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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ㅣ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월
평점 :
요조 작가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읽었다. 이제는 뮤지션 요조보다 작가 요조가 더 잘 어울리는 듯한 그리고 제주의 무사 책방 주인이라는 겸직 또한 저자만의 매력적인 이력인듯 하다. 이제는 가수가 화가가 배우가 책을 쓰는 것이 더 이상 선입견을 갖지 않은 채, 책을 사랑하고 자신이 생각을 언제든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변화가 아닐까 싶다. 어느 출판사와 문화사의 문예제를 통해서 등단한 이들에게만 작가라는 칭호를 붙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고립된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개별출판을 통해서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훨씬 출판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더불어 저자가 말하듯이 도서 정가제에 대한 상반된 이해들 가운데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가운데에서도 '책이 너무 비싸지 않냐?'는 의견을 경청한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으면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이 너무 많아 돈독이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가진 돈이 스스로 돈을 벌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잔고 속 0의 개수가 버블버블 늘어나서, 그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들은 신나고 흥겹게 그 독에서 유영한다. 반대편에서는 누군가 돈이 턱없이 부족해서 돈독이 오른다. 당장 다음 달의 평범한 일상이 불투명하고 요원해서, 아무리 일해도 도무지 여유 있는 삶이 도래하지 않고 언제나 현실이 빠듯하고 거칠어서, 원하지 않는데도 내몰리듯 돈독이 올라 지나치게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다. 책값이 너무 비싸다며 도서 정가제의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도, 동네 책방의 생태계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며 도서 정가제의 유지를 원하는 사람들도 어쩐지 후자의 이유로 돈독에 노출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170)"
저자의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인 경우도, 뮤지션인 경우도 많은데 작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죽은 자의 집 청소]의 저자 김완 님을 만났다는 내용에서는 부러움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에서 <거룩함과 거룩함>라는 전시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이 갖고 태어난 순수함을 지키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나갈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닌가 싶다.
"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빼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바르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손사래도 치고, 뒷걸음질도 친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 같은 사람은 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96)"
어쩌면 저자가 이런 담백한 삶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쳐왔기에 버스 기사의 선글라스와 마스크 속에 감춰진 구겨진 얼굴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난게 아닐까? 서울에서 서점을 운영할 때 서점 앞에 맘대로 세워놓은 차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한 저자의 한탄은 읽는 이로 하여금 동일한 분노와 더불어 '참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아'라는 푸념과 혹시 나도 어디선가 그런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을까란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허혁 작가의 [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라는 책이 내용에 견주어 저자는 놀라운 깨달음을 우리에게 나눠준다.
"그들의 구겨진 얼굴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삶의 대목'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리에도 '구겨진 얼굴'은 많다. 집회 현장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 그들은 조용하고 얌전하지 않다. 늘 화를 내고, 얼굴을 빨갛게 만들며 언성을 높이고, 머리를 깎고 피를 토할 듯 절규하고 있다. 나는 그 구겨진 얼굴들을 보며 이제 절대로 '저렇게까지 흥분할 일이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을 만큼 매일같이 겪는 불평과 차별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지 않고 변하지 않아 결국 얼굴이 꾸깃꾸깃 구겨진 채로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과 여성들, 장애인들, 그 밖의 약자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구겨진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굴을 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당신의 얼굴이 이렇게 구겨지도록 만들었는지를 묻는 것. 최대한 자주 그 구겨진 얼굴을 따라 옆에 서는 것. 책방을 운영하면서 힘들고 귀하게 배운 태도이다.(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