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
시메노 나기 지음, 박정임 옮김 / 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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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을 잇는 시간이 너무나 심드렁하고 건조해
매일이 그저그런 날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마주하지 않으면 정말이지 우울해
버티기 힘들 것만 같을 즈음 따뜻한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만났다.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 (시메노 나기 지음, 놀 펴냄)"
가 이야기인데 제목이 주는 묘함보다 나를 더 자극한 건
봄을 닮은 화사한 낮의 카페 퐁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짙푸른 밤의 카페 퐁의 모습이었다.
마치 삶과 죽음의 각기 다른 세계의 시간처럼.
표지에 적힌 문장에 나는 몇 년이 지나도 아직 몸이
기억하는 시간과 그날의 공기, 사람들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아마 사는 동안 내가 기억하는 가슴이 시리게 아픈 시간
중 하나일 것이다.

"떠난 이들은 사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 배달부들은 다섯 번째
임무를 모두 수행해야 성공 보수를 받을 수 있다.
19년 묘생을 마친 후타가 이 세계에 들어오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 발견한 카페 퐁,
점장 니지코와 만나 고양이 배달부가 된다.
후타는 이 세계, 저 세계라는 표현 조차 아직은 어색하다.
그리고 고양이 배달부로 일을 하며 함께 하지 못하고 추억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이해되지 않지만, 후타 역시
간절히 바라고 꼭 만나야할 대상이 있기에 다섯 번째
임무까지 모두 수행해야 한다.
카페 퐁의 니지코는 사람과 고양이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듯하다.
니지코는 인간과도 고양이와도 소통이 가능해 그 특별함
으로 카페 퐁의 특별한 주문들을 해결한다.
손님들은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람이거나 혹은
만날 수는 있지만 직접 무언가를 시도하기 힘든 사람들에
대한 사연을 적고 니지코는 그 사연들이 담긴 우편함을
열어 선별 작업을 한다.
그리고 선별된 사연 속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는 건
고양이들이다.
그렇게 모두 다섯 개의 사연이 후타에게 배정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자신이 꿈을 이루고 지금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싶은 딸의 사연, 태어나지 못했지만
오래 아이를 기억하려는 부부의 사연, 지금이 아닌 오래전
기억 속 첫사랑과 만나고픈 여자의 사연, 자신에게 상처를
줬지만 성공한 지금의 자신을 옛 스승에게 보여 증명하고픈
청년의 사연, 의절했지만 어머니를 그누구보다 그리워하는
중년의 딸이 마주하는 과거의 아픔에 대한 사연.
사연 하나하나가 아픔을 이겨내고 성장한 자신을 상처를
극복하고 일어나 씩씩한 걸음을 걷고 있는 자신을 대견해
하며 과거와 화해하고 혹은 그럴 수 없게 된 시간이나 사건을
뒤돌아보는 것 같다.
나의 봄밤도 여름으로 향하는 시간도 어쩌면 오랜 뒤에
돌아보면 나를 성장시켰던 시간으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로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는 삶을 살아내는 게 내 몫의 걸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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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나의삶을사는것
#만남에대한따뜻한이야기
#소설읽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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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2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찰스 레이먼드 맥컬리 그림,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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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생각들이 깊어지는 몇 년이 지나가는 중이다.

때때로 악하다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따뜻한 위로를 받을 때도

있고, 선하게 여긴 사람에게서 뒤통수를 맞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관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길어질 즈음 생각나는 고전이 있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보물창고 펴냄)"가

바로 그것인데 아주 오래전 읽고 뮤지컬로 많이 알려지며 잠깐 잊고

지내다 다시 꺼내보고 싶어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읽기를 시작했다.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중 한 권이 되어 내 손에 들어온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변호사 어터슨과 엔필드 이야기로 문에 얽힌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깜깜한 겨울 새벽, 엔필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몸집이

작은 사내와 여자 아이가 맞부딪치는 일이 생기고, 사내는 아이를

무참히 짓밟고 지나가는 걸 엔필드는 목격한다.

사람들이 몰려 들고 사람들은 그 사내 하이드에게 아이에게 보상을

요구하고 하이드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코웃음치며 수표를 건네는데

수표가 거짓일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확인한 서명은 지킬 박사의

것이었고, 하이드는 사람들의 의심과 걱정을 해소해주려는 듯

아침이 올 때까지 그들과 함께 있다 은행에서 수표를 바꾸어준다.

변호사 어터슨은 지킬 박사의 유언장을 떠올린다.

그는 어터슨에게 유언장을 맡겼고, 자필로 직접 작성한 유언장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재산을 하이드에게 상속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하이드라는 자가 엔필드의 설명처럼 아이를 짓밟을 만큼

이상하고 혐오스러운 인간이라 생각하니 무언가 찜찜하기만 하다.

혹 지킬 박사가 하이드라는 자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하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이드가 노인을 지팡이로 휘두르며 짓밟고

내려쳐 사망하게 한 것이다.

