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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중간의 집 ㅣ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정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여자들이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제 품에 하나의 우주를 품는 것과 같다는 글을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아이를 갖게 되면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고 복잡한 감정들이 여성들을 힘들게 한다. 마냥 예쁘고 사랑스러울 것만 같은 내 속으로 낳은 내새끼지만 육아란 게 겉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체험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나 역시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몸소 체험하며 많이 힘들었다.
'종이달'로 알게 된 작가 카쿠타 미쓰오의 신작 '언덕 중간의 집'은 너무나 어린 젖먹이 딸을 욕조에 빠트려 죽게 만든 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시국이 시끄럽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보호 받아야 할 자식을 상대로 한 범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접하게 된 책이라 궁금했다.
리사코는 3살 딸 아야카를 키우는 전업주부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녀는 육아를 위해 기꺼이 회사를 퇴직했다. 육아에 동참하는 자상한 남편을 두고 있지만 고집이 점점 쎄지는 3살 아야카를 키우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육아와 가족생활에 나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 그녀는 친모가 젖먹이 어린 딸을 욕조에 빠트려 살해한 형사재판의 보충 재판원으로 지목되면서 가해자 미즈호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도 모르게 아야카를 키우고 있는 자신의 현실속 세계와 겹쳐지며 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조용하고 소심한 아내 리사코의 성격을 알기에 남편 요이치로는 걱정이 된다. 재판에 영향을 주는 역할은 아니더라도 보조 재판원으로 참석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데 역시나 어린 딸 아야카를 대하는 리사코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정과 연락을 하지 않아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리사코를 위해 자신의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이마저도 리사코의 마음에는 부담감과 자신을 못 미더워한다는 인상만 갖게 한다.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지만 3살 아이가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는 방법에 한계가 있기에 떼를 쓰거나 운다. 우리나라는 아이들 기를 죽인다는 이유로 무조건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는 경향이 문제가 되는 일이 많은데 일본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어려서부터 교육되기에 아이가 표현하는 것들이 리사코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기에 아야카의 버릇을 고쳐줄 마음에 했던 행동을 남편이 보게 되면서 리사코의 심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재판원으로 모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과 마주한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여성들의 심리적 불안상태에 놓이고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여성들의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알기에 육아에 동참하는 남편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아이를 낳기 전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는 남자들도 많다. 가해자 미즈호의 남편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이기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미즈호의 형량이 높고 낮음을 떠나 그 시간이 흐른 후 또 다시 마주할 남편과의 시간이 그녀에게는 고통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어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낳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설령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여성들이 가지는 심적 고통을 상당부분 이해할 거란 생각이 든다.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에 단숨에 빠져 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으로 책장이 술술 넘어가 단숨에 읽게 한다. 지금은 아이를 안 낳고 둘만 잘 살자는 부부가 늘어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책들이 쏟아진다. 솔직히 낳는 것도 힘들지만 기르는 것은 그보다 백배는 더 힘들다. 아이를 안심하고 낳고 키울 수 있는 가정, 사회적인 요소들이 더 좋아지기를 바라며 충분히 공감하며 재밌게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