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밥 : 미음의 마음 띵 시리즈 12
정의석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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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석 님의 [미음의 마음: 병원의 밥]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12번째 책이다. 올해부터 의대에서 지내서 그런지, 매일 출퇴근 하며 병원을 왕래하는 환자들을 지켜봐서 그런지 책에 씌여진 내용이 남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에 며칠 동안 입원을 해서 그런지 '병원의 밥'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밥을 먹기만 하면 복통이 지속되어 결국 금식을 하고 원인을 찾아보고자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다. 링거 덕분에 극심한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고 속쓰림을 방지하는 약도 함께 맞았기에 약간 기운이 없는 정도였지만 어디선가 구수한 밥향기가 나면 입에 침이 고였다. 중증 환자도 아니고,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니기에 몸의 어느 부분이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았지만 링거 줄을 매달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의 행동은 여러가지 제약이 따랐다. 이틀만에 죽을 먹는데 참 달았다. 죽이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라는 생각과 더불어 부디 먹고나서 복통이 일지 않기를 기도했다. 


머리를 감지 못하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수염이 거뭇거뭇해진 채 셀카를 찍어보니 사람 몰골이 이렇게 하루만에 초췌해지는구나 라는 진리를 깨닫고 환자복을 입은 낯선 모습을 한동안 노려보았다. 예전에 환자 방문을 할 때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부끄러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남들에게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뭘 특별히 잘못해서 그런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몸이 아프게 되면 지난날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인간이라며 어쩔 수 없이 생로병사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음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고통은 참으로 두렵기만 하다. 그런 슬픔의 시간에도 훈련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 내용 중 응급실에서 자신의 아이를 빨리 봐주지 않는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진상을 부리는 한 젊은 엄마가 나온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엄마도 다른 병원의 의사다. 이 책의 저자 또한 흉부외과 의사이지만 엄마를 수술실에 들여보내는 애끓는 마음을 고백한다. 


"요즘도 나는 그날의 우리 가족처럼 수술실 입구에서 잘 다녀오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초조해 어쩔 줄 모르며 손을 흔드는 환자와 가족들을 본다. 그때마다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입이 바짝바짝 말라 병원 주위를 미친 듯 걸으며 시간을 보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면 내 환자의 보호자들에게는, 긴 수술이니까 힘들더라도 꼭 식사를 하고 천천히 환자를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린다. 

물론 음식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식당의 메뉴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보호자 식당의 밥은 맛이 있을 리 없고, 보호자들은 그 맛도 느끼지 못하리란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나는 좀처럼 흘러가지 않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음식을 입어 넣고 삼켜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린다. 한숨을 내쉬는 대신, 맺힌 눈물을 흘리는 대신, 쉽게 넘어가지 않는 음식이라도 조금씩 삼키다 보면, 두려움과 불안도 함께 삼켜진다고 믿기 때문이다.(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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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오늘의 젊은 작가 33
김희선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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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작가의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3번째 작품이다. 작년 연수 기간 중에 '우주 이야기' 시간이 있었다. 어릴 때는 [과학 동아]를 사서 볼 정도로 우주의 신비에 관심이 많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실제로 다가설 수 없는 무한의 크기와 물리적 거리감 때문인지 소원해져서 아예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그 신비로움과 새롭게 발견된 과학적 사실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결국 우주의 기원과 팽창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진화론과 창조론이 소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인간의 진화론을 주장하는 강사의 논리에 결국은 영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한 자연진화론의 신봉자라 할지라도 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인간을 인간다운 객체로 인정할 수 있는 영혼이 주입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대체 어느 단계에서 여타의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서의 가치가 정립되는 것일까? 인간이 보노보 원숭이와 유전적으로 98%의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원숭이를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결국 인간의 영혼을 인정하게 되면 원숭이와 인간은 존재 순간부터 본래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사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송과선을 처음 언급한 철학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철학적 명제를 남긴 데카르트이다. 


