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머무는 밤
현동경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술년 2018년이 시작된 지 이제 열흘도 되지 않았다. 새해를 시작하면 늘 새롭게 나를 다독이며 올해는 작년에 계획했던 일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해를 알차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용기를 다짐하게 된다. 유난히 작년 한 해는 몸과 마음이 버겁고 답답해서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이런저런 여건상 쉽지 않은 여행에 대한 열망을 새해가 시작되어도 엷어지지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현동경님의 여행에세이 대한 기억이 머무는 밤은 조근조근 담백하게 풀어놓은 여행이야기는 거창하게 풀어 놓지 않기에 더 끌리고 나도 이런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살다보면 기분 좋은 우연을 느끼는 날보다 콩나물시루에 시달리며 직장에 출근하고 하루를 시작하며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며 짜증 섞인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를 더 자주 접하게 된다. 로또 같은 행운이 삶에 찾아오는 경우는 아주 희박하지만 기분 좋은 설렘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며 즐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이 주는 기분 좋은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즐거움이 떠오른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런 즐거움이 나에게 전염되는 듯 다가온다.

 

 

여행은 나를 낯선 공간과 시간 속에서 머물게 한다. 우리와 다른 문화권을 가진 다양한 것들을 접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은 결국 책에 풀어 놓은 이야기처럼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과의 만남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면 여행이 가진 가장 큰 즐거움이 사라진다. 저자를 자꾸만 여행으로 이끌었던 요인은 결국 사람이라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우리는 가끔 타인이 보이는 친절한 미소에 보상 없는 선행에 두려움을 느끼는 때가 많다. 우리나라도 아닌 낯선 여행지에서의 타인과의 만남은 그래서 더 긴장하고 한 꺼풀 색안경을 끼고 살피게 된다. 선진국이나 동경하던 나라가 아닌 우리보다 다소 낙후되었다고 느끼는 여행지는 더욱 그렇다. 인도는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고 싶은 나라지만 우리에게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식 역시 갖고 있는 나라다. 나의 첫 배낭여행이며 아들과의 첫 여행지가 인도였다. 처음이라 내가 느낀 두려움은 사실 컸다. 강력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아들과 함께했어도 긴장감을 누추지 못했던 기억이 제일 먼저 가지고 인도 여행을 시작했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나라와 사람에 가진 두려움은 현지에 도착해서 많이 상쇄되었다. 다른 외형을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작은 호의와 미소에 푹푹 찌는 더위도 개똥, 소똥과 함께 지저분한 거리의 모습이 나쁘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인도.... 저자처럼 바라나시에서 연을 날리는 경험을 하지 못했지만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거나 화장터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소는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밤새 내린 하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기분이 좋다. 나의 발자국 옆에 나란히 걷는 사람의 발자국이 있어도 괜찮다. 여행도 비슷하다. 답답하거나 힘들다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다고 느낄 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고 나 역시도 그럴 때 여행을 생각한다. 자유를 느끼고 싶어 떠난 여행에서 우연처럼 타인을 만나고 그와 그들과 시간을 공유하는 일은 여행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드넓은 자유의 길에서 우연이란 숲에서 타인과의 시간이 너와 나가 아닌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일흔여섯 번째 밤의 여행이야기가 끝이 나는데 짧지만 여행이 가진 의미를 너무나 잘 표현한 말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멋지다. 나도 여행을 떠난다면 우연의 숲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보며 여행 계획을 세우게 된다.


삶의 배경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씩 빼내어 길 위에 온전히 홀로 서게 되는 여행은 꼭 뺄셈 같기도 한다. -----  그런데 왜인지 우리의 삶은 비워 내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p24-


누군가는 늙지 않는 피터팬을 동경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있는 그대로 늙어 가는 것을 존경한다는 가수 김진호 씨의 말에 깊게 공감한다. 그의 말대로 그 순간이었기에 가능한 것들은 그때에 존재하고 경험이 늘어 지금 이 순간 가능한 표현들이 지금의 글과 사진이 되는 것이기에 나는 이 변화가 싫지 않다.            -p86-


세상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많은 인파 속에서 왜 혼자 밥을 먹는지, 출근길 드라이가 잘 됐는지, 오늘 입은 옷이 내게 잘 어울리는지…. 우리의 방대한 걱정에 비해 세상은 내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의 능력은 부러워하면서 내가 뭘 잘하는지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타인의 일에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위로는 없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지만 내일이 오면 오늘은 지나간다. 이렇게나 매정한 하루 속에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은 얼마큼이었는가. 어쩌면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답은 스스로에 대한 관심과 위로일지도 모른다.                -p91, 93-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때때로 할 거라곤 생각하는 것이 전부일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내 생각은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앞으로 숱하게 만나게 될 밤의 풍경을 소위 '프로 불편러'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미 내 머릿속에는 '만든 것'과 '만들어지는 것'의 차이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 들어섰다. 단어 수만큼의 작은 차이가 결코 아님을 알기에 더욱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p147-


당장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안해 하지 말자. 그저 아주 잠깐 빛이 숨었을 뿐, 두 눈이 빛을 다시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 말이다.                 -p166-


두렵다면 여행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두렵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살아온 틀을 벗어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낯선 것을 비롯한 두려움은 모두 여행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회사와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가는 그 길의 두려움은 내 미래에 대한 여행인 것이고, 겪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은 삶의 성숙을 위한 셈이다.           -p197-


인생이란 기나 긴 마라톤을 달리는 것과 같기에 초반에 전력질주하며 가쁜숨을 뱉어내기도 버겁다. 바쁜 일상을 즐기는 사람보다 삶의 무게에 짓눌러 불만을 토로하기 쉬운 게 우리의 삶이다. 잠시 잠깐 인생이 힘들고 버겁다고 느껴질 때 자신만의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하는 것도 좋다. 나 같은 경우는 여행을 떠나 복잡하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삶에도 잠시 비껴 있는 것이 좋다. 저자의 삼촌처럼 젊은 시절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갖기 보다는 앞으로 조금씩 나를 위한 시간을 위해 여행을 좀 더 자주 떠나 볼 생각이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경험이기에 가족, 친구, 지인들과 함께 오늘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열망을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