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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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범한 소비자였던 주디스 러바인은 모든 것이 흥청망청 넘쳐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분위기가 가득한 뉴욕의 거리를 양손 가득 쇼핑백을 쥔 채 걷다가 넘어지면서 물웅덩이에 쇼핑백을 빠뜨린다. 주디스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을 투자한 쇼핑백에 든 물건을 당연히 그냥 포기할 수 없었다. 바삐 걷는 사람들 틈에 주저앉아 흩어진 물건을 황급히 줍던 그녀에게, 불현듯 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메리 크리스마스 좋아하네. 이게 자유야? 난 이제 사지 않겠어."

 그녀는 환멸을 느꼈다. 소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회, 무엇이든 사야할 것만 같고 사지 않으면 바보가 되고 죄인이 되어버릴 것 같은 사회에 대해서. 도시 곳곳, 집안 곳곳에 만연한 소비 권하는 풍조에 의문을 느낀 것이다. 왜 소비해야 하나? 무얼 위해서 우리는 소비하나? 이 작은 경험에서 떠오른 생각에서 그녀의 도전, '아무것도 사지 않는 1년'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남자친구 폴과 함께,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쇼핑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 1년을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생각만 해도 쉽지 않은 이야기다. 빵이나 우유, 휴지같은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책도 옷도 화장품도 살 수 없다니. (책은 빌려보면 되고 옷은 지금껏 사둔 것을 입으며 화장품은 기초제품을 제외하곤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므로.) 어쨌든 그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온갖 유혹과 충동, 후회에 부딪히고 이겨내고 깨닫는 가운데 가까스로 1년이라는 약속된 기간을 채웠다.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 따로 없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주디스와 폴은 반소비주의자가 되었다기 보다, 소비자에서 시민으로의 전환을 이룬다. 단순히 쇼핑하고 소비하는 일차원적인 수준을 넘어, 우리가 소비함으로써 파생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보다 합리적인 소비란 무엇인지 그를 위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한 결과다.

 <굿바이 쇼핑>을 읽은 것은 지난해 유월이다.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쇼핑이 미덕인 사회를 사는 '소비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카드빚을 감당 못 할 정도로 '질러대는' 쇼핑광까지는 아니었으나, 소소한 쇼핑에 탐닉했다. 클릭 몇번에 안방까지 상품을 갖다 '바쳐주는' 인터넷 쇼핑을 친구 삼았다. 3900원, 5900원, 9900원에 무료배송이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나를 유혹하는 상품은 너무도 많았다. 책을 좋아하는 내게 저자 사인본 증정에 추가 적립금까지 있다는 인터넷서점의 안내메일은 어떤가, 이건 아주 달콤한 사탕이었다. 여기에 정품용량증정! 샘플파우치증정! 특별할인세트! 라는, 듣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타이틀을 내세우는 화장품브랜드까지 내게 손짓했다. 모든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일은 너무도 쉬웠다. 유월 직전의 두달여간, 집에는 택배박스가 쌓여갔다. 택배기사와 안면을 트고 길에서 만나면 인사까지 했다. "요즘엔 택배 별로 안 시키네요?"하는 인사말을 들을 때도 있었고, 택배기사의 손에 두개의 택배박스가 나란히 들려오는 날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정신이 들었다. 주디스 러바인이 연말의 뉴욕 거리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대체 이 모든게 무엇이 목적이란 말인가. 그리고 결과는 어떠한가. 이게 합리적인 것인가. 스스로의 답은 No였다. 이건 목적도 없고 결과랄 것도 없으며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어쩌면 택배를 받고 상자를 뜯는 그 순간의 설렘과 희열을 위해 인터넷쇼핑의 문을 사정없이 두드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한, 충동으로만 이뤄진 쇼핑과는 안녕을 고했다.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필요한가' 자문하고 1시간 뒤에 최종적으로 구매를 결정하는 습관을 들였다. 다행히 습관은 별 탈없이 정착했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히 지켜지고 있다. 두달여간의 일탈 끝에 비로소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기 위한 첫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접했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소비에 반기를 든 그녀의 주장이 인상적이었으며, 두리뭉술하게 생각은 했지만 구체화시키지는 못했던 '합리적인 소비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소비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도서구입이라는 또다른 소비를 했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그녀의 1년간의 여정에서 찾을 수 있었고, '소비 권하는 사회'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로 살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가 너무 쉬운 세상이다. 신발을 신고 지갑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가 소비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클릭 몇번이면 바다 건너 외국에 있는 물건까지 안방에 갖다 바쳐주는 시스템으로 발전한 사회가 우리의 소비를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소비의 폭이 넓어지고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동안, 우리의 의식은 그에 반비례해서 움직이지 않았나 싶다. 이제 소비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생각해 볼 때다. 공정무역이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반한 소비냐 아니냐 등의 거대담론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다만 지금 나의 장바구니부터 살펴 보자. 충동과 낭비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지는 않는지, 합리와 필요라는 항목이 구매목록에서 빠져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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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예뻐지는 Self Makeup - 'get it Beauty' 메이크업 종결자 김승원의
김승원 지음 / 담소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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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점없이 깔끔하게 잘된 메이크업은 모든 여자들의 바람이다. 나 또한 스무살이 된 이후 메이크업을 해오면서 늘 돋보이는 메이크업을 위해 노하우를 쌓아왔다. 그 노하우 중에는 이 제품 저 제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써보면서 스스로 쌓은 것도 있지만, 꽤 많은 부분을 메이크업 관련 인터넷모임이나 잡지, 책 등에서 얻는다. 특히 요즘은 화장품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는 동시에 케이블방송에서 뷰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뷰티북을 낸 유진을 필두로, 파워블로거나 유명 화장품카페 등에서도 다양한 뷰티북을 내놓고 있어 책을 통해 메이크업을 접할 기회는 더 많아졌다. 그러나 덕분에 어떻게 메이크업을 시작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한 메이크업 초심자들에게 뷰티북을 통한 노하우 습득 기회의 폭은 넓어졌지만, 과연 어떤 뷰티북이 양질의 컨텐츠를 담고 있는가하는 물음표에서 오는 선택의 난감함은 배가되었다.