"예로부터 영혼이 안주하는 기관이 어디인가를 두고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주장을 펼쳐 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본래 영혼은 인간의 심장에 거주한다고 믿어져 왔다. 가장 오래된 벽화 중 하나인 피라미드의 그림을 보아도, 아누비스가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죽은 자의 심장이다. 저승에 옷ㄴ 그 개는, 사자(死者)의 영혼의 무게를 재기 위해 (그리하여 그가 지은 죄의 무게를 가늠하기 위하여) 심장을 천칭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이 오래된 믿음은 계몽 시대에 이르러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혼은 과연 어디에 머무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두뇌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송과선'이라는 기관에 주목했다. 인체의 모든 기관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각각 두 개씩 쌍을 이루는 데에 반하여 송과선은 뇌의 중심에 있으며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데서, 그는 영혼이 솔방울 모양으로 생긴 이 작은 기관에 담겨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125-126)"


극동리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어떤 이상한 방법으로 인간의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이동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실험에 이용된 사람들은 빈 껍데기만을 가진 채 살아가게 되는 SF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노이균 회장을 비롯한 인간의 영혼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이들은 이만호와 같이 그들에게 저항하는 무리들을 소탕하려고 하고, 그들의 갈등을 우연히 알게 된 김영주와 최와 같은 기자들은 서서히 그들의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그런데 극동리는 단순히 노이균과 같은 무리가 실험을 자행하는 장소만이 아니라 <배틀 온 마스>라는 이름의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찍는 세트장이 되어 극동리 주민들이 빈 껍데기가 되는 상황을 영화 속 스토리와 절묘하게 짝을 이루게 된다. 지역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영화 세트장을 짓고 바이오 산업을 육성시킨다는 미명아래 폐기물을 몰래 들여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이들은 극동리 주민들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배들 온 마스>의 주인공 최가 화성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조사하러 갔다가 결국은 화성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어떤 미지의 존재에 의해 머리 속이 다 전염되어 자신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장면은, 소설 속의 최라는 기자와 모습과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인간의 영혼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다는 SF적인 요소가 삽입된 상상 속의 이야기이지만, 비단 그런 능력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현재의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갖가지 치졸하고 편협한 방법으로 타인의 영혼을 농락하는 일들을 그저 방관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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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리커버 에디션)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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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재인, 재욱, 재훈]을 읽었다.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5번째 책이다. 2014년에 출간되었는데, 2021년 서울국제도서전 특별판으로 접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욕심이 더불어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어차피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표지가 달라지거나 특별판, 한정판이 나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입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다른 형태로 재출간된 책을 나란히 꽂아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마치 마약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그런 욕심은 이동진 영화 평론가처럼 아카이브를 만들어놓을 정도로 집약적인 직업과 공간이 없다는 내려놓아야만 한다. 걸핏하면 이사짐을 싸야하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니 너무나도 힘겨운 욕심이다. 그래도 이번 특별판은 양장으로 표지 그림도 소설의 내용들을 암시하고 있어 꽤나 마음에 든다.

소설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되었고, 같은 재 자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혹시나 형제들간이가 싶은 생각은 빙고! 재인은 첫째 딸, 재욱은 3살 어린 남동생, 그리고 막내 재훈은 재인과 열살 차이나 나는 고등학생이다. 재훈이 화자로 나오는 부분에서 드러나듯이 재인과 재욱은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키도 크고 다리도 길쭉한 재훈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형제로 그려진다. 이에 반해, 재훈은 뚱뚱하고 누나 형처럼 공부도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훈이 열등감에 휩싸인 중2병을 앓는 문제아는 아니다. 재인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기업 연구소에서 OLED 조명을 연구하고 있고, 재욱은 아랍지역에서 원유에서 나온 1차 가공유를 다시 2차 가공유로 만드는 시설인 플랜트를 설계하는 일을 하러 떠난다. 고등학생인 재훈마저 교환 학생으로 미국 조지아의 시골 마을에서 지내게 된다. 이처럼 평범한 3남매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세랑 작가의 SF픽션이 가미되며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이들 3남매에게는 이름모를 사람에게 갑작스런 택배를 받게 된다. 재인에게는 손톱깍이와 함께 Save1 이라고 적힌 종이가, 재욱에게는 레이저포인터와 함께 Save2 라고 적힌 종이가, 막내 재훈에게는 열쇠 목걸이와 함께 Save3 라고 적힌 종이가 배달된다.