하이드는 자취를 감추고 이번 역시 지킬 박사가 그를 숨겨주고 돕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갖게 된다.

지킬 박사는 하이드의 행방에 대해 단호히 그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선을 긋고 선행을 베풀며 자신의 삶을 살아내다

돌연 사라져버린다.

지킬 박사가 사라진 것에 대한 단서를 혹 래니언 박사는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를 찾아가지만 그 역시 모른다는 말과 함께

갑작스레 사망을 하게 된다.

어터슨에게 편지를 남긴 채.

그리고 사라진 지킬 박사가 하이드에게 살해된 것 같다는 말에

지킬 박사의 집에 찾아가지만 거기에는 하이드가 죽어 있었다.

유서와 함께.

래니언 박사의 편지, 지킬 박사의 유서로 어터슨은 지킬 박사가

자신의 자아를 선과 악으로 분리해 선을 베풀고 인정이 많은

지킬과 혐오스럽고 악한 하이드로 변할 수 있었고 선과 악인

두 자아의 인간 중 점점 악한 자아인 하이드에게 자신이 잠식

당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만든 두 자아를 오가는 약이 떨어져 가자 어쩌면 영영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킬 박사는

자살을 한다.

인생이란 인간의 본성, 내면과 자아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고찰은

자신의 모습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들 사이에서 충돌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싶다.

지킬 박사 역시 그런 자신의 모습에서 어느 쪽이 더 자신에게

쾌락을 주거나 만족감을 주는지 생각하고 윤리적인 테두리 안에서

선과 악을 오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낮과 밤의 다른 얼굴처럼 균형을 이루고 두 자아를 품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음이 그의 욕심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함과 다른 묘한 감정이 이는 건 나

역시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 내 속에 다른 내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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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안 푸른도서관 86
이근정 지음 / 푸른책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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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고 첫 번째 달인 일월이 끝을 향해 가자

살짝 조바심이 났다.

'새해에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언제나 좋은 일이

나를 찾아올까?'

라는 막연한 설레임이 커지면서 말이다.

그래서 밤이면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독이는 겨울이다.

책표지 속에 초록이 가득한 숲에 홀로 선 투명한 우산을

쓴 여자 아이가 올려다보는 것이 무언지 궁금해 읽기 시작한

청소년 시집이 있다. 나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사춘기 아이의

마음을 시어로 담은 시집인데 사춘기도 아닌 내가 그 시들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던 이유는 나 역시 혹독하고 잔인하지만,

정해진 시간의 틀 안에서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안의 안 (이근정 청소년 시집, 푸른책들 펴냄)"은 그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으며 매일 밤 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 시집이다.

사춘기의 마음은 종종 롤러코스터같고, 때때로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같기도 하다.

'새 학기 첫날'을 읽으며 어디에도 없는 그 애를 찾던 나는 '빛나는

빨간 사과같은 볼들이'라는 문장에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그 시절 새 학기 첫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혹 아는 친구가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교실 문을 열던 아침, 3월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와 부끄러움에 상기되었던 나의 빨간 볼이

떠올라 소리나지 않게 웃어버렸다.

밤 저편에서 들려오던 외침, 보이진 않지만 같은 곳에 있는 우리.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끝없이 걷고 있는 우리는 시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같은 생각을 하다가도 문득 타인이 되곤한다.

진로 상담을 읽다 문득 내 꿈이 뭐였을까? 라는 엉뚱한 질문을 해대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꿈이 있기는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저 정해진 틀 안에서 선택을 위한 고민이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선택, 꿈을 꾸었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이 시 속에 아이도 그런 마음이겠지?

시인의 말처럼 청소년기는 순간 지나가 버리는 짧은 행복과 같다.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버거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며

건강하게 꿈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 몫의 걸음을 걷기 위해 제자리걸음으로 출발선에서 워밍업을

하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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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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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제법 가을을 닮은 바람이 불어온다

늘어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을 다잡기 위해 팔월

끝자락부터 책읽기를 다시 시작하고 만난 책 중 가을에

읽으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살롱 드 경성 (김인혜 지음, 해냄 펴냄)"이라는 책인데 제목과 표지가

주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상당해 당장 펼쳐들 수 밖에 없었다.

삼십대가 시작되면서 나는 종종 그림을 보러 외출을 하곤 했었다.

미술은 전공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삼십대

시작부터 그림이 좋아져 전시 소식이 있는 곳을 찾아 길을 나서곤

했는데 그때 만난 화가 중 박수근의 그림에서 멈칫하곤 했다.

책의 목차에서 화가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 하곤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누어 펼쳐지는 이야기로 우리가 알고 있던 작가나

화가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이 등장해 더 흥미진진했다.

시대와 배경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눈맞춤을 하는 동안 가을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상, 백석, 정지용 시인으로 넘어가는 이야기에는 한국 근대 미술을

끌고 온 화가들이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낯선 이름의 화가들이 그 시대와 배경을 통해 영감을 얻거나 문인들의

모습 또는 그들의 작품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 작품을 빛나게 했다.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채워준 소설가 박완서의 <나목>이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 관한 부분에서 문득 박수근의 그림이 보고 싶어져

서둘러 양구로 향했다.

