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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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위트와 유머를 가지고 날카롭게 사람, 인생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님... 개인적으로 저자의 글을 좋아해서 이 분의 책은 다 읽었다. 때론 투박하고 거친 말투지만 그 속에 담긴 위트가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이번에 나온 신작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힘들게 교수에 자리에 오르고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수란 자리를 내려놓고 일본에서 혼자 살아가며 느낀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외로움을 떨쳐내는 이야기와 달라서 흥미롭게 느껴진다.


우리가 외롭다고 느끼는 이유 중에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딘가에 속해 있고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예전과는 달리 학연, 지연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가 인터넷의 영향으로 쉽게 사람들과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쉽게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아지고 그 속에서 나란 존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무수히 많은 만남과 모임을 갖고 만나지만 정작 외롭고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경우는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본질은 외로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조금 더 깊고 심하게 외로워야 진짜 나란 존재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다고...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내 자식이 공부도 잘하며 착하면 그것이 곧 부모의 자랑이다. 저자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성격이 못 됐고 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두 아들은 성격이 너무나 좋다는 글에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슬프게 다가온다. 내 자식도 성격이 너무 좋기에....


여자는 결혼과 더불어 이름을 잃는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국민배우 안성기 씨가 아내와 일본에서 저자를 만나 함께 쇼핑을 하게 된 사연에서 아내에 대한 안성기 씨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져 참 아내분이 좋겠구나 잠시나마 부럽기도 했다.


일본에서 뒤늦게 발견한 재능으로 일본화를 그리는 저자의 솜씨는 남다르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그림에 남다른 위트가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본에서도 전혀 외롭지 않아 보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저자의 일상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바쁘게 시간을 보내기에 그는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중년 남자들의 고약한 노인네 증후군, 조용남 흉내, 김정운의 이어령 프로젝트, 자신이 보는 얼굴의 방향 등 인상 깊은 글들이 많아 즐겁다.


외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는 것에 극도의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도 이런 면이 있다. 다른 사람과 많은 관계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의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데 극소수의 사람들과 멀어진다면 나는 참 힘들어할 거 같다. 허나 진짜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은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다. 외롭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은 혼자 있을 때다.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의 남자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산다는 것은 어렵다. 책 서두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할 거란 저자의 당당한 외침이 왜 이리 가슴을 울리는지.... 저자보다 나이가 서너 살 어리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 아빠, 남편으로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거의 못하고 사는 옆지기에게 자꾸 눈길이 가고 마음이 아프다. 자식에게 말하듯이 젊을 때 여행도 많이 하고 연애도 많이 하고 인생을 재밌게 살라는 말을 듣지 못한 옆지기... 그의 어깨에 놓인 무게가 오늘따라 더 안쓰럽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p008-


분노의 대안은 '고마움'과 '감사함'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누구 말대로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몰래 내다 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 가족이다. 그래도 함께 사는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준 서로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과 같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            -p094-


타인의 감정은 그 사람의 정서 표현을 그대로 흉내 낼 때 제대로 이해된다. 공감 능력이란 바로 이 정서의 모방 능력을 뜻한다. 오래 함께 산 부부의 모습이 비슷해 보이는 것은 생김새가 닮아서가 아니다. 서로의 정서 표현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흉내 내는 사람이 사랑받는다. 인간은 자신의 정서를 흉내 내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                  -p155-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대상과의 관계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며 존재의 목적을 정당화한다. 무기력이나 우울함은 그 목적이 정당화되지 않을 때 생긴다.           -p282-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인 삶이다. 우리가 젊어서 했던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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