자 가족이라는 걸로 큰 고통을 겪었어요. 아마 지금은 이전의 일상을 회복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한 일도 잘못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올바른 행동이었다, 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분이 행복해졌다면 그건 나한테도 구원이니까.(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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