책으로 우선 두 사람의 인연을 읽고 출발해 그런지 이번에는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그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입구부터 아련하게 오래전 박수근의 그림을 처음 본 날이 떠올랐다.

책과 문학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며 <몽실 언니>를 만나고, 박수근의

그림 <기다림> 속 아이를 업은 소녀의 모습이 몽실이를 닮아 그림을

보는 내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났다.

책을 들고 입장해 <나무 아래>를 관람하는 동안 처음 그림을 그리던

화가의 연습 노트와 박완서의 소설에 등장하는 PX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대까지 천천히 그림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책을 읽기 전 선입견이 있었다.

그림에 대해 어렵게 서술한 책이 아닐까, 전문가만 읽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우려와 달리 시인이나 작가 그리고 화가들의 일상을 쉽게 풀어

내어 그림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배경을 잔잔하게 서술해 읽는 내내 더 많은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렬한 여름의 열기로 이성과 감성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팔월,

소진한 기력과 열정을 되살려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예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로 작용했던

그들의 열정, 때때로 냉정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던 순간순간을

보며 가을을 걸어낼 힘을 얻었다.

슬프지만 결코 암울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그들의 시간, 그 시간을

이어걸을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라 오래 기억이 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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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여름 낙서 에디션) - 씨씨코 에세이
씨씨코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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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나는 매순간이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서 발을 내딛는 기분이다.

내 몫의 걸음을 걸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누군가의 보호자로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은 나를 추락시키기에 충분한 이유였고, 9년 연속 가족들의

병간호를 하다보니 그저 나는 간병인의 삶을 살아내려 여지껏 버텨냈

구나라는 허탈감에 허덕이게 되었다.

나란 존재는 그저 누군가를 일으키기 위해 나 자신을 갈아넣는 재료

같았다.

그런 생각들이 커지며 우울감이 나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고,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문득.... 왜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지 않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나를 위해 무엇을 해달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 지금 이 우울감은 나 때문인가?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어느 날, 이런 내 마음을 읽은 듯한 에세이

한 권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씨씨코 글, 그림 / 다산북스 펴냄)"를

만난 날, 섬뜩한 제목과 달리 표지가 너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났다.

버릇처럼 목차를 읽어내리는데, 일상을 그대로 펼쳐놓은 듯한 소제목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위로는 내가 남에게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위로는 내가 나에게도 해줄 수 있다.

.

.

내가 어려울 때 내가 나를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 같다."

- p.134 난 나한테 위로받았다

읽어내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터진 문장.... 나는 타인을 위로하는

일에는 익숙하나 나를 위한 위로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왜인지 몰라도 그러면 안되는 줄 알았다.

지난 시월부터 나와 그는 터널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는 9년 차 암환자이고, 나는 9년 차 간병인 겸 보호자로 살아내고

있는데, 때때로 돌발행동을 하는 암이라는 녀석때문에 나는 소리죽여

는 날들이 늘었었다.

사람들은 내게 울지말라고, 힘을 내라고 얘기하지만 그게 내 뜻대로

쉽게 되는 건 아니다.

"울고 있는데 울지 말라고 위로하지 않고

힘든데 힘내라고 위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면 좀 울어도 된다고 하고

힘들면 좀 힘들어해도 된다고 하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 괜찮아질 때쯤 괜찮아지겠지."

- p.160-161 울지 말라고 하지마

이 페이지를 읽는 동안 무뚝뚝한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실컷 울고, 힘들다 말하고 내가 다시 걸을 수 있을 때 걸으면 된다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정말 나를 위한 위로라고 생각되는 페이지를 만났다.

"만약 너무나 처참한 날이 온다면,

모든 게 망해버려서 끝내고 싶다면,

그냥 그때 가서 난 미련 없이 스스로 끝내버리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산다.

지금이 처참하다면 이 처참함을 견뎌낸다.

견뎌내고 이 터널 끝에 다다랐을 때 빛이 안 보인다면

그때 가서 끝내도 늦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터널을 저벅저벅 걸어간다.

이 터널에 끝이 없어도

그렇게 죽을 각오로 저벅저벅 걸어가다 보면

삶은 나를 그렇게 쉽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아서

꼭 빛이 보인다."

- p.279-280 이 터널을 걷다보면

빛이 보인다는 말, 아직 빛나지 못한 나의 별이 빛을 낼 시간을

기다리라는 말같아 하찮은 내 인생이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외치는

것 같아 괜히 위로가 되었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 빛나고, 새벽이 빨리 온다는 말처럼 지금 갇힌

어둠의 터널을 걸어 빛의 편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담담하게 얘기해

주는 것 같아서 사는 동안 위로가 필요한 날마다 꺼내 읽어볼 것만

같은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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