이들 3남매는 함께 바지락칼국수집에 다녀온 이후 갑작스러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재인은 손톱이 마치 쇠처럼 강력한 힘으로 나무의자에 이름을 새길 수 있을 정도이고, 재욱은 위급 상황이 되면 눈이 빨갛게 변하고, 재훈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고 원하는 층에 멈출 수 있게 된다. 사실 그동안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의 기이한 능력에 비하면 너무나도 하찮은 부분이지만, 그들이 받은 물건과 더불어 종이에 적힌 Save 란 말은 결국 그들의 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Save 란 단어 옆에 붙은 숫자대로 3남매는 이불먼지를 털다 13층에서 떨어져 돌아가실 뻔한 엄마를 구하고, 인신매매단에서부터 탈출해 재욱이 사막을 향해 누른 레이저포인터의 불빛을 보고 도망쳐온 두 명의 소녀를 구하고, 마지막으로 재훈이 조지아의 학교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다가 버섯 먹은 사람들이 환각에 빠져 학생들을 해치러 오는 것을 보고 엘리베이터를 움직여 친구들 3명을 구하게 된다. 슈퍼 히어로들의 영화를 보면 나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면 하고 바라게 된다. 사실 그런 힘이 인간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어찌보며 불공평의 정점에 달하는 것이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더러, 그런 초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나에겐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줄 정도의 친절함과 따뜻함이 있을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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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볼 아래서
강진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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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작가의 [미러볼 아래서]를 읽었다. 부제는 ‘고양이를 찾습니다’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혹시 노래방이나 클럽 같은 것을 소재로 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읽는 도중 고양이 ‘치니’를 잃어버리게 되면서 표지의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건 분명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또 읽다보면 잃어버리는 고양이를 찾고자 하는 주인공 아엽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면서도 고양이가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미러볼과 고양이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이지만 그 중간에 주인공 아엽이 있게 되면 충분히 말이 되고 오히려 미러볼과 고양이에 대한 아엽의 마음이 안쓰러워진다.

