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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서 좋은 직업 - 두 언어로 살아가는 번역가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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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작가의 [혼자여서 좋은 직업]을 읽었다. 부제는 “두 언어로 살아가는 번역가의 삶”이다. 표지는 어마어마한 책장을 뒤로 저자가 역시나 책상에도 한아름의 책을 쌓아두고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다. 찐 부럽고 멋지다. 언제부터인지 내가 꿈꾸어왔던 서재의 모습이다. 보기만 해도 지겹고 머리아픈 전공책들은 어디론가 다 던져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시리즈를 컬렉션으로 꾸며놓으면 책상에 앉을 때마다 뿌뜻함이 마구마구 샘솟을 것만 같은데. 한때 그런 계획을 갖고 책을 사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몇년 전에 갑작스런 이사로 짐을 꾸리다 책에 깔려죽을 것만 같아서 도저히 빈번한 이사가 예정된 삶으로는 표지처럼 멋진 책장을 갖는 것은 그냥 꿈으로만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두 번 읽기는 이미 글러먹었음에도 어떤 작가가 신인시절부터 중견작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담긴 다양한 크기와 색감의 책들의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설레임이 생겨나곤 했기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세상에 책보다 멋진 DP를 찾을 수 있을까? 책보다 근사한 오브제를 찾을 수 있을까? 

표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상 위에는 저자가 번역해온 아님 앞으로 번역할 일본어로 된 책들이 많다. 원서로 된 전공책을 공부해봐서 알지만 외국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그야말로 번역가가 새롭게 글을 쓰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한 때는 번역된 책을 잘 보지 않았다. 하지만 타국의 언어에 자유롭지 않은 몸으로는 어쩔 수 없이 번역가들의 노고가 담긴 책에 기댈 수 밖에 없으니, 저자처럼 번역 후에, 또는 번역 중에 생겨난 에피소드와 감상들을 이렇게 재미있고 진솔하게 열어주니, 앞으로  번역자가 ‘권남희’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원저자가 누구든지 간에 그냥은 못 넘어갈 것만 같다. 작년에 출간한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읽고 번역가가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써도 되는 것인가란 놀라움과 더불어 책에 소개된 오가와 이토의 [양식당 오가와]를 바로 구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오가와 이토와의 이야기를 전해주어서 또한 반갑고, 얼마전에 읽은 [무라카미 T]에서 읽고 의아했던 부분을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가 서점에서 본인의 책을 구입하며 점원에게 ‘이 책 내가 썼어요’라는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부분은 나 또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하긴 무라카미 하루키도 도쿄의 서점에서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없다는데, 미국의 어느 대형서점에서 하루키를 단숨에 알아보고 즉석 사인회를 열게 한 직원은 얼마나 센스가 넘쳤을지, 나에게 그런 행운은 언제쯤 오려나 막연히 꿈꿔본다. 스스로를 은둔형 외톨이나 굉장히 사회성이 결여된 인물처럼 그리고 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 나오는 모습들은 수줍음이 많고 응근 긴장을 많이 하는 소녀감성을 가진 번역의 달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딸 정하와의 다정한 대화는 아마 누구라도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싶다. 성실하고 진득함의 진수를 보여준 저자의 성실한 삶은 300여권 번역본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었고, 우리나라의 많은 독자들에게 일본문학의 커다란 창을 열어주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앞으로 번역을 꿈꾸는 이들에게 롤모델의 모습을 보여주니, 앞으로 이런 책을 자주 많이 써주었으면 한다. 

“종기처럼 우울증이 돋기 시작했다. 내게는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였다. 그 후 아예 자리를 잡은 종기는 비가 오면 도지는 노인들의 신경통처럼 날씨를 핑계 삼아 덧나곤 했다. 

