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라 고양이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안녕 고양이 시리즈 2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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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건 재작년쯤부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사는 집, 이 집터에서 나보다 더 오래 살아 온 고양이를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곳에서 나보다 더 오래 살았다 하나 뭐 근 십년쯤 산 것은 아니고, 우리 가족이 이사온 지 3년 째고 그 1~2년전부터 이 고양이가 보였다 하니, 지금껏 한 5년쯤 살았다고 보면 되겠다. 여하튼, 이 고양이는 내 방 창문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옆집의 뒷마당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나, 집터를 둘러싼 담장 위를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때를 제외하면 그다지 눈에 띄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가끔 꽃이나 채소를 심어놓은 마당의 흙을 살짝 파내고 용변을 해결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 밖에는 특별히 저지레를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집의 터줏대감인 고양이를 있는 듯 없는 듯 삼으며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이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마당의 초록 여기저기에 얼굴을 들이밀다 제 갈길 가려는 듯 방향을 틀던 때였다. 그때 마주친 그 눈, 참 묘했다. 고양이의 눈은 개나 토끼 등 다른 동물과 달리 오묘한 매력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고양이의 눈이 오드아이였기 때문이다. 한쪽은 하늘색, 한쪽은 노랑색. 가만히 보니 몸 전체가 흰털로 덮여있는 데다 눈코입의 조합도 꽤 오밀조밀하게 예쁘장한 편이어서 오드아이가 더욱 잘 어울리는 고양이였다. 무릇 인간이든 동물이든 예쁜 것에 정신 팔리지 않을 존재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그날 눈에 박힌 묘한 매력의 모습이 인연이 되어, 밥때가 되었을 때 마주치면 남은 밥이나 생선뼈, 참치 등을 조금씩 내주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내가 밥을 챙겨주는 시간은 저녁시간의 밥때로 거의 굳어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 입이 궁해야 남의 입도 궁해지는 줄 아는 인간의 특성을 내가 정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며칠간 일정한 시간에 밥그릇을 내놓다 보니 나중엔 이 고양이도 제법 시간을 가늠할 줄 알게 된 모양이다.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에 밥그릇을 내놓는 뒷마당으로 통하는 베란다의 문을 드르륵 열면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보통은 '식빵 굽는 자세'로, 때로는 앞다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으로, 시간이 매우 잘 맞는 날은 저 뒤편 담장에서부터 이리로 걸어오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참 신기했다. 길고양이를 기피하는 이 황량한 세상에 모질게 살아남으면서, 그래도 때되면 제 밥그릇 챙겨주는 인간이 있다는 게 귀하게 생각되어 따로 보답할 것은 없고 약속시간이나 잘 맞추자는 심산이었을까. 이 넘겨짚은 생각은 나의 오산이고, 그저 배고프니 빨리가서 먹고 와야겠다,는 단순한 습성때문일지라도 나는 그게 참 기특했다. 밥을 챙겨준 지 얼마간이 지나자 고양이는 제 나름의 선물을 잡아다 주기도 했고(물론 처치하기엔 곤란한 선물이었다), 눈을 곧잘 맞췄다. 나에게 허용하는 거리는 많이 좁혀가면서도 입은 꼭 다물고 매번 밥만 먹고 가다가, 어느날부터는 나를 보면 알아본다는 듯 야옹야옹 제법 여러번을 울기도 했다. 지금도 고양이는 제때에 내가 주는 밥을 맛있게 먹고 있으며, 먹기 전엔 늘 두어번 야옹하고 울어주기도 하고, 딱히 밥시간이 아닌 때에 집 주위를 순회하다가도 나와 마주치면 잠시 멈춰서기도 한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여하튼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처음 이 고양이와 친하지 않았을 때는(고양이가 저 멀리서 나와 눈만 마주쳐도 잽싸게 꽁무니를 빼던 때), 괜히 한번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어서 길고양이의 습성이나 밥 주는 것 등에 대해 검색해보기도 했었다. 그래서 길고양이가 살던 곳을 잘 안 떠나는 이유 등의 습성이나 그네들의 짧으면서 고단한 '묘생살이'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 집에 드나드는 고양이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감정표현에 충실한(?) 개들과 달리 '묘'답게 '묘'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알아가고, 실제로 보게 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명랑하라 고양이>도 읽게 되었다. 이미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라는 책으로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들을 사진과 글을 통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 프리랜서 작가, 이용한의 길고양이에 대한 두번째 책이다. 이번엔 전작과 달리 시골의 전원주택에 살면서 근방에 거주(?)하는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면서(매끼니 밥을 해결하는 일이 길고양이 묘생의 당면과제다) 지켜보기도 놀아주기도 하며 찍은 사진과 글을 실었다. 가까이서 고양이들을 지켜본 만큼 생생한 사진과 글이 책의 백미다. 어떨때는 '인생'보다 재미있는 '묘생'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책에는 나름의 캐릭터가 분명한 고양이들이 대여섯마리 정도가 있는데, 이 고양이들의 내공(?)이 만만치 않아서인지 웬만한 소설의 인간 주인공보다 더 분명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특히 '바람이'와 '봉달이'라는 고양이가 그랬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보통내기가 아니었을 고양이들이지 싶다.

 하지만 이런 밝은 면엔 이면도 있다. 길고양이들이 피해갈 수 없는 운명, 비참함이 그것이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처지에 따뜻한 밥은 그야말로 사치일 뿐이다. 게다가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사는 그네들에겐 서 있는 곳이 어디든 사방이 적이나 마찬가지다. 태어나면서부터 엄혹한 세상에 맞서야 하는 길고양이의 삶이, 양지바른 곳에서 일명 '발라당'을 하고 햇볕을 쬐는 한가로운  때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마음 깊은 곳 어디선가 습기가 차오르는 듯 했다. 인간도 살아야 하고 고양이도 살아야 하고 모두가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함께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론 나도 길고양이 한마리를 돌보고 이 책을 읽으면서 '묘생'에 대해 연민을 갖게 되긴 했지만, 책 말미에 드러나는 저자의 생각같이 '인간은 나빠, 이기적이야, 잔인해' 등의 너무 날선 애묘인들의 주장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책의 분량은 다소 두께가 있지만, 사진과 짧은 글이 어우러져 있는 만큼 읽기에 어렵지 않다. 잠시 한숨돌리고 싶을 때 두세시간 시간 내서 읽으면 적당할 책이다. 이런 말은 좀 거창할 수도 있지만, 잠시 시간내 책을 읽으면서 가끔 귀찮고 더럽다며 내쫓는 길고양이의 뒷모습을 떠올려보고, 한번 사이좋게 잘 지내볼까 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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