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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속 세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평점 :
'불연속 세계'는 몽환적이고 기묘하고 이상한 감정을 갖게 하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하는 필력을 자랑하는 온다 리쿠의 책이다. 오래간만에 온다 리쿠 여사의 책을 읽었는데 책장을 잡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책은 5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나무지킴이 사내'는 쓰카자키 다몬이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선배에게 들었다고 생각한 나무지킴이 사내를 산책길에 보게 된다. 그의 출현은 죽음을 예고한다는데... 부동산 회사를 경영하는 한 남자의 죽음을 두고 다몬은 하나의 가설을 이야기하는데...

벚나무는 일 년의 태반을 풍경 속에 묻혀 지내는 나무다보니, 꽃이 피었을 때가 상당히 특수한 상태고 또 기이하다. 기시감처럼 해마다 되풀이되는 그 광경은 향수와 동시에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 그리움이란 공포와 동의어나 다름없군. -p12-
향수란 신기하다. 생각지도 못한 힘으로 인간을 뒤흔든다. -p46-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 신비한 마력을 지닌 기타 치며 노래하는 여자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한다. 갑자기 사라진 가수에 대해 알아보는 다몬 일행은 잃어버린 길에서 낯선 고양이의 도움을 받는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지만 의외의 진실과 대면하게 되는 이야기는 슬프다.

무서운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다. 디몬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우아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해야 한다. -p111p
"산은 죽은 이의 세계. 우리는 산으로부터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산은 생약의 보고죠. ………………?" -p119-
환영시네마... 대학교 동아리 밴드에서 인디밴드를 걸쳐 프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다몬은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시를 찾는다. 다행히 데뷔를 앞둔 멤버 중 한 명의 고향이 그곳이라 동행하는데... 그는 썩 내켜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의 주변에서 끔찍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이다. 영화촬영과 관련된 그가 가진 기억의 진실... 기억이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왜곡되고 조작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이야기다.

사구 피크닉... 친구의 친구인 능력 있는 기혼여성 친구가 번역 중인 프랑스의 유명 학자의 수수께끼와도 같은 기묘한 책에 대한 조사를 하는데 다몬은 동행한다. 그는 사진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을 찾았다가 영사실로 들어간 한 남자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너무나 황당하고 도깨비에게 홀린 것과 같은 일을 직접 목격한다. 다몬이 밝히는 사라진 사구의 진실과 남자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오싹함은 덜하지만 그 나름의 재미는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본 여행을 두 번 했지만 아직까지 사구의 모래언덕을 직접보지 못했기에 나중에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 새벽의 가스파르는 다몬이 친구들과 함께 야간기차를 탄 이야기다. 솔직히 처음으로 제대로 오싹하면서 슬프다고 여겨진 이야기로 반전의 묘미가 있다. 여행길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친구들은 섬뜩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다몬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른 친구들도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그 속에 담겨진 진실은 섬뜩하다. 누구나 애정을 가진 사람은 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랑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인물이 취한 행동은 전혀 의외다. 솔직히 이런 반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극과 희극은 정말로 종이 한 장 차다. 무서운 이야기와 웃기는 이야기 또한 거리가 거의 없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리라. -p261-
'불연속 세계'은 의외의 반전이나 확 끌어당기는 이야기라는 느낌보다 조근조근 속삭이듯 다정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어지다 마지막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헉~ 하고 들어와 순간 오싹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슬프고 여운이 남으며 끝난다. 자꾸만 더 무슨 이야기가 있을 거 같은... 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오래간만에 읽은 온다 리쿠의 책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