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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평점 :
가을에게 겨울로 넘어가는 시간은 밤이 길어져서 그런지 오래된
일들을 끄집어 내기도 하고, 어릴적 추억의 음식을 떠올리며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계절이 주는 여유와 어울리는 이야기를 만났다.
"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이 그 이야기인데,
서로의 곁을 지키는 미래를 꿈꾸던 남자 친구가 모든 걸 가지고 떠나버린
텅 빈 집에서 나와 무작정 어릴적 떠나온 고향으로 향하는 링고를 따라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갑작스런 남자 친구와 이별은 링고에게서 말을 빼앗아갔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낯설고 또 익숙했다.
엄마를 만났지만 이미 십 년 전에 집을 떠나 서먹한 관계가 주는 건조한
감정만 남았을 뿐이고, 다행인지 몰라도 그 곳에는 엄마가 경영하는 술집
아무르와 창고, 밭 등이 그대로 있어 어색했지만 편안했다.
엄마는 고향집에 사는 대신 엄마가 키우는 돼지 엘메스를 돌보라 한다.
물론 식비나 기타 비용도 모두 부담해야 한다.
링고는 집을 살피다 창고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면 어떨까
생각하고 엄마에게 식당을 낼 수 있게 장소를 허락하고 식당을 개업할
때 필요한 비용도 엄마가 빌려달라 제안한다.
의외로 순순히 엄마는 링고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렇게 링고는 식당을 열게 되고, 엄마의 부탁으로 구마 씨가 링고의
일을 돕게 되면서 달팽이 식당이 탄생한다.
엘메스를 위해 빵을 굽고, 제일 고생해준 구마 씨를 첫 손님으로 식당은
시작된다.
자신이 좋아하던 요리가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고, 행복이 되길 바라며.
구마 씨를 위해 석류 카레를 만들고, 구마 씨가 음식으로 위로를 받는
것을 본 링고는 눈물을 흘린다.
"뭐든 나쁜 쪽으로만 생각이 기우는 소심한 나는, 이제 프로로 당당히
서야 한다는 자신감마저 어느새 잃어 가고 있었다." - p.93
석류 카레 덕분이었을까? 아주 잠깐 집을 나갔던 구마 씨의 아내가
집으로 와 물건을 챙겨 갔는데 구마 씨는 카레 덕분이라 여기며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구마 씨의 소개로 이웃의 '첩'으로 사는 할머니가 방문하고
코스의 마지막까지 음식을 음미하며 끝까지 접시를 비운 후 이전과
달리 화사해진 옷차림과 얼굴로 이웃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달팽이 식당은 기적을 일으키는 식당이라는 또 다른 소문이
돌며 사랑이루고픈 소녀 모모와 그녀의 남자 친구가 방문하고 뒤이어
맞선을 보는 남녀가 등장한다. 거식증에 걸린 토끼를 데리고 방문하는
아이 고즈 방문해 토끼의 치료를 부탁한다.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 자신의 상처나 결핍에 대한 위로를 받고 치유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달팽이 식당을 찾는다.
암환자가 된 엄마는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첫 사랑인 슈이치 씨와
결혼을 한다.
결혼 만찬의 재료는 엘메스였다.
그렇게 링고는 엘메스와 이별을 하고 대신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게 된다.
죽음을 맞이한 엄마에게 목소리를 내서 말하지 못한 것을, 그저 꼭
안아주지 못했음을 링고는 후회한다.
엄마의 편지를 발견하고 링고는 문을 닫았던 달팽이 식당을 다시
연다.
들비둘기 요리로 마음도 몸도 치유를 받고, 사라졌던 목소리도
돌아오지만 여전히 링고는 필담으로 손님들과 소통한다.
마지막 방문자는 동성애 커플인 사쿠라와 하루미였다.
눈이 쌓인 숲 속 방갈로, 사쿠라와 하루미의 공간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곳이며 링고가 만든 위로의 음식들로
다시 걸어갈 힘을 얻게 된다.
"위에서 보면 Y자인 이어폰은 마치 우리의 인생같았다.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도중에 만나 하나가 됐다. 앞으로 우리
에게는 넘어서야 할 산 같은 고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준다면
너끈히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 P.301
상처투성이로 사는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 달팽이 식당은
곁에 두고 위로받고 싶은 날 꺼내 읽을 것만 같은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