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의 사람들
발레리아 루이셀리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영미 문학들을 많이 접했는데 다양한 나라의 문학들이 몇 년 전부터 급격히 많이 나오고 있어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많이 즐겁고 행복하다. 전혀 몰랐던 작가와의 만남이 늘 기대되고 설레는데 라틴 아메리카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발레리아 루이셀리의 소설 '무중력의 사람들'이 어떤 책일까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인간, 사물 할 것 없이 중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중력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들을 어떤 이야기를 통해 즐거움을 선사할지 내심 궁금했는데 솔직히 여러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쉽다고 느껴지지 않지만 오묘하고 몽환적인 느낌의 책이라 어려움을 떠나 흥미로웠다.


스토리를 이끌고 있다고 여겨지는 화자는 글을 쓰는 여자다. 자신처럼 글을 쓰는 남편과 자식을 두고 있는 여자지만 그녀의 소설은 실제 상황인지 소설 속 이야기인지 곱씹으며 읽게 되는 묘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여자가 살고 있는 집에 유령처럼 존재감을 들어내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에게 여자가 느끼는 감정은 무채색이라 여겨지지만 어느 순간 강렬한 색상의 무게감을 가지고 나온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런 인물들의 등장은 여자의 남편으로 하여금 항상 성과 관련된 의문을 갖게 하는데 이것 역시 불편함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하철이나 공원 같은 장소들이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아닌 불결하고 불편함을 안겨주는 장소로 나온다. 물론 공동묘지, 아무도 없는 집 역시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가장 큰 틀에는 모비, 죽은 나무와 연관되어 오웬이란 작가의 글을 찾고 그의 삶을 쫓아가는 이야기, 인물들의 모습은 현실인지 소설인지 형형색색의 빛깔을 가지며 모호해진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이 주는 깊이를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려면 가볍게 읽기 보다는 정독하며 제대로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낯선 라틴 아메리카의 책이라 그들의 정서와 느낌을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기 버겁지만 앞으로 더 많은 작가들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책이다. 인생, 생활이 주는 무게감을 흥미롭게 만날 수 있는 버겁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무릇 소설은 긴 호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소설가들이 바라는 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모두들 긴 호흡이 어쩌고저쩌고 떠든다.                -p15-


그 아파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유령조차 없었다. 다 죽어가는 식물들과 이미 말라 죽은 나무 하나만 있을 뿐.               -p56-


지하철은 나를 죽은 것들에게로, 정확히 말하자면 사물의 죽음으로 데려다주었다.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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