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훈 작가의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을 읽었다. 2021 한경신춘문예 당선작이다. 표지만 보면 정말 무표정한 이모티콘처럼 노잼 그 자체일 것 같지만 막상 첫장 첫문장부터 늪에 빠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몰입이 되었다. 또 한 명의 놀라운 페이지 터너의 탄생이 아닌 싶을 정도로 글을 읽고 있지만 마치 눈 앞에 허수영의 삶이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그냥 허수영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세밀하게 옮겨 놓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저자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소설의 주인공 허수영은 지방 일간지의 기자 생활을 하다가 대형신문사에서 새로 발간되는 스포츠 일간지의 경력 기자로 채용된다. 그런데 그런 번듯한 직장을 가진 허수영 기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발로 신문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허수영은 보험설계사로서의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보험설계사로서의 허수영의 성장 일기와 보험설계 일을 배우며 제일스포츠 기자로서 겪었던 일들이 교차로 나온다. 그리고 그가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좋아보이는 신문사를 스스로 그만두었는지 알려준다. 허수영과의 고등 절친인 사카이(경계, 갈림길, 기로)는 통상적인 조연이 아니라 사카이의 삶도 꽤나 비중있게 그려진다. 9급 공무원 시험을 몇년 째 준비하며 독서실에서 버티던 사카이는 몇달 간 지옥 같은 독서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공시생활을 버티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용직 노동을 하러 지방으로 떠난다.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가 진행되고 허수영과 사카이의 도전이 위태롭게 보이기는 하지만 눈에 띄는 악역이 등장하지 않아 한편으로는 덜 긴장된 마음으로 허수영과 사카이를 응원할 수 있었다. 신문사를 그만두고자 사직서를 낸 허수영에게 “부장은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모든 것을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괜찮겠냐며 만류했다.(8)”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자신이 오랫동안 몸 담았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나 점점 고도화 전문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속에서 나이든 지원자가 지원하는 영역에 경험이 전무하다면 고용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을 채용할 이유를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허수영 기자처럼 공황장애를 앓게 되기까지 자신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고 버티게 된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렇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병을 앓게 되면서도 하고 있는 일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을 하지 못한다. 내게 기댄 가족들 때문에, 이게 아니면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 죽을만큼 힘들어서 당장 그만두고 싶더라도 막상 떠나고 나면 절대로 지금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넘어가지 않는 숨을 억지로 삼키며 오늘도 버틴다. 보통 신입 보험설계사는 지인과 가족부터 시작하여 계약을 따내려 하지만 허수영은 신문사에서 알게 된 그 좋은 인맥을 절대 이용하지 않겠다며 처음부터 집중한다. 좌충우돌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신입 허수영은 나름대로의 전략으로 접근하지만 첫 계약을 따내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 소설의 말미에 허수영은 보험설계사를 그만둘 무렵 사카이의 건강보험을 하나 계약하게 된다. 그런데 B형 간염 보균자인 사카이의 보험은 간과 관련된 질병에는 부담보가 적용되는 조항이 있고, 6개월 후 간염균이 활성화 되었는지를 검사한 것으로 인해 5년이 지난 후에도 간에 관련된 질병은 보험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이에 허수영은 보험 정관의 문제를 물고 늘어져 간염균의 추적 검사를 한 것 만으로 재진단을 적용하여 각종 보장에서 제외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상황임을 금융감독원에 질의하여 응답을 얻어낸다. “배달을 가다 가끔씩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다고. 그럴 때 일단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간다고. 가다 보면 다시 생각이 나더라고. 소설을 쓰는 동안 그 말씀을 자주 떠올렸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쯤에 와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마다, 붙들 수 있는 건 언젠가는 독자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뿐이었다. 그렇게 계속 달렸고 이렇게 당신에게 닿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