 이제까지 직접 구입해 읽은 뷰티북은 2권이지만 일단 뷰티북이 출간되면 서점에서 한번씩은 꼭 훑어보는 편이라, 웬만한 뷰티북의 구성이나 내용은 익히 알고 있다. 보통의 뷰티북은 광고카피에서는 메이크업의 A에서 Z까지 속속들이 알려줄 것처럼 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메이크업에 대한 이야기보다 저자 자신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일에 더 충실하거나, 협찬받은 제품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다보니 내가 광고를 사서 보는 것인지 책을 사서 보는 것인지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날마다 예뻐지는 셀프 메이크업>에는 일단 합격점을 주고 싶다.

 무엇보다 메이크업 설명에 군더더기가 없다. 책은 크게 메이크업 도구 사용법, 베이스/포인트 메이크업 하는 법/TPO(시간 장소 상황)별 메이크업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쓸데없는 잡담이 적으며 간결하고 쉽게 사진을 곁들여 설명한다. 메이크업에 대한 지루한 이론이나 일상에선 곤란한 무난하지 않은 화장법 등에 대해 늘어놓기 보다, 브러쉬를 사용하는 기능적인 방법이나 메이크업의 컬러를 선택하는 방법 등 기본적인 측면을 돋보이게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메이크업 초보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매끄럽게 베이스를 바르는 방법이나 아이메이크업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강약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괜찮다.

 다만 조금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거의 메이크업의 기본에 대한 내용이다 보니, 메이크업을 하는 여심 전체를 사로잡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미 메이크업을 시작한 지 꽤 되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여러 제품을 구입하고 써보면서 자신만의 메이크업 스킬이 확실하게 자리잡은 사람이라면 심심풀이 삼아 볼 만한 책인 것 같고, 초보자에게는 메이크업의 기본을 배우기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최근 나온 뷰티북중에서는 가장 내실있는 책인 듯 싶다. 책에서 소개하는 제품은 모두 저자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인 디*과 SE* 제품으로 통일하여, 마치 실제 써 본 것처럼 이 제품 저 제품 교묘하게 홍보하는 일부 뷰티북보다는 얄미워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매달 나오는 여성잡지의 뷰티기사만 꼼꼼히 읽어 보아도 충분히 자신만의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사람보다는, 이제 막 메이크업의 바다에 들어와 망망대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 고민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단, 어떤 뷰티북을 보든 이론은 한두권에서 끝내고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얼굴이라는 캔버스에 다양한 그림을 직접 그려보길 권한다. 내 경험상, 백번의 이론보다 한번의 브러쉬질이 손끝의 메이크업 감각을 살리기에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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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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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를 좋아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든 한여름 달궈진 대지를 식혀주는 소나기든 비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아주 작은 빗방울이 바람에 흩날려 비안개 비슷한 모양새가 되는 것도 좋아하며, 우산 위에서 톡톡톡 튕기는 빗소리나 장마철 습기에 눅눅해진 종잇장마저 싫지 않다. 그래서 비를 주제로 한 단편소설집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에 더 관심이 갔다. 비를 좋아하기에, 내가 비에 대해 생각했던 이미지와, 나는 생각해내지 못했지만 작가들이 발견한 비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책에서 찾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는 젊은 여작가 7명-장은진, 김숨, 김미월, 윤이형, 김이설, 황정은, 한유주-이 '비'라는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나름의 이야기를 풀어낸 단편을 모은 책이다. 가볍게 일상의 한 면을 포착해 독자의 공감대를 이끌어 낸 소설도 있고,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비를 참신한 소재로 이용하기도 하며, 음울하고 흐린 비오는 날의 특성을 소설의 요소로 활용한 작품도 있다. 한창 글을 쓰며 피치를 올리고 있는 젊은 작가들인만큼 '비'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제각각 개성이 강한 글을 풀어나가는 점이 인상적이다. 제목 또한 '일곱가지 색으로 내리는 비'가 아닌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즉 '색'이 아닌 '색깔'이라는 강한 소리로 표현함으로써 작품들의 색채가 더 짙어지는 느낌이다.