쉰이 되는 해의 우울증은 종기가 아니라 두드러기처럼 번지는데, 예순이 되어 쉰의 나를 돌아보면 또 이렇게 가소로울까. 나이 앞 자리가 바뀔 때마다 우울함의 도수가 높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우울하네, 사는 게 그렇지, 뭐’하고 해탈수도 높아지니 결국은 쌤쌤이다. 쉰이 넘은 뒤로 어깨 힘 빼고 적당히 열심히 살고 있다. 마감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도 않고, 일하기 실을 때는 널브러져서 데굴거리고. 
이국종 교수님이 ‘나는 항상 우울하다. 그래도 그냥 버틴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도 그랬지, 하고 끄떡거린 이 여유.(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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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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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읽었다. 저자의 네 번째 소설집으로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크리스마스에는’, ‘마지막 이기성’,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기괴의 탄생’, ‘깊이와 기울기’, ‘초아’ 이렇게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중에 4편은 이미 다른 모음집을 통해서 읽었지만 다른 작가들의 글과 함께 섞여 있다가 오로지 김금희 작가만의 단편집으로 읽으니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한 번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은 분명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심코 간과했던 부분들을 찾아내 색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하지 않았다. 특히나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이었기에 더 많은 기대를 안고 읽었었는데 당시에는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참 좋았다. 주인공이 어린 여고생 강선에게 질투심을 느끼며 기오성과의 풋사랑을 아무런 오해를 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놓아버렸다가 다시 듣게 된 기오성의 팟캐스트에서 재생된 페퍼로니라는 단어에서 어쩌면 그 아련한 감정의 실타래를 풀게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에서는 재수를 넘어 삼수생으로서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가진 주인공이 우연히 장의사라는 동창을 통해 김조교형과 짧은 연애를 했던 기억을 더듬어간다. 장의사 친구는 김조교형에게 지독히 길들여져, 그 모습을 못내 신기해하면서도 함께 조종당했던 주인공은 그 여름을 견디어냈던 것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나가 아니라 긴 터널과도 같은 일상의 날들을 견디어 낸 스스로의 나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는 헤어져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옛애인이 섭외대상이 된다는 조금은 웃픈 내용이다. 맛집 알파고라는 별칭으로 사진만 보고도 어느 식당이라는 것을 맞추는 기이한 존재는 바로 주인공의 예전 남친이었다. 부산으로 옛애인을 섭외하고 만나러 가는 주인공은 피디라는 직업성과로 이 만남을 바라보려는 시도와 오래전 상처를 들추는 시간을 저울질 한다. 

“환자가 집안에 있는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이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임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 때 자연스레 종료되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수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며 느낀 것이었다.(83)”

‘깊이와 기울기’는 저자의 또 다른 작품 [복자에게]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리고 작년 몇 달 간 머물렀던 제주를 막연히 그리워하게 해주었다. 제주에서도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딴 섬에 마련된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스에서 고장난 버려진 르망을 고치려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과 그와 무관하게 자신의 작업을 해나간 다른 예술가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그려낸다. 이들은 예술가라는 특징으로 생겨난 인물들이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르망과도 같은 풀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선뜻 판단이 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우리들의 선택과 판단에 대한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었다. ‘초야’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인 땅 투기에 대한 서민들의 분투기와 더불어 주인공의 사촌인 초야의 시니컬하고도 생존력 갑인 이 시대의 사고방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인정과 연민의 마음으로 너그러움을 보여주었다가 오히려 손해만 보는 것 같은 주인공의 인간다움은 초아의 맹렬한 현실주의적 감각으로 산산히 부서져버리는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어둠속에 어렴풋이 찍힌 고개숙인 주인공과 초아의 사진은 절대로 교차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성향들도 원래는 돌고 돌아 한 곳에서 만나게 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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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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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의 [불안한 사람들]을 읽었다. 불안장애, 공황발작, 조울증 등. 이제는 너무 많이 접하다보니 그렇게 심각한 증상처럼 느껴지기조차 않는 말들이지만, 이게 실제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이 보여주는 따뜻함과 이웃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은 우리가 간과하고 손쉽게 흘려보냈던 단순한 일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번 작품에서는 은행 강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 은행 강도가 너무 어설프고 심지어 안쓰럽고 그의 애처로운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게 만든다. 

그의 이전 소설에서도 그렇듯이 이번 작품에도 꽤나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래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야크와 짐이라는 경찰 부자이다. 목사였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 짐과 아들 야크는 엄마이자 아내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때론 투닥거리며 아주 작은 동네의 경찰 일을 하고 있다. 야크에게는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10년전의 사건이 있는데 바로 다리 위에서 투신한 남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다. 하지만 일주일 후 같은 장소에서 야크 또래의 소녀를 구하는 데는 성공한다. 그렇게 야크가 구한 소녀는 심리상담가가 되어 자살한 이들의 남겨진 자녀들을 보호하는 기관의 후원자가 된다. 