우리나라에 노래방 놀이문화가 시작되면서 미러볼은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의 전유물이 아니며 좀 놀아봤다는 날라리들만 향유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며 누구나 흥이 나면 머리 위를 돌며 산란한 빛을 선사하는 미러볼의 향연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한때 노래방을 밥먹듯이 다닐 때에는 미러볼에 대한 아무런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노래방 가기가 죽도록 싫어지면서 미러볼은 TV 드라마에서나 말도 안되는 개연성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로만 인식되어왔다. 그런데 작년에 안식년 기간 중 연수원의 공동체실에 노래방 기계를 갖다놓고 누군가 어디에서 이동식 미러볼을 가지고 와서 분위기를 자아낼 때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 아엽의 아버지는 미러볼 밑에서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아엽은 슬플 때도 화가 날때도 웃는 얼굴인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어 대전 집에 거의 왕래를 하지 않는다. 집을 나간 엄마도 어쩌면 언제나 웃는 얼굴인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데 아엽의 집에 도둑이 들고 그 틈에 고양이 치니가 사라지자, 고양이를 찾기 위해 탐정까지 고용하며 전단지를 붙여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 아버지가 미러볼에서 미친 사람처럼 춤을추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그렇게 미러볼처럼 돌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엽은 친구가 많지 않다. 그나마 대학시절부터 친해진 미옥이 유일하게 아엽에게 오래된 친구이자 함께 오랜 시간 동거를 해왔다. 하지만 학교 선배의 직장에서 어이없은 이유로 짤리고 난 이후 아엽의 상황에서 등장하는 미옥은 아엽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괴롭히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아엽은 고양이 치니에게 말을 건네며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해왔는데, 치니마저 사라지자 아엽의 마음을 위로할 존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치니를 찾아나서는 가운데 아엽이 직장을 그만두게 만든 유명한 미술가의 비리가 밝혀지게 되고 그 미술가로 인해 전시회를 열었던 미옥마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엽은 그때서야 미옥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연락을 받지 않는 미옥에게 찾아가 애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아엽 스스로는 미옥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던 말과 행동이 오히려 미옥을 무시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맨정신으로 미러볼을 쳐다보고 있으면 금방 어지러워진다. 쉴세없이 돌아가며 다양한 파장의 빛을 뿜어내며 우리의 눈을 산란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아엽은 치니를 찾다 지쳐 면역력이 떨어져 평형 기관에 염증이 생기는 전정 신경염에 걸리게 되어, 취업수당을 받기 위해 억지로 연수를 받던 중 알게된 병선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아엽이 걸린 머리가 어지러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정 신경염은 상징적으로 아엽이 처한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어지럽지 않고서는 도저히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난파선과도 같은 상태를 그리려고 한 것은 아닐까? 아엽이 간절히 치니를 찾고자 노력하다 치니와 비슷한 검은 고양이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200만원을 요구했던 것은 아엽이 한 평생 갖고자 했던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인간 관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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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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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누운 배]를 통해서 보여준 노동 현장에 대한 세밀하고도 촘촘한 묘사가 기억이 남았는데, 이번 작품 또한 배관 건설 현장의 관리직을 맡은 이들과 현장 노동자들간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 우연치 않게도 [관리자들]을 읽기 바로 전에 본 [플라멩코를 추는 남자]의 주인공의 직업이 굴착기 기사였는데, 이번 작품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현경 또한 굴착기 기사로 나온다. 사실 운전 중에, 걷는 중에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건설 현장에서 굴착기와 같은 대형 중장비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행여나 피해를 볼까 멀찌감치 돌아서 가게 된다. 그러한 중장비와 더불어 일하시는 분들이 안전모와 같은 장치를 하고 일한다 하더라도 분명 위험성이 내포된 일을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요즘 들어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보도되는 현장 사고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떠오르기에 [관리자들]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거대한 장비가 움직이는 만큼이나 사고가 나면 단순히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만큼, 사고 이후의 보도는 한결같이 사고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는지와 차후 안전대책에 대한 내용으로 마무리를 짓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반복된 사고와 뉴스 보도 이후에도 왜 그렇게 자주 인재로 인한 사고는 연이어서 발생되는가? [관리자들]에 등장한 소장과 반장들의 관계를 통해 그 연유가 어느 정도 밝혀지고 책임을 회피하며 산 사람들을 위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모순된 구조가 어째서 지속될 수 밖에 없는지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솔직함과 정의로움은 결코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남겨진 자들에 대한 책임과 염려라는 미명하에 불의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억울함과 분노는 대체 누가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답함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을 듯하다.

공기를 당기기 위해 흙막이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건너뛴 대가로 너무나도 비참한 선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픈 아이를 위해서 사무직의 일을 그만두게 되고 시작한 현장직에서 선길은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했지만, 아이가 호전되자 적극적으로 일을 가담하여 소장에게도 인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약삭빠른 소장은 선길을 반장직에 앉혀 작업현장을 손쉽게 통제하려는 생각뿐이다. 결국 선길은 배관을 넣기위해 파놓은 구덩이에 넘어지며 머리를 다쳐 죽게 된다. 이후 소장은 행여나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될까 여기저기에 약을 치며 선길이 술을 마시고 일을 하다 그렇게 되었다고 말을 만들어 작업 현장에 있던 이들의 입단속에 들어간다. 선길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던 현경을 매수하기 위해 소장은 이런 말을 던진다.

“간단히 말해 이런 거야. 산 사람에게 착할지, 죽은 사람한테 착할지. 현장소장이라는 걸, 관리라는 걸 하다 보면 그런 선택을 안 할 수 없거든. 솔직히 말해서 난 내가 나쁜 사람도 아니지만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 안해. 솔직히 누가 그렇게 착하고 나쁜 사람이기만 할까 싶고. 덜 나쁜 사람이 되려고 할 뿐이야. 우리 다 그렇잖아. 종종 어쩔 수 없이 누군가한테는 나쁜 사람일 수밖에 없단 말이야. 뭔가 해 줘야 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 혼자만 생각하면 뭐 하러 이러고 있겠어? 무슨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막말로 내가 서 기사한테 통장 주면서 일일이 설명까지 해야 돼? 다 일이라고, 어쩔 수 없는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러고 있는 거야. 책임감, 그게 난 도덕의 기초라고 생각하거든.(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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