 개성 강한 작품 중에서도 나는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정답도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주인공이 점차 그 '방법'을 깨우치게 되는 과정을 비와 함께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가 쓴 탓인지, 혹은 내가 한창 세상 사는 법을 배우고 부딪히고 방황하는 단계에 있어서인지 묘하게 공감하며 읽은 이야기였다. 여기서의 비는 내가 생각했던 가벼운 느낌은 아니었지만, 적절히 등장함으로써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체적으로 단편들의 면면은 나쁜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었다. 간혹 단편을 읽을 때 느껴지는 난해함에 당황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장편에 비해 적은 분량 안에서 뇌리에 남을만한 이야기를 강렬한 문장으로 끌고가야 하고, 그래서 빨라져야 하는 전개 때문인지 몰라도, 내가 접했던 단편의 일부는 작가의 목소리나 작품의 주제의식을 들춰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요즈음 나오는 단편들은 이런 점이 더 강해진 느낌이 든다. 숲이 보여야 하는데 나무만 보인다. 적은 분량 안에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디테일한 묘사나 수사에 치우치다 보니 전체적인 흐름이 잘 읽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그렇다. '다른 테마소설집이 관념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는 것과 달리, <일곱가지 색깔로…>는 비라는 일상적인 주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묘사했다'는 출판사의 의도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주제는 충분히 일상적이고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지만, 7편 중 두어편을 제외하고는 글 자체가 난해했고 거기에 심연을 알 수 없는 음울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읽어내기 어려웠다. 이 소설집에 작품을 실은 작가들은 워낙 본인만의 색이 뚜렷한 작가들이다보니, 특유의 문체에서 작가의 특징은 분명히 묻어나지만, 단순히 작가의 특성을 알아차리는 것을 넘어서 작가와 그 이상의 교감을 하기엔 지나친 난해함이라는 벽이 있었다. 문득 과도한 난해함으로 대중과 점차 괴리되는 현실을 타파하고자 서정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는 시문학계의 모습이 그 벽에 겹쳐졌다.

