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인 [누운 배]를 통해서 보여준 노동 현장에 대한 세밀하고도 촘촘한 묘사가 기억이 남았는데, 이번 작품 또한 배관 건설 현장의 관리직을 맡은 이들과 현장 노동자들간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 우연치 않게도 [관리자들]을 읽기 바로 전에 본 [플라멩코를 추는 남자]의 주인공의 직업이 굴착기 기사였는데, 이번 작품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현경 또한 굴착기 기사로 나온다. 사실 운전 중에, 걷는 중에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건설 현장에서 굴착기와 같은 대형 중장비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행여나 피해를 볼까 멀찌감치 돌아서 가게 된다. 그러한 중장비와 더불어 일하시는 분들이 안전모와 같은 장치를 하고 일한다 하더라도 분명 위험성이 내포된 일을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요즘 들어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보도되는 현장 사고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떠오르기에 [관리자들]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거대한 장비가 움직이는 만큼이나 사고가 나면 단순히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만큼, 사고 이후의 보도는 한결같이 사고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는지와 차후 안전대책에 대한 내용으로 마무리를 짓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반복된 사고와 뉴스 보도 이후에도 왜 그렇게 자주 인재로 인한 사고는 연이어서 발생되는가? [관리자들]에 등장한 소장과 반장들의 관계를 통해 그 연유가 어느 정도 밝혀지고 책임을 회피하며 산 사람들을 위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모순된 구조가 어째서 지속될 수 밖에 없는지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솔직함과 정의로움은 결코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남겨진 자들에 대한 책임과 염려라는 미명하에 불의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억울함과 분노는 대체 누가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답함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을 듯하다.

공기를 당기기 위해 흙막이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건너뛴 대가로 너무나도 비참한 선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픈 아이를 위해서 사무직의 일을 그만두게 되고 시작한 현장직에서 선길은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했지만, 아이가 호전되자 적극적으로 일을 가담하여 소장에게도 인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약삭빠른 소장은 선길을 반장직에 앉혀 작업현장을 손쉽게 통제하려는 생각뿐이다. 결국 선길은 배관을 넣기위해 파놓은 구덩이에 넘어지며 머리를 다쳐 죽게 된다. 이후 소장은 행여나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될까 여기저기에 약을 치며 선길이 술을 마시고 일을 하다 그렇게 되었다고 말을 만들어 작업 현장에 있던 이들의 입단속에 들어간다. 선길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던 현경을 매수하기 위해 소장은 이런 말을 던진다.

“간단히 말해 이런 거야. 산 사람에게 착할지, 죽은 사람한테 착할지. 현장소장이라는 걸, 관리라는 걸 하다 보면 그런 선택을 안 할 수 없거든. 솔직히 말해서 난 내가 나쁜 사람도 아니지만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 안해. 솔직히 누가 그렇게 착하고 나쁜 사람이기만 할까 싶고. 덜 나쁜 사람이 되려고 할 뿐이야. 우리 다 그렇잖아. 종종 어쩔 수 없이 누군가한테는 나쁜 사람일 수밖에 없단 말이야. 뭔가 해 줘야 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 혼자만 생각하면 뭐 하러 이러고 있겠어? 무슨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막말로 내가 서 기사한테 통장 주면서 일일이 설명까지 해야 돼? 다 일이라고, 어쩔 수 없는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러고 있는 거야. 책임감, 그게 난 도덕의 기초라고 생각하거든.(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