은행 강도 이야기의 비슷한 플롯이 현금 탈취에 실패하여 은행에 있던 사람들을 인질로 잡는 것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은행에 들어간 어설픈 강도는 당황하여 은행 앞 아파트로 뛰어들어가게 되고 우연히 맨 위층에서 열린 부동산 중개인이 주최한 오픈하우스에 들어가게 된다. 복면을 두륵고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권총으로 자신이 은행 강도임을 말하며 오픈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두게 된다. 오픈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이내 그 은행 강도가 아무런 악의도 없이 어이 없는 실수로 자신들을 인질로 잡게 된 것을 알게 된다. 로게르와 안나레나, 로와 율리아, 토끼분장을 한 레나르트,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 크누트가 아직 차를 주차하고 있는 중이라고 둘러댄 노부인 에스텔, 몹시 까칠하고 10년 전 다리에서 떨어진 남자가 보낸 편지를 아직도 열지 못하고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사라, 그리고 야크가 남자는 놓쳤지만 그로 인해 살린 소녀였던 심리상담가 나디아. 

이렇게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은 오픈하우스에서 하루 동안 인질로 잡힌 상황극 같은 상태에서 조금씩 서로의 상처와 불안을 드러내게 된다. 만삭의 율리아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문을 열다가 그 안에서 오픈하우스 행사를 망치려고 숨어 있던 토끼 분장을 한 레나르트가 튀어 나오게 된다. 그의 등장은 레나르트와 안나레나의 계약을 실토하게 되고 로게르는 그들 사이를 의심하지만 안나레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 중간에 삽입된 야크와 짐이 오픈하우스에서 인질로 있었던 이들을 심문하는 과정은 어처구니 대화의 연속이다. 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경찰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며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것일까란 의문은 우리 모두에게 꽤나 큰 관대함과 너그러움이 숨어 있음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러한 자비와 사랑은 아버지 경찰 짐으로부터 시작하여 노부인 에스텔의 솔직 담백한 고백을 통해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게 된다.
‘그래, 좀 바보 같아도 괜찮아. 내가 바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도 괜찮아. 그렇다해도 나라는 존재가 바뀌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야.’

“불안에서 놓여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했다. 아무리 멍청해 보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항상 잘해주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그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되뇌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녀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거의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잘하고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자부심을 선사하고 있을까? 나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일까? 나는 일을 잘할까?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있을까? 괜찮은 녀석일까?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좋은 부모였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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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싸이월드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42
박선희 지음 / 제철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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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기자의 [아무튼, 싸이월드]를 읽었다. 부제는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이다. 아무튼 시리즈 42번째 책이다. 어학원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혹시 페이스북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가입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당시의 나는), 나에겐 싸이월드가 있는데 그런 걸 할 필요가 있나 라는 말을 표현할 자신이 없어서 당장 가입하고 너와 친구가 되겠다는 말을 하고도 지금까지 페이스북은 그저 눈팅 대상일 뿐이다. 유학 시절에는 정말로 싸이월드를 열심히 했다. 쓸쓸함과 외로움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고국의 청년들에게 로망의 대상이 될 법한 그림같은 정경들을 뒤로 한 사진과 더불어 몇몇은 지금봐도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글과 대부분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갬성 가득한 글을 올리곤 했다. 이어지는 댓글 중에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이게 무슨 배부른 투정이냐고 반격을 가는 이들을 위해 다음에 올린 사진은 한 층 업그레이드 된 염장질을 위한 장소를 물색해봐야겠다는 전투력 상승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인스타그램은 PC에서 볼 수는 있지만 작성은 불가능하다. 철저히 스마트폰 OS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즐기는 세대는 주저리 주저리 자신의 감정 상태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밈과 같이 짧은 사진과 영상을 이어붙이고 함께 한 누군가를 태그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와 나눈 흔적은 원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 개인의 역사의 기록이자 추억을 되새며 보는 시간을 갖도록 만든 싸이월드에 열광했던 세대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기이한 형태이다. 아니 그렇게 금방 없어질 것을 뭐하러 기록하냐고 반문한다는 것 자체가 아재가 되었다는 것이겠지. 