 물론 일곱 작품들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며, 단지 작품을 읽는 독자에 따라 나같은 반응이 있을 수 있지만 매우 호의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나는 단편이라는 장르가 독자들과 더욱 교감할 수 있도록 더이상 추상화가 아닌 인물화로, 풍경화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 잘 쓴 장편소설을 읽고 나서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개운한 느낌을 단편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이번 소설집에 이어 곧 '눈'을 주제로 한 소설집이 출간된다고 한다. 더욱 알차게 여문 단편을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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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고양이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안녕 고양이 시리즈 2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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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건 재작년쯤부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사는 집, 이 집터에서 나보다 더 오래 살아 온 고양이를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곳에서 나보다 더 오래 살았다 하나 뭐 근 십년쯤 산 것은 아니고, 우리 가족이 이사온 지 3년 째고 그 1~2년전부터 이 고양이가 보였다 하니, 지금껏 한 5년쯤 살았다고 보면 되겠다. 여하튼, 이 고양이는 내 방 창문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옆집의 뒷마당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나, 집터를 둘러싼 담장 위를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때를 제외하면 그다지 눈에 띄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가끔 꽃이나 채소를 심어놓은 마당의 흙을 살짝 파내고 용변을 해결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 밖에는 특별히 저지레를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집의 터줏대감인 고양이를 있는 듯 없는 듯 삼으며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이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마당의 초록 여기저기에 얼굴을 들이밀다 제 갈길 가려는 듯 방향을 틀던 때였다. 그때 마주친 그 눈, 참 묘했다. 고양이의 눈은 개나 토끼 등 다른 동물과 달리 오묘한 매력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고양이의 눈이 오드아이였기 때문이다. 한쪽은 하늘색, 한쪽은 노랑색. 가만히 보니 몸 전체가 흰털로 덮여있는 데다 눈코입의 조합도 꽤 오밀조밀하게 예쁘장한 편이어서 오드아이가 더욱 잘 어울리는 고양이였다. 무릇 인간이든 동물이든 예쁜 것에 정신 팔리지 않을 존재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그날 눈에 박힌 묘한 매력의 모습이 인연이 되어, 밥때가 되었을 때 마주치면 남은 밥이나 생선뼈, 참치 등을 조금씩 내주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내가 밥을 챙겨주는 시간은 저녁시간의 밥때로 거의 굳어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 입이 궁해야 남의 입도 궁해지는 줄 아는 인간의 특성을 내가 정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며칠간 일정한 시간에 밥그릇을 내놓다 보니 나중엔 이 고양이도 제법 시간을 가늠할 줄 알게 된 모양이다.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에 밥그릇을 내놓는 뒷마당으로 통하는 베란다의 문을 드르륵 열면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보통은 '식빵 굽는 자세'로, 때로는 앞다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으로, 시간이 매우 잘 맞는 날은 저 뒤편 담장에서부터 이리로 걸어오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참 신기했다. 길고양이를 기피하는 이 황량한 세상에 모질게 살아남으면서, 그래도 때되면 제 밥그릇 챙겨주는 인간이 있다는 게 귀하게 생각되어 따로 보답할 것은 없고 약속시간이나 잘 맞추자는 심산이었을까. 이 넘겨짚은 생각은 나의 오산이고, 그저 배고프니 빨리가서 먹고 와야겠다,는 단순한 습성때문일지라도 나는 그게 참 기특했다. 밥을 챙겨준 지 얼마간이 지나자 고양이는 제 나름의 선물을 잡아다 주기도 했고(물론 처치하기엔 곤란한 선물이었다), 눈을 곧잘 맞췄다. 나에게 허용하는 거리는 많이 좁혀가면서도 입은 꼭 다물고 매번 밥만 먹고 가다가, 어느날부터는 나를 보면 알아본다는 듯 야옹야옹 제법 여러번을 울기도 했다. 지금도 고양이는 제때에 내가 주는 밥을 맛있게 먹고 있으며, 먹기 전엔 늘 두어번 야옹하고 울어주기도 하고, 딱히 밥시간이 아닌 때에 집 주위를 순회하다가도 나와 마주치면 잠시 멈춰서기도 한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여하튼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처음 이 고양이와 친하지 않았을 때는(고양이가 저 멀리서 나와 눈만 마주쳐도 잽싸게 꽁무니를 빼던 때), 괜히 한번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어서 길고양이의 습성이나 밥 주는 것 등에 대해 검색해보기도 했었다. 그래서 길고양이가 살던 곳을 잘 안 떠나는 이유 등의 습성이나 그네들의 짧으면서 고단한 '묘생살이'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 집에 드나드는 고양이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감정표현에 충실한(?) 개들과 달리 '묘'답게 '묘'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알아가고, 실제로 보게 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명랑하라 고양이>도 읽게 되었다. 이미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라는 책으로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들을 사진과 글을 통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 프리랜서 작가, 이용한의 길고양이에 대한 두번째 책이다. 이번엔 전작과 달리 시골의 전원주택에 살면서 근방에 거주(?)하는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면서(매끼니 밥을 해결하는 일이 길고양이 묘생의 당면과제다) 지켜보기도 놀아주기도 하며 찍은 사진과 글을 실었다. 가까이서 고양이들을 지켜본 만큼 생생한 사진과 글이 책의 백미다. 어떨때는 '인생'보다 재미있는 '묘생'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책에는 나름의 캐릭터가 분명한 고양이들이 대여섯마리 정도가 있는데, 이 고양이들의 내공(?)이 만만치 않아서인지 웬만한 소설의 인간 주인공보다 더 분명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특히 '바람이'와 '봉달이'라는 고양이가 그랬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보통내기가 아니었을 고양이들이지 싶다.

