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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평범한 소비자였던 주디스 러바인은 모든 것이 흥청망청 넘쳐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분위기가 가득한 뉴욕의 거리를 양손 가득 쇼핑백을 쥔 채 걷다가 넘어지면서 물웅덩이에 쇼핑백을 빠뜨린다. 주디스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을 투자한 쇼핑백에 든 물건을 당연히 그냥 포기할 수 없었다. 바삐 걷는 사람들 틈에 주저앉아 흩어진 물건을 황급히 줍던 그녀에게, 불현듯 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메리 크리스마스 좋아하네. 이게 자유야? 난 이제 사지 않겠어."
그녀는 환멸을 느꼈다. 소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회, 무엇이든 사야할 것만 같고 사지 않으면 바보가 되고 죄인이 되어버릴 것 같은 사회에 대해서. 도시 곳곳, 집안 곳곳에 만연한 소비 권하는 풍조에 의문을 느낀 것이다. 왜 소비해야 하나? 무얼 위해서 우리는 소비하나? 이 작은 경험에서 떠오른 생각에서 그녀의 도전, '아무것도 사지 않는 1년'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남자친구 폴과 함께,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쇼핑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 1년을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생각만 해도 쉽지 않은 이야기다. 빵이나 우유, 휴지같은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책도 옷도 화장품도 살 수 없다니. (책은 빌려보면 되고 옷은 지금껏 사둔 것을 입으며 화장품은 기초제품을 제외하곤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므로.) 어쨌든 그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온갖 유혹과 충동, 후회에 부딪히고 이겨내고 깨닫는 가운데 가까스로 1년이라는 약속된 기간을 채웠다.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 따로 없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주디스와 폴은 반소비주의자가 되었다기 보다, 소비자에서 시민으로의 전환을 이룬다. 단순히 쇼핑하고 소비하는 일차원적인 수준을 넘어, 우리가 소비함으로써 파생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보다 합리적인 소비란 무엇인지 그를 위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한 결과다.
<굿바이 쇼핑>을 읽은 것은 지난해 유월이다.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쇼핑이 미덕인 사회를 사는 '소비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카드빚을 감당 못 할 정도로 '질러대는' 쇼핑광까지는 아니었으나, 소소한 쇼핑에 탐닉했다. 클릭 몇번에 안방까지 상품을 갖다 '바쳐주는' 인터넷 쇼핑을 친구 삼았다. 3900원, 5900원, 9900원에 무료배송이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나를 유혹하는 상품은 너무도 많았다. 책을 좋아하는 내게 저자 사인본 증정에 추가 적립금까지 있다는 인터넷서점의 안내메일은 어떤가, 이건 아주 달콤한 사탕이었다. 여기에 정품용량증정! 샘플파우치증정! 특별할인세트! 라는, 듣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타이틀을 내세우는 화장품브랜드까지 내게 손짓했다. 모든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일은 너무도 쉬웠다. 유월 직전의 두달여간, 집에는 택배박스가 쌓여갔다. 택배기사와 안면을 트고 길에서 만나면 인사까지 했다. "요즘엔 택배 별로 안 시키네요?"하는 인사말을 들을 때도 있었고, 택배기사의 손에 두개의 택배박스가 나란히 들려오는 날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정신이 들었다. 주디스 러바인이 연말의 뉴욕 거리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대체 이 모든게 무엇이 목적이란 말인가. 그리고 결과는 어떠한가. 이게 합리적인 것인가. 스스로의 답은 No였다. 이건 목적도 없고 결과랄 것도 없으며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어쩌면 택배를 받고 상자를 뜯는 그 순간의 설렘과 희열을 위해 인터넷쇼핑의 문을 사정없이 두드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한, 충동으로만 이뤄진 쇼핑과는 안녕을 고했다.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필요한가' 자문하고 1시간 뒤에 최종적으로 구매를 결정하는 습관을 들였다. 다행히 습관은 별 탈없이 정착했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히 지켜지고 있다. 두달여간의 일탈 끝에 비로소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기 위한 첫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접했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소비에 반기를 든 그녀의 주장이 인상적이었으며, 두리뭉술하게 생각은 했지만 구체화시키지는 못했던 '합리적인 소비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소비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도서구입이라는 또다른 소비를 했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그녀의 1년간의 여정에서 찾을 수 있었고, '소비 권하는 사회'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로 살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가 너무 쉬운 세상이다. 신발을 신고 지갑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가 소비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클릭 몇번이면 바다 건너 외국에 있는 물건까지 안방에 갖다 바쳐주는 시스템으로 발전한 사회가 우리의 소비를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소비의 폭이 넓어지고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동안, 우리의 의식은 그에 반비례해서 움직이지 않았나 싶다. 이제 소비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생각해 볼 때다. 공정무역이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반한 소비냐 아니냐 등의 거대담론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다만 지금 나의 장바구니부터 살펴 보자. 충동과 낭비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지는 않는지, 합리와 필요라는 항목이 구매목록에서 빠져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