사실 세대차이라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새로울 것도 없고 그저 나 또한 나이를 먹는 유한한 육체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문제는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 변화의 속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변화라면 어느 정도 따라가 볼만도 할 텐데, 알 수 없는 가상의 세계 속에 범람하는 신조어의 생성과 소멸은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젊고 팔팔했던 20대 초반에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며 ‘대체 저분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사는 게 과연 재미 있을까’란 막대먹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가혹해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재미없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 자신이 기성세대가 되어보니 오히려 어릴때는 알지 못했던 인생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연히 예전과도 같은 왕성한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열의는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이든 사람들의 하루가 무의미하고 지루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린 학생들을 보면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특함과 예쁨이 다가왔고, 어르신들을 보면 주름진 손과 얼굴에 담긴 그들의 역사가 궁금해지곤 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플랫폼이 나와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상 세계를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싸이월드든 페이스북이든 인스타그램이든 카카오스토리든 결국은 사람이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매 순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례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하며 우왕좌왕할 때 더 고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젊은 사람들은 앱을 다운받아서 실시간으로 재고를 확인해 주문을 넣었다. 핫딜이 뜰 때 알람을 설정해놓고 온라인에서 클릭 한두 번으로 결제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재난 지원금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인인증서로 신분을 확인한 후에 몇 가지만 써넣으면 되는 온라인 신청은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은행이나 주민센터로 몰려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그때 북새통을 이룬 곳으로 향했다. 누구나 다 하는 줄 알았던 인터넷 뱅킹, 온라인 접수가 누군에게는 높은 장벽이었다. 
회사에선 광화문 사옥 앞 유리 진열장에 그날 발행된 신문을 걸어둔다.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뒷짐을 지고 서서 골똘히 보기도 하고, 광화문 지하보도 인근을 떠도는 노숙인들 중 일부가 읽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뉴스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에 누가 종이 신문을 보냐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사옥 앞에 한 장씩 걸린 신문이 세상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고, 창이 될 수도 있었다.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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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가죽의 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4
구병모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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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바늘과 가죽의 시]를 읽었다. 몇년 전 보았던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의 김희성 역을 맡은 변요한 배우가 유진 초이에게도, 고애신에게도, 구동매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다. "나는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봄, 꽃 달." 실용주의, 유용성이 우세함은 심지어 가상 세계에서 만들어낸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인물을 집중 조명하여 실의에 빠진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허세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봄날의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이라니, 달무리에 취해 쉼없이 걷는 밤산보라니 이런 것들로 우리 삶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드라마의 희성 역이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설정으로 더욱 더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그 배우가 내뱉는 무용한 것들에 대한 사랑은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들려왔고,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은 무용한 것들을 직접 마주하고 싶은 열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동화의, 기담에서 유사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요정처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던 얀과 미아는 어느 순간 인간의 몸을 입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영생이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다름 아닌 인간의 발을 감싸는 구두를 만드는 일이다. 수제화를 만드는 전문 용어들의 범람으로 간간히 검색을 통하느라 이야기의 진행이 더디기는 했지만, 얀이 이안의 이름으로 최후의 1인이 되어 명품 구두 가겪의 구두를 만드는 모습은 영생을 가진 이안의 신비로움에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안이 미아를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 안은 그저 전통을 고수하는 고집스러운 수제화를 만드는 장인이려니 생각되지만, 미아가 결혼을 앞둔 상태로 유진을 데리고 오자 안과 미아의 과거가 그려진다.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 처럼 저주인지 축복인지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운명을 갖게 된 이안은 10년에서 15년간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다가 소리없이 사라지거나 이주를 통해 유한한 인간과의 이별을 맞게 된다. 이안이 공방에서 연 교실의 수강생으로 만난 시인의 어머니가 이안이 오래 전 사랑의 고백을 듣고도 떠나야 했던 여인임을 기억해내는 모습은 못내 가슴아프게 그려진다. 


"그녀 역시 그의 얼굴만 희미하게 남았을 뿐 이름은 알지 못하더라도, 이제는 안이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괜찮다. 이 생에서 두 번을 만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녀의 사라져가는 시간을, 닳아져가는 삶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주어야 한다는. 물을 머금어본 적 없이 방치되어 말라비틀어진 씨앗 같은 기억에, 이제라도 솜을 깔고 현재를 분무해주어야 한다는. 그 행위가 비록 무용하더라도, 씨앗을 간직해온 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예의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망각과 기억 사이에 난 미로 같은 길들을 따라 육신의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일이, 자신의 몫인 것만 같다.(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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