 하지만 이런 밝은 면엔 이면도 있다. 길고양이들이 피해갈 수 없는 운명, 비참함이 그것이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처지에 따뜻한 밥은 그야말로 사치일 뿐이다. 게다가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사는 그네들에겐 서 있는 곳이 어디든 사방이 적이나 마찬가지다. 태어나면서부터 엄혹한 세상에 맞서야 하는 길고양이의 삶이, 양지바른 곳에서 일명 '발라당'을 하고 햇볕을 쬐는 한가로운  때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마음 깊은 곳 어디선가 습기가 차오르는 듯 했다. 인간도 살아야 하고 고양이도 살아야 하고 모두가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함께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론 나도 길고양이 한마리를 돌보고 이 책을 읽으면서 '묘생'에 대해 연민을 갖게 되긴 했지만, 책 말미에 드러나는 저자의 생각같이 '인간은 나빠, 이기적이야, 잔인해' 등의 너무 날선 애묘인들의 주장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책의 분량은 다소 두께가 있지만, 사진과 짧은 글이 어우러져 있는 만큼 읽기에 어렵지 않다. 잠시 한숨돌리고 싶을 때 두세시간 시간 내서 읽으면 적당할 책이다. 이런 말은 좀 거창할 수도 있지만, 잠시 시간내 책을 읽으면서 가끔 귀찮고 더럽다며 내쫓는 길고양이의 뒷모습을 떠올려보고, 한번 사이좋게 잘 지내볼까 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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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며 사는 삶 - 작가적인 삶을 위한 글쓰기 레슨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한진영 옮김 / 페가수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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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매일 글을 접하고 읽고 쓰며 살아간다. 과거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서점에서 산 책 혹은 집으로 배달된 신문을 읽는다거나, 저녁에 하루일과를 정리하며 간단히 일기를 쓰거나 하는 정도로 글을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누구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글을 주고 받고 읽고 쓸 수 있게 되면서, 글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더욱 가까워졌다.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미니홈피 등을 통해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면서 자신만의 특색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이를 접하는 누리꾼들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글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양적으로 늘어나면서, 한편으론 질적인 면도 부각되고 있다. 같은 내용을 다룬 글이라도 엉성한 문장력의 글 보다는 오밀조밀한 구조를 갖추면서 가독성도 높은 글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이 같은 이유로 더 나은 문장력을 갖추기 위해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아 읽는다거나, 리뷰작성이나 습작 등의 형태를 통해 연습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글쓰기 레슨 책, <글 쓰며 사는 삶>은 전자의 사람들에게 반가울 책이 아닐까 싶다.

 이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으로 국내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의 공식보다 글 쓰는 사람의 삶 자체에 더 밀착하여 글쓰기의 '실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 쓰며 사는 삶>을 썼다고 한다. 표지의 책제목 아래 인쇄되어 있는 '작가적인 삶을 위한 글쓰기 레슨'이라는 문구에서 이 의도를 체감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직접 겪은 일, 들은 일, 다른 이와의 대화 등의 일상소재를 먼저 설명하고, 이를 통해 끌어낼 수 있는 글쓰기의 주제나 전개방식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76쪽의 <타오르는 열정> 챕터에서 그녀는 열대여섯살 때 테니스를 배우고 시합을 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열심히 배우긴 했지만 테니스에 대한 호감이 마음에 가득차지는 않아서 대충 얼버무리듯 테니스를 그만두었고, 이십대 초반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글쓰기에 호감이 생기고 집중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완전함과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이 경험을 통해 그녀는 어떤 일을 할 때 단순히 호감만을 가지는 것보다, 그것에 대해 더 잘 알려고 노력하고 집중을 하는 것이 그 일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해주며 열정을 가지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독자가 정말로 사랑했던 것이나 충만함을 느꼈던 것에 대해 글쓰기를 해보길 권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글쓰기라는 행위가 어떠한 것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설명하고, 이를 실천하게끔 실마리를 쥐어주는 셈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말하는 대로 때마다 글쓰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어떠한 글이든 써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글쓰기에 대한 팁이라던가, 주제를 찾는 법 혹은 글 쓰는 방법 등을 일러주는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의 소소한 즐거움을 다시금 깨달았다. 굳이 글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어도, 나탈리 골드버그라는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이를 어떻게 글쓰기에 반영하는가 등을 에세이처럼 가볍게 접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책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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