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부엌은 엄마의 가슴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며, 우주의 중심이다."


수플레란 '부풀다'란 뜻을 가진 프랑스어로 달걀흰자를 거품내고 치즈나 고기 생선 등의 재료를 섞어 틀에 넣고 오븐에 구워 부풀린 요리 또는 과자라고 한다. 솔직히 달콤한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케이크가 맛있어 보이는 '수플레' 책표지를 보고 무슨 뜻인지 찾아보고서야 수플레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았다.


다른 문화권에 비해 중동지역 문학은 별로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수플레'는 터키의 대표 작가 애슬리 패커의 작품으로 음식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책이란 것은 얼핏 알고 있었는데 전 세계 여성들이 가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엌을 우주의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흥미롭게 다가온 책이다.


뉴욕, 파리,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뉴욕에 사는 릴리아는 예순 살을 넘긴 여자다. 조용한 생활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남편 '아니'와 살고 있으며 입양한 두 자녀는 남편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성격에 릴리아와는 껄끄러운 관계를 갖고 있다.


파리에 사는 마크는 화랑을 운영하며 아내 클라라와 자식이 없어도 충분히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생활은 현모양처 클라라의 영향으로 안정되고 결핍을 느낄 사이도 없이 생활한다. 갑자기 클라라가 그녀의 공간 부엌에서 생을 마감하며 클라라가 없는 세상에서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절망감을 느낀다.


이스탄불의 페르다는 평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엄마 네시베 부인이 넘어지며 뼈를 다쳤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엄마 곁으로 간다. 엄살이 심한 엄마는 페르다를  자신의 눈이 머무는 범위에 두며  하녀 부리듯 한다. 네시베 부인의 말도 안 되는 떼에 하루에도 열댓번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엄마이기에 차마 곁을 떠나지 못한다.


릴리아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돌보며 침체되어 있는 집안 분위기와 입양되어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 자식 둘이 돈을 원하면서 전혀 부양의 의무는 나몰라 하기에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칠까봐 하숙생을 받기로 한다. 다양한 국적의 하숙생들이 들어오며 그들을 위해 새로운 요리를 만들며 릴리아는 생활의 활력을 얻는다. 특히 그녀의 마음을 살짝 설레게 하는 스페인 하숙생...

 

 

 

 

릴리아, 마크, 페르다는 수플레를 만든다. 생각처럼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지만 수플레를 만들며 그들은 행복하다. 릴리아는 외롭고 혼자이고 싶은 마음에 하숙생들로 인해 생활을 활기를 얻고 힘이 들 때 자신만의 공간 부엌에서 음식을 하며 조금씩 행복감을 느낀다. 마크는 아내를 잃고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가 요리를 하나씩 배워가며 자신이 놓치고 지나쳤던 새로운 행복이 부엌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페르다는 벗어나고 싶은 치매 걸린 엄마로 인해 점점 더 감정적으로 황폐해 가는데 그녀의 딸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갖고 나타난다.


마크나 페르다의 모습보다 솔직히 뉴욕에 사는 릴리아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입양한 자식들이 보여주는 당당함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는 릴리아가 그들에게 쏟아 붓는 금전적인 것만 보아도 넘칠 텐데... 자식에게 부모로서 대우 받기를 원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이기적이고 냉정한 그들로 인해 릴리아가 불쌍할 정도다. 물론 남편 역시 자신을 수발드는 아내에 대한 배려심이나 고마움은 없다. 입양자식들이 아버지를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을 위해 큰 용기를 낸 릴리아가  우주의 중심이 공간에서....


인생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맺어지는 관계는 내가 피할 수 있는 관계가 있고 그렇지 못한 관계도 있다. 부부와 자식은 관계는 타인과의 관계보다 상처받기 쉽고 더 오래 간다. 세 명의 주인공들은 서로가 가진 환경에서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옳다고 믿는 방향대로 살았지만 결과는 버겁다. 마크는 아내를 잃고 남자가 부엌이란 공간을 통해 행복과 치유를 얻어가는 과정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며 나도 같은 여자이기에 릴리아와 페르다의 모습을 통해 여자, 아내,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세 명의 인물은 부엌이란 공간에서 음식을 하며, 수플레를 만들며 그들이 서서히 치유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들의 상황에 따라 그들이 느끼는 슬픔, 고통, 외로움, 행복감 등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으로 진하게 전해져 와 그들과 같은 심정으로 읽었다. 평소에 조각 케이크를 좋아하는데 다양한 수플레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생의 깊이를 부엌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흥미로운 책이다.   


수플레는 변덕스러운 미인과 같다. 아무도 그녀의 기분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 어떤 책에도 수플레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이 없다. 그 어떤 사람도 수플레를 완벽하게 만드는 법을 말할 수 없다.   -p155-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그는 자신의 새로운 뮤즈인 부엌이 누군가의 삶을 지배할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이 뮤즈는 그이ㅡ 한 주를 하루하루의 단위로 나눌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서서 아주 오래된 좋은 친구처럼 다시 살아가도록 등을 밀